Z세대가 극장에서 재개봉하는 고전 명작에 꽂힌 이유에 관하여.
극장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 걸까? <화양연화>(2000), <중경삼림>(1995), <하나 그리고 둘>(2000), <파리, 텍사스>(1987), <이터널 선샤인>(2005), <마녀 배달부 키키>(1989), <모노노케 히메>(1997), <쇼생크 탈출>(1995), <마지막 황제> (1988), <퐁네프의 연인들>(1992), <철도원>(2000) 등, 고전으로 분류되는 유명 명작들이 동시대 극장에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다.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과거의 명작들이 재개봉작으로 분류돼 오늘날 극장을 다시 찾아오는 일은 종종 있었다. 심지어 어떤 작품은 최초 개봉 성적보다 재개봉 성적이 월등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15년에 재개봉한 <이터널 선샤인>은 3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2005년 개봉 당시 16만명 관객을 동원했던 기록을 두 배수에 가깝게 뛰어넘었다. 덕분에 한동안 극장가에 재개봉 영화가 범람하기도 했다.
극장에 재개봉작이 많아진다는 건 극장의 수익성 악화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신작에 비해 수입 단가가 낮은 구작 영화를 수입하면 상대적으로 수익성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고 일찍이 작품성을 인정받은 명작인지라 마케팅에 힘을 쓸 필요도 없다. 굉장한 흥행성을 기대하는 건 아니라 해도 개봉 과정에 들어가는 자본 부담이 적고, 적정한 수익성을 거둘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최근 재개봉작은 대부분 ‘4K 리마스터링’ 혹은 ‘디렉터스 컷’이나 ‘특별판’이라는 형식을 부각하며 이것이 단순히 오래된 판본을 재개봉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관람할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흥미로운 건 이런 4K 리마스터링 개봉작들이 구세대 관객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세대를 극장으로 유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위 말하는 Z세대가 4K 리마스터링 영화의 재개봉을 이끄는 동력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24년에 개봉한 <더 폴: 디렉터스 컷>은 19만 관객을 동원했다. 2008년 개봉 당시 2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던 작품이 ‘디렉터스 컷’이라는 판본으로 재개봉해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는 객석 지분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적극적으로 호응한 Z세대 관객 덕분이다. 초현실적인 영상미를 선사하는 <더 폴: 디렉터스 컷>에 매혹된 Z세대 관객들은 SNS에 적극적으로 감상을 남기고 N차 관람을 인증하며 흥행을 주도했다. CG 대신 실제 촬영을 통해 구현한 촬영 방식과 제작 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영화의 화제성을 더했다. 재개봉을 통해 재발견과 재평가를 거둔 상징적인 작품이 됐다. 그 중심에 Z세대가 있었다.
왕가위의 <화양연화>나 <해피투게더>, <중경삼림> 같은 대표작 역시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해 Z세대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최근 재개봉한 빔 벤더스의 대표작 <파리, 텍사스> 역시 가장 많은 관객 비율을 차지하는 세대가 바로 20대 관객으로 분류된다. 단순히 Z세대 시네필이 많아진 걸까? Z세대가 자신들이 태어나기 이전 시대의 영화를 탐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건 비단 한국만의 현상일까?
“젊은 관객에게는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이다.” 2023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재개봉을 추진하며 21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린 미국의 배급사 네온의 대표 엘리사 페데로프는 재개봉이 노스탤지어에 기대는 전략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이 든 관객뿐만 아니라 젊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유인하는 좋은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대단한 명성을 가진 걸작을 동시대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재개봉을 기회라고 여기는 젊은 관객들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OTT로 어디서든 영화를 보고, TV가 없어서 스마트폰 관람이 뉴노멀이 된 시대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는 극장에서 검증된 명작을 관람하고 싶다는 욕구가 되레 높아진다. Z세대에게 4K 리마스터링 재개봉이란 바로 그런 기회다. 작품성이 검증된 고전 명작을 더 나아진 해상도로 대화면의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란 시간과 비용을 들일 가치가 있는 일이다. 단순히 관람했다는 만족감을 넘어 그렇게 관람했다는 사실을 SNS에 인증할만한 가치도 있다.
시간은 늘 기회다. 동시대에 일어나는 놀라운 사건을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 있다는 건 그 세대만의 특권이다. 하지만 영화란 흘러가는 사건이 아니라 거듭 재생할 수 있는 기록이기에 시간이 흐른 뒤에도 가능한 체험이다. 4K 리마스터링 재개봉 영화가 Z세대의 마음을 당기는 것도 바로 그런 시간의 힘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세월에 떠밀려가지 않고 여전히 추앙받는 명작을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건 한 시대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작품을 섭렵하며 간접적인 경험의 깊이와 너비를 확장하고 싶다는 갈망이기도 하다. 살아보지 못한 과거를 풍미했던 영화가 돌아온 극장이란 Z세대에게는 분명한 기회다. 그렇게 새로운 시네필의 시대가 오고 다시 영화의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를 일이다.
(IBK 경제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중소기업 CEO REPORT> 4월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