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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an 28. 2019

[어떤人터뷰]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양인모는 파가니니가 남긴 물음표에 자신의 바이올린으로 답했다.


지난 5월 3일 금호아트홀에서 가진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곡 공연 실황을 녹음한 것이 이번에 발표한 데뷔 앨범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입니다. 첫 앨범을 공연 실황 앨범으로 낼 거라고 생각해본 적 있었나요?

파가니니의 곡으로 낼 거 같다는 짐작은 있었지만 라이브 레코딩이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었죠. 실황 연주를 녹음한다 하니 걱정이 많이 됐어요. 무대의 긴장감까지 담길 수 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그래서 의미 있는 레코딩이었고요.


파가니니의 카프리스는 피아노로 치면 쇼팽의 에튀드에 비유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연습곡이라고 하지만 연주하기가 만만치 않은 곡들이죠.

카프리스는 원래 콩쿠르나 오디션에서 꼭 요구되는 곡이에요. 그래서 바이올린을 시작할 때부터 카프리스를 연주할 때는 결코 실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연습했어요. 어떤 바이올리니스트라도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관점을 버리게 됐어요. 연습곡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곡으로 바라보게 된 거죠. 그래서 이 곡을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고 싶어졌어요. 자세히 보면 24개의 카프리스 하나하나마다 각기 다른 성격이 있거든요.


지난 11월 5일에 열린 데뷔 앨범 발매 기자회견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어요. 파가니니의 카프리스는 콩쿠르에서 꼭 요구되는 곡이라 바이올리니스트들이 기피하는 곡으로 꼽히기도 한다고. 하지만 양인모 씨는 한 번도 그런 기분을 느낀 적이 없었다고 했죠.

저는 파가니니의 첫인상이 좋았거든요. 파가니니의 화려함에 도취돼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떤 적대감도 느껴보질 못했어요. 그만큼 파가니니의 곡을 잘 소화해내고 싶었고요. 개인적으로는 콩쿠르에서 꼭 이 곡을 요구해야만 하는지 의문이에요. 그렇게 요구함으로써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절대 틀리면 안 되는 곡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잖아요. 저도 그 피해자 중 하나였고요.


카프리스 자체가 커다란 파도 같은 곡이기 때문에 이 곡들을 넘어선 바이올리니스트라면 수평선과 같은 경지를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뭔가 와닿는 비유 같아요. 파도가 계속 오는 느낌인데 한번 넘어가보면 더 이상 두렵지 않거든요. 지난 5월에 두 시간 동안 24개의 카프리스 연주를 마친 뒤 마라톤을 완주한 느낌이었어요. 물론 제가 마라톤을 직접 뛰어보진 않았지만 청중과 함께 뛴 느낌이었어요. 성취감이 느껴지더라고요.


무대에서 두 시간가량 단독 연주를 이어나간 것도 처음이었다고 들었어요. 두 시간 동안 연주에 집중한다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닐 거 같아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고 그만큼 체력 소모도 상당할 거 같아요. 반대로 듣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수 있고요.

아마 두 시간 동안 비슷한 음악을 듣는다고 느껴지면 금방 지루해질 거예요. 사실 카프리스 24곡이 저마다 어려운 기교를 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보다는 각각의 카프리스의 고유한 특징이 뭘까 고민했어요. 그걸 살리지 못하면 청중에게 너무 미안할 거 같더라고요. 제 첫 앨범이 청중과 함께 만든 앨범인 거 같다고 말한 건 그래서예요. 청중이 어떻게 느낄지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24개의 카프리스 연주를 왜 하는지, 청중은 이걸 왜 들어야 하는지, 카프리스 안에 그 답이 있을 거 같았어요. 계속 연주를 듣고 싶게 만들 수 있는 단서가.


스튜디오 녹음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실황 연주 녹음을 선택하고 준비하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시중에 나와 있는 파가니니 카프리스 연주 음반을 들어보면서 제가 이 사람들과 다른 뭔가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뭘지 고민했어요. 그러다 24개의 카프리스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표출되도록 연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껏 우리가 몰랐지만 가능한 감정들, 그 동안 카프리스로 보이지 못했던 그런 감정이 무엇일까 상상했어요. 그런데 공연을 준비하면서 카프리스가 각양각색으로 연주될 수 있는 곡이라는 걸 알았어요. 파가니니가 곡마다 많은 지시 사항을 요구하진 않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내 방식대로 해석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죠. 라이브 레코딩은 부담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라이브에서만 가능한 청중과의 소통이 음반에 어느 정도 녹아든다면 수많은 파가니니 레코딩 음반 중에서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질 거라 생각했어요. 무엇보다도 많은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연주를 들려주었다는 점에서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녹음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연주하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그런 사실 자체를 잊게 되진 않던가요?

무대에 들어가면 원래 눈앞에 청중이 보여야 하는데 마이크부터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헷갈렸어요. 지금 내가 누구를 위해 연주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죠. 저는 마이크를 위해 연주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물론 최대한 실수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앞에 앉아 있는 청중을 위해 연주하는 거라고 마음을 가다듬었죠. 그럼에도 처음에는 마이크를 의식하게 됐어요. 워낙 컸거든요.(웃음) 하지만 연주하다 보니 점점 마이크가 안 보이더라고요. 긴장도 풀렸고. 그래서 앙코르 연주 때는 일부러 마이크 앞까지 나와서 연주하기도 했어요.


혹시 다시 한번 녹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곡은 없나요?

당연히 다시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은 곡이 있죠. 그런데 아쉬움으로 남지는 않았어요. 그 앨범은 그날 그때만 존재한 연주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부분까지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다시 할 수 있다고 해도 돌아가서 바꾸고 싶은 생각은 안들 거예요.


애착이 가는 카프리스는 1번과 24번이라고 했어요. 카프리스의 시작과 끝을 꼽은 셈인데요. 유년 시절 슐로모 민츠가 연주한 카프리스 앨범에서 1번을 듣고 2번으로 넘어갈 수 없을 만큼 좋았다는 기억을 밝히기도 했죠. 덕분에 파가니니와 좋은 관계로 시작했다고도 했고요. 24번은 워낙 유명한 곡이라 이 곡 자체를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새롭게 해석하는 재미를 느낀다고 했고요.

아마 1번 곡은 카프리스 중에서 가장 많이 연주한 곡일 거예요. 그래서 다양한 방식으로 연주해봤어요. 원래 1번 곡의 템포가 안단테로 지시돼 있는데, 걸음걸이 속도 정도로 연주하라는 거죠. 빠른 속도로 연주하는 곡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번 녹음 때 좀 빠른 속도로 연주했어요. 게다가 저라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첫인상에 가까운 앨범에서 첫 트랙이니 화려하게 연주하고 싶었어요. 사실 슐로모 민츠도 굉장히 화려하게 연주한 편이었고요. 24번은 주제와 변주곡 형식인데 연주할 때마다 변주 하나하나가 다 한 곡의 카프리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의 여덟 개의 변주곡을 하나로 축약한 카프리스 같은 느낌이었죠. 그래서 변주곡 하나하나마다 캐릭터를 어떻게 살릴지, 변주되는 타이밍마다 다르게 해석해보려고 노력했어요.


사실 양인모 씨가 연주한 카프리스 1번을 들어보면 음이 폭포처럼 쏟아진다는 느낌이에요. 확실히 안단테라는 템포와는 거리가 있다고 느꼈어요.

오, 제가 원하는 느낌 같아요. 제가 연주한 곡이 확실히 안단테로 느껴지진 않죠. 저는 폭죽이 터지는 걸 상상했어요. 톡 쏘는 듯한 스파클링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한 거 같아요.


카프리스 1번은 연주자들에게도 고난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곡으로 알려져 있어요.

제게도 쉬운 곡은 아니에요. 많이 해보니까 쉽게 느껴지는 것일 뿐이죠.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카프리스 24번 역시 굉장한 고난도 연주가 필요한 곡입니다. 양인모 씨가 연주한 앨범에서 카프리스 24번을 듣고 있으면 어느 순간 새롭고 낯선 방으로 거듭 들어가는 느낌을 받게 되더라고요.

그렇군요. 아무래도 24개의 카프리스 중에서 가장 다채로운 감정을 한데 모아놓은 곡이다 보니 전환이 빨라야 돼요. 연주하고 싶은 캐릭터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정해서 빠르게 전환될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게 중요했죠.


사실 카프리스 24번은 연주하는 걸 보는 입장에서도 긴장감이 느껴지는 곡이에요. 고난도의 아르페지오, 트릴 등 처음부터 끝까지 바이올리니스트의 기교를 시험해보는 곡처럼 느껴지는데 개인적으로는 빠르게 스타카토가 이어지는 마디를 연주할 때의 긴장감이 대단하더라고요. 연주자 입장에서는 어떤가요?

변주되는 마디 사이에 쉼표가 있는데, 그 순간 짧은 정적이 생기거든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 짧은 정적 속에서 좀 긴장하게 돼요. 그런데 정말 좋은 긴장감이에요. 두려움보다는 흥분에 가깝죠. 다음에는 뭐가 나올지 기대하게 되는 느낌처럼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연주할 때 내는 숨소리가 종종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순간적으로 짧게 호흡을 끊어서 쉬기도 하고, 한 번에 심호흡하면서 긴 숨을 들이켜기도 하죠. 사실 바이올린은 관악기가 아니니까 그렇게 숨을 조절하며 연주하는 악기가 아닐 거라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사실 연주할 때는 제가 어떻게 호흡하는지 잘 몰라요.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건 호흡 자체가 연주하는 음악과 되게 비슷하다는 거예요.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 자체가 말이죠. 음을 크게 내고 싶거나 묵직하게 내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호흡이 길어져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연주자 입장에서 호흡이라는 게 정말 중요한 개념 같아요. 제가 표현하고 싶은 음악적 캐릭터 안에서 나오는 숨이라면 가장 좋겠죠.


이번 앨범에서도 그런 숨소리가 중간중간 잘 들려서 현장감이 더 생생해지는 것 같아요.

음악 감독님께 주문한 부분인데 연주 중에 발을 구르는 소리나 숨을 내쉬는 소리를 삭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냈어요. 라이브 레코딩이니까요.


기자회견 당일 네 개의 카프리스를 연주했어요. 10번, 13번, 14번, 24번이었는데 곡 후반부에 가깝거나 후반부에 해당하는 곡으로만 선택했더군요. 빠르기가 각각 비바체, 알레그로, 모데라토, 대체로 프레스토로 구분되는 곡들인데 14번을 제외하면 속도감이 떨어지지 않는 곡 위주로 선택했다는 인상이에요.

처음과 끝을 화려하게 연주하는 걸 좋아해서 10번과 24번을 골랐어요. 그리고 중간에는 귀엽든 부드럽든 서정적인 곡을 연주하고 싶어서 13번과 14번 곡을 골랐고요. 사실 10번 대신 1번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1번은 너무 많이 연주하기도 했고, 왠지 약간 어둡고 화려한 곡을 연주해보고 싶어서 10번을 골랐죠.


카프리스 13번은 ‘악마의 웃음(The Devil’s Laugter)’이라는 부제가 달렸는데 굉장히 익살스럽고 과시적으로 느껴지는 곡이기도 하죠.

유머러스하게 들려서 쉬어갈 수 있는 느낌을 주는 곡이죠. 저는 파가니니라면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극단적으로 13번 카프리스를 연주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좀 더 과장해서 정말 악마처럼 느껴지도록 연주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죠. 곳곳에 그런 재미있는 요소가 있어요. 그런데 그걸 연습곡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못하죠. 이걸 쇼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용기가 생기기도 하고요.


반대로 카프리스 13번에서 이어지는 14번은 승전곡이나 행진곡 같은 근엄함과 장중함이 느껴지는 곡이에요. 마치 관악기 소리를 내듯이 연주한다는 느낌도 들고요.

맞아요. 팡파레 같죠.


그래서 카프리스 13번, 14번의 대비감이 연이어 듣는 재미를 주는 것 같아요. 연주자 입장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궁금하고요.

13번은 굉장히 불규칙하게 연주하는 게 가능해요. 예상치 못한 리듬으로 변주가 가능하죠. 그런데 14번은 고정된 리듬을 명확하게 소화하는 게 중요하고요. 그런 대비감을 보여주고 싶어서 고른 셈이죠.


‘인모니니’라고 불릴 정도로 파가니니 연주자라는 고정적인 이미지가 생긴 거 같은데, 그런 인식이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런 타이틀을 유지하면서 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다고 답했어요.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야심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조심하고 싶지는 않아요. 너무 조심스럽게 굴면 오히려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늘 원하는 게 있다면 빨리 하고 싶어요. 지금은 그럴 때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제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연연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하고 싶은 걸 찾아가고 싶어요.


조심하지 않겠다는 건 음악적 시도를 말하는 건가요?

음악적 시도도 그렇고 인간관계도 그래요. 그래서 인터뷰할 때도 최대한 솔직하게 답하려고 해요. 물론 그렇게 해서 피해를 볼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에 갇혀 살기보다는 최대한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다 표현하고 싶어요. 그래야만 제가 진짜 원하는 걸 찾을 수 있을 거 같고요. 저는 제 자신을 표현하고 싶으니까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그러고 싶어요. 그래서 조심하고 싶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려 할 때 조심하게 되니까요. 결과에 연연하기보다는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걸 최대한 잘 보여주려는 거죠.


실력만큼 확실한 태도도 없는 법이죠.

하고 싶은 음악을 끝까지 해나가는 게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늘 깨닫게 돼요. 협주를 하다 보면 파트너 연주자가 원하는 것도 있을 거고, 청중의 요구를 짐작한 방향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진짜 원하는 것과 그것이 가진 가치를 잘 알면 저절로 자신감이 생겨요. 그게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기자회견에서 파가니니에 대해 말할 때 ‘파가니니와의 관계’라고 표현하는 게 흥미로웠어요. 아주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작곡가에게 ‘관계’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는 건 결국 연주자 입장에서 연주하는 행위가 작곡가를 만나는 행위처럼 느껴지기에 그런 걸까 궁금했어요.

음악을 하면서 역사가 일직선으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연주자들은 몇백 년 전에 작곡된 곡을 연주하잖아요. 저희 역할은 악보에 봉인된 음을 부활시키는 거라 믿어요.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작곡가와 접속하는 게 연주자로서 겪게 되는 과정인 거 같고요. 저는 파가니니의 삶과 음악을 통해 그 사람과의 관계가 형성됐고 계속 깊어지는 거 같아요. 영적인 믿음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악보에 봉인된 음을 부활시킨다는 말이야말로 정말 파가니니스럽네요.(웃음) 파가니니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렸어요. 말년에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소문까지 돌았죠. 그만큼 연주 실력이 대단했던 거 같아요. 한편으로는 사람을 매혹하는 기술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고요. 파가니니라는 작곡가에게서 음악적인 부분 외에도 영향을 받는 게 있나요?

파가니니의 연주에 매료된 사람이 많았다고 하잖아요. 그만큼 소통을 잘했으니 매료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면서 굉장히 인간적이기도 했대요. 노숙자를 위해 연주한 적도 많고, 공연 시간이 거의 다 됐는데 티켓 한 장 더 팔아보겠다고 공연 시간을 늦추고 직접 티켓을 판 적도 있다고 해요. 연주 실력도 대단했지만 자기 일을 그만큼 좋아하고 무대를 장악하는 능력도 대단했을 거예요. 그런 점들이 파가니니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파가니니의 성격을 닮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만들고, 기대하게 만드는 태도에 대한 호감은 있죠.


2015년에 프레미오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어요.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어요. 그러다 호텔 방에 돌아와보니 사람들한테 문자도 오고, 엄마한테도 오고, 그 순간 정말 1등 했다는 게 실감 나서 행복감에 압도당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침대에 누워 멍하니 있었죠.


청중 앞에서 연주할 기회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을 거예요. 연주자로서의 삶이 본격적으로 열린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나요?

콩쿠르 우승 후에 연주할 기회가 훨씬 많이졌죠. 그러면서 연주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 거 같아요. 그 전까지는 주로 콩쿠르 위주의 준비를 했거든요. 그런데 연주라는 건 다른 거더라고요. 더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으로써 제가 어떤 연주자인지 더 잘 알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했고요. 그때부터 리사이틀을 할 때 프로그램에 대해 직접 설명하기도 했어요. 관객과 더 가까워지려고요.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자에게는 파가니니가 실제로 사용했던 바이올린 ‘과르네리 델 제수’로 연주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잖아요. ‘캐논’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그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기분은 어땠나요?

파가니니가 실제로 썼던 악기까지 잡아보니까 이 사람은 정말 어떻게 연주했을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악기를 통해서라도 느껴보고 싶어서 안테나를 세우고 어떤 연주가 가능할지 모험했죠. 왠지 파가니니를 따라 한다는 기분이었어요. 아마 지금까지 제가 연주해본 악기 중에서 가장 좋은 악기 중 하나일 거예요.


처음으로 연주자로 무대에 오른 것이 2008년 금호영재콘서트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유년 시절부터 클래식을 들을 기회가 많았다고 들었는데 부모님께서 클래식을 즐겨 들었나요?

네. 특히 아버지가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집에 클래식 음반이 많았고 클래식에 대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거 같아요. 덕분에 음악 전반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요. 어머니도 제가 악기 하나 정도는 다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던 거 같아요. 어머니는 미술을 전공하셨는데 아마 예술적인 유전자는 어머니 쪽에서 온 게 아닐까 싶고요. 사실 파가니니를 듣기 전부터 바이올린을 배워보고 싶었는데 어린 나이에도 파가니니는 충격이었어요.


바이올린 연주 외에 다른 방향을 생각해본 적은 없나요?

없었어요. 제가 좋아서 시작했고 한 번도 괴롭다고 느껴본 적도 없어요. 어쩌면 굉장한 행운이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수입도 생기고 사람들도 좋아해준다는 게. 지금은 음악을 더 알고 싶어요. 아직 안 해본 게 너무 많으니까요. 이런 호기심이 없으면 쉽게 지루해질 거 같기도 하고요.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걱정 같은 것도 할 겨를이 없는 거 같아요.


미국의 명문 음대인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을 밟고 있다고 들었어요. 스승인 미리암 프리드는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자이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여성으로서 최초의 우승 경력을 가진 연주자예요. 아무래도 여러 면에서 좋은 영향을 받을 거 같아요.

음악적 영향도 많이 받지만 사람 자체로부터 배우는 것도 많아요. 굉장히 논리적인 분이라 음악을 할 때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굉장히 인간적인 분이기도 하고요. 얼마 전에는 잠자기 전에 오늘 수치스러운 일을 한 게 있는지 생각한다는 말을 하셨는데 되게 멋있더라고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음악을 하면 저렇게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돼요. 그런 선생님 밑에서 배우는 입장에서 느끼는 위압감이나 긴장감도 있고요.


사사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2012년에 처음 레슨을 받아봤는데 제가 고쳐야 할 점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어요. 그때만 해도 제 연주 소리가 다양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몰랐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 활을 쓰는 게 저와 다르더라고요. 제 팔꿈치가 선생님에 비해 좀 뜨는거예요. 선생님은 그러니까 소리의 폭이 한정되는 거라며 팔꿈치를 내리고 연주하는 연습을 시켰어요. 그리고 오른손으로 활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주셨어요. 사실 한국에 있을 때는 왼손 위주로 배웠거든요. 테크닉 위주로 배웠는데 유학을 하면서 정말 제대로 된 음악을 하는 기분이었죠. 그래서 믿고 가보자고 결심했어요. 그 이후로 정말 많이 배웠고요.


기본을 갖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지 않았나요? 아무리 많은 기교를 익혀봤자 팔꿈치 높이만 잘못돼 있어도 제대로 된 음을 낼 수 없는 법이니까요.

기본이라는 게 참 어려운 거 같아요.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철두철미하게 연습해야만 하니까요. 그래야만 연주할 때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어요.


하나의 곡을 몸에 새기듯이 여러 번 반복해서 연주하는 경우도 많을 거 같은데요.

중요한 건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요즘에는 정해진 시간에 연습할 곡을 미리 정해놓고 연습해요. 악기를 잡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불안해지는데 점점 연습할 시간이 없어져요. 연주 일정도 많아지고 너무 바빠져서. 그러니 최대한 연습 시간을 내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보통 연습할 때는 자기가 잘하는 부분만 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체크해둔 다음에 정해진 시간에 그 부분만 연습하려고 해요. 그게 훨씬 효율적이기도 하고요.


부족한 점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극복하려는 마음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동력이 될 거 같아요. 자기 단점을 아는 것도 실력이니까요.

제가 연주를 좋아한다는 의미를 떠나서 제 연주가 주변인들에게,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고민해요. 이유를 찾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래서 봉사 활동도 많이 다녔고요. 연주만 하는 게 아니라 시야도 넓히고, 연주에만 매몰되지 않아야 되는 거죠. 자신의 연주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연주자가 훌륭한 연주자라고 생각해요.


올해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돼서 금호아트홀에서 다섯 차례 공연할 기회를 얻었어요. 이번 앨범을 녹음한 파가니니의 24개 카프리스 독주회도 그중 하나였고요. 이 기사가 공개될 때쯤에는 과거가 돼 있을 것이긴 합니다만, 다음 주인 11월 15일에 함께 듀오 연주회를 가질 예정인 바이올리니스트 일리야 그린골츠도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자예요. 과거 메뉴힌 콩쿠르에 출전했을 때 심사위원으로 일리야 그린골츠를 만난 인연이 있다고 들었어요. 당시 카프리스 1번 연주가 뛰어나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는데 나란히 연주하는 입장이 됐습니다.

사실 예전에 금호아트홀에서 독주회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인도 받았어요. 그때가 파가니니 콩쿠르에 출전하기 전이었으니까 제 입장에서는 그저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분이었죠. 그만큼 한 무대에 선다는 게 어색할 수도 있지만 저도 그만큼 성장했다는 거니까 한편으로는 기대돼요.


어쩌면 지금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의 나이테를 명확하게 마주 보게 되는 무대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를 비롯해 비교적 현대 작곡가들의 곡으로 셋리스트를 채웠더군요.

현대 작곡가들의 곡도 자주 연주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현대음악을 연주할 때는 오히려 고전에 접근하듯이 연습하는 거 같아요. 악보를 신뢰한다고 할까요. 현대음악이라 해도 작곡가가 공을 들이는 건 매한가지니까요. 사실 현대음악이 더 어려운 편이긴 해요. 청중한테도 어려울 수 있고요. 그래서 그걸 제대로 해냈을 때 얻게 되는 희열이 있어요. 평소 느껴보지 못한 희열을 느껴보고 싶고 청중의 반응이 궁금해서 셋리스트를 그렇게 구성한 면이 있어요.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거나 듣는다는 건 종종 시간 여행하듯이 오래된 과거를 대면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몇 세기 전에 연주하고 들었던 음악을 지금도 연주하고 듣는 거니까요. 게다가 1700년대에 요제프 요하임이 연주한 스트라디바리우스 ‘요하임 마’를 2018년에도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렇고요.

요하임 마가 브람스 초연에 쓰인 악기인지라 특히 브람스 협주곡을 연주할 때는 더욱 그래요. 200년 전에도 이 악기로 똑같은 곡을 연주했던 거니까 막연하지만 뭔가 연결된다는 기분도 느껴지고, 시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개념이 선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둥글게 만나는 것처럼 느껴져요.


개인적으로 정말 특별하게 기억하는 연주가 있나요?

2014년에 보호 시설의 작은 방에서 연주를 한 적이 있었어요. 다섯 분 정도의 환자들 앞에서 했는데 지금까지 연주 생활하면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순간이었어요. 처음에는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큰 홀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기 위해 찾아온 청중을 앞에 두고 연주하다가 클래식 음악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려니까 잠시 혼란스럽더라고요. 사실 콩쿠르 준비 차원에서 마련한 자리였거든요. 그때부터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저와 청중의 관계가 뭔지, 이런 순간에는 어떤 연주를 해야 하는지.


어쩌면 수백 명의 청중 앞에서 연주하는 것보다 더 긴장되는 일 아니었을까요?

익숙하지 않은 자리였으니까요. 연주하면서 깨닫게 된 건 음악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었어요. 할머니 한 분은 제 앞으로 오셔서 앞으로 유명해져도 꼭 한 번 더 와달라고, 우린 음악 들을 기회가 너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냥 연주를 했는데 그분들에게 값진 경험이 됐다는 게 느껴졌어요. 결국 연주라는 게 어디서 하든 같은 마음으로 해야 하는 거더라고요. 한 사람을 위해서든 천 명을 위해서든 똑같은 마음으로 준비하고 연주해야 하는 거죠. 그걸 아는 게 연주자의 역량인 거 같고요.


파가니니 이후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선택할 다음 행선지는 누구일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기자회견 때 로베르트 슈만에게 흥미가 있다고 했죠. 그런데 지금 쓰는 바이올린이 요제프 요하임이 쓰던 스트라디바리우스 ‘요하임-마’잖아요. 요하임은 슈만이 굉장히 좋아했다고 알려진 바이올리니스트예요. 요하임-마로 슈만의 바이올린 곡을 연주한다는 건 그런 면에서 의미 있는 일이 될 거 같아요.

악기와의 연관성 때문에 슈만을 언급한 건 아니에요. 슈만과 저의 관계는 파가니니와의 관계와도 다르고요. 저는 가끔 슈만이 제 상담사나 심리치료사 같다고 생각해요. 물론 슈만처럼 비참한 삶을 살아서가 아니에요. 제게 슈만은 예술이 얼마나 개인적인 것일 수 있는지 알려준 작가예요. 그러다 보니 더 궁금해지고요. 어떻게 하면 이렇게 개인적인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말이죠. 슈만이 겪은 정신적 질환을 제가 겪어보진 못했지만 그런 혼란 속에서도 음악을 길어 올린 데에서 오는 감동이 있어요. 그게 굉장한 위로가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도전해보고 싶어요. 저와 심리적으로도 잘 통하고요.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슈만이 상담사나 심리치료사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슈만은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정신이 돌아왔을 때 빨리 곡을 써야 했대요. 그래서 모차르트보다 더 빨리 썼다는 설도 있어요. 자기가 원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놓치면 안 되니까. 슈만이 정말 어쩔 수 없이 작곡했다는 게 느껴져요.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도 한 줄기 빛처럼 들려오는 음악을 잡아야만 했던 거죠. 그런 음악이 들리니까 작곡하지 않을 수도 없고.


양인모 씨에게도 반드시 잡아야만 하는 음악이 들릴 때가 있나요?

음악이라는 게 쉬이 사라지는 특성이 있어요. 얘기할 때도 소리가 금방 사라지잖아요. 소리라는 게 묶어둘 수도 없고. 그래서 최대한 소리가 존재한다고 느껴질 때 그걸 잡고 싶어요.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우리가 중력의 지배를 받듯이 소리도 중력의 지배를 받는 거 같아요. 그런데 가끔 소리가 중력을 거스른다고 느껴지는 특별한 순간이 있어요. 그 순간의 느낌을 최대한 즐겨보려 해요. 어쩔 수 없이 다시 중력의 영향을 받겠지만 그런 순간이 느껴지니까요.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다고 할까요?


소리가 중력을 거스른다고 느끼는 건 연주에 몰입해서 온전히 자신만의 중력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순간을 느낀다는 말처럼 들려요. 무아지경 같은 순간이랄까요?

그런 순간에는 공기 자체가 달라진다고 느껴요. 물론 화학적으로 달라진 건 아니겠지만. 그리고 제가 느끼면 청중도 느끼는 거 같아요. 조금 뜬금없는 소리 같지만, 소리라는 것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우주 어딘가에 저장돼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요. 제가 긋는 현 하나하나가 어딘가 저장되는 거죠.


슈만이 남긴 바이올린 곡이 많지는 않잖아요. 게다가 슈만의 콘체르토는 많이 연주된 곡이 아니기도 하고요. 그런데 메뉴힌 콩쿠르에 참가해서 시니어 부문 2등을 수상한 적도 있는데, 사실 예후디 메뉴힌과 슈만의 협주곡은 깊은 인연이 있죠.

메뉴힌이 없었다면 슈만의 콘체르토 자체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사실 슈만의 곡 중에서 전혀 연주되지 않은 곡들도 있어요. 아무래도 연주자들의 태도와도 관련이 있는 거 같아요. 저는 슈만이 미쳐서 그런 곡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분명히 연주하기에 어색한 부분들이 있긴 해요. 콘체르토 3악장에는 정말 연주가 불가능한 음도 나오고요. 그런데 그걸 단순히 슈만이 미쳐서 말도 안 되게 쓴 거니까 이건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이걸 왜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는지 궁금해하는 측면이 있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슈만과 개인적으로 친한 관계이기도 하니까.(웃음) 연주가 안 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그래서 더 좋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안 하면 내가 해볼까 싶기도 하고.


슈만의 소나타보다는 콘체르토에 흥미를 느끼는 걸까요?

슈만의 소나타 3번도 원래 작품 목록에서 제외됐던 곡이잖아요. 그 곡을 2014년에 처음 연주해봤는데 굉장한 의미가 있었어요. 아무도 하지 않는 곡을 연주했는데 잘 전달된 거 같았거든요. 그래서 이 곡도 자주 연주했으면 좋겠다고, 연주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콘체르토도 연주하게 된다면 그런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싶어요.


항상 새로운 걸 찾는 게 목적이라고 말한 바 있어요. 느낌표처럼 다가오는 음악을 남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하는 것이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갖는 욕망이 아닐까 싶은데 양인모 씨는 오히려 물음표로 다가오는 음악에 흥미를 느끼는 거 같네요.

맞아요. 생각하게 하는 음악을 좋아한다고 할까요? 물론 명확하게 감동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 느끼지 못한 감동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쪽으로 귀를 열고 싶어져요. 제 입장에서도 그런 걸 느낄 때 얻는 희열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음악하는 게 더 재미있어지고요.


혹시 바이올린 외에 다른 악기에 관심을 가져본 적 있나요?

다시 태어나면 피아노를 연주해보고 싶어요. 저는 화성이 너무 좋은데 바이올린은 화성을 내기 어려우니까요.


리스트가 파가니니 연주를 듣고 바이올린으로는 저 사람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해 피아노로 전향했다는 설이 있어요. 덕분에 리스트가 여러 피아니스트를 좌절시켰다고도 하죠.(웃음) 그리고 파가니니는 기타 연주를 즐기기도 해서 기타 악보를 남기기도 했고요.

사실 요새 기타 코드도 배우고 있어요. 톰 미시가 너무 좋아서.(웃음) 아직 연주할 정도의 실력은 아닌데, 기타도 바이올린처럼 굉장히 섬세한 악기라 음의 강도나 현의 튕김에서 나오는 그루브가 절대 가상 악기로 표현이 안 돼요. 그래서 직접 연주해보려고 배우고 있어죠. 톰 미시의 음악이 매력적인 것도 음과 음 사이사이에서 느껴지는 그루브 덕분이라고 생각하고요.


바이올린을 잘하면 기타는 그냥 쉽게 연주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분명히 도움은 되는 거 같아요. 그리고 기타는 음이 다 정해져 있어서 바이올린처럼 음정 나갈 일은 없거든요. 잘못 짚을 일은 있어도.


아까 화보 촬영 중에 듣고 싶은 음악으로 톰 미시의 음반을 선택했는데 톰 미시는 다양한 뮤지션들과 활발히 협업하는 아티스트예요.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기도 하고요. 톰 미시 외에도 대중적인 음악을 자주 듣는 편인가요?

많이 들어요. 톰 미시 음악의 느슨하고 흥겨운 느낌에 관심이 많아요. 요즘에는 장르 간 벽도 다 허물어져서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는 아티스트도 많잖아요. 제 플레이리스트에는 클래식도 있지만 힙합도 있고 키보드 음악, 재즈 음악도 있어요. 로파이 음악은 제가 만드는 걸 좋아하고요.


히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즐기는 타입이군요.

저는 음악이란 것이 사람들을 마음껏 불러서 놀 수 있는 놀이터가 됐으면 좋겠어요. 물론 베토벤이 쓴 음악은 베토벤 거라지만 사람들이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찾아볼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음악이라는 게 그런 장소라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느끼는 것도 다 다를 테니까요.


이번에 첫 앨범 제작하면서 사진이나 영상 촬영도 해보고 잠시 연예인이 된 기분을 느꼈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SNS도 활발하게 한다고 들었어요. 대중적인 소통의 필요성을 느끼는 걸까요?

예전에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 심사위원 중 한 분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멋진 말을 했어요. “여기 나온 참가자들이 이 콩쿠르를 통해 일시적인 명예나 부를 원하는 거라면 누구에게도 1등을 주고 싶지 않다.” 클래식 음악은 유명함과 거리가 먼 거 같아요. SNS는 클래식이 이 시대에 좀 더 많은 의미를 가지면 좋을 거 같아서 소통하는 의미로 시작했고요. 이걸로 유명해지고 싶다기보다는 어떤 공동체가 이뤄지는 느낌이 들어요. 누구나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법이고 인정받고 싶어 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더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알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싶고, 그럴수록 음악의 폭도 넓어질 거라 생각해요.


혹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지 않았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요?

그럼요. 스물여덟 살쯤 바이올린을 그만두게 되면 무슨 일을 하고 살지 궁금해요. 음악하면서 워낙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왠지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왜 ‘스물여덟 살쯤 바이올린을 그만두게 되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걸까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3등을 한 친구가 있어요. 굉장히 잘나가는 피아니스트였는데 갑자기 피아노를 그만뒀어요. 서른 살쯤에 나사에 들어갈 거라고요. 이 친구가 하버드 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했는데, 재능이 많은 친구인 거죠. 지금은 나사 들어가겠다고 해병대 훈련받고 있어요. 제가 보기에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거든요. 왜냐하면 그때까지 음악을 하다가 그만두는 게 쉽지 않아요. 저도 그냥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이 친구처럼 재능이 많지는 않지만 바이올린만큼 사랑하는 게 있을까.


파가니니의 고향인 제노바에 다섯 번 정도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파가니니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느꼈다고 들었어요. 본인도 그런 사랑을 받는 연주자가 되고 싶지 않나요?

기본적으로 연주자는 청중에게 의지하는 부분이 있어요. 음악이 한 사람을 위한 게 아니기 때문에 피드백도 중요하고요. 그리고 청중이 좋아해주면 연주자도 당연히 좋죠. 그런데 저는 한 가지만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시도를 하는 음악가였으면 좋겠어요. 궁극적으로는 인간적인 연주를 하고 싶고요.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해서 인간다움과 멀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더 가까워지는 거죠.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두고 떠나는 것이니까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세상에 도움을 주고 싶어요.


클래식 음악 연주자는 수백 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어요.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것 같아요.

누군가는 꼭 이 직업에 종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니어도요. 고대부터 내려오는 책 같은 걸 번역하는 분들도 있잖아요.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은 아니겠지만 누군가는 그 작업을 해야만 할 거예요. 그게 필요한 사람이 있을 테니까.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가치를 말해주기 때문에 계속 이어져야 된다고, 그럴 거라고 굳건히 믿어요.


(Esquire Korea 2018년 12월호에 수록됐던 기사를 재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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