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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Mar 11. 2020

봉준호 감독 인터뷰

2008년에 만난 봉준호 감독과의 인터뷰.

(이 글은 최근이 아닌 2008년에 진행한 봉준호 감독과의 인터뷰 내용을 기록 보존 차원에서 재편집한 것이니 참고 바랍니다.)

지난 2007년, 봉준호 감독은 레오 까락스와 미셸 공드리가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도쿄!>의 <흔들리는 도쿄>를 연출했다. 덕분에 생애 첫 해외 로케이션을 경험한 봉준호 감독은 다시 국내로 돌아와 차기작으로 결정된 <마더>의 촬영을 준비 중이다. <마더>는 김혜자와 원빈이 모자 관계로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큰 관심을 얻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더>의 핵심 키워드는 봉준호 감독일 것이다. 김혜자를 9년 만에, 원빈을 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시킨 것도, 봉준호라는 이름과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 스스로의 말처럼 그는 '고작 영화 세 편 찍은 감독'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단지 그 세 편만으로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명망을 얻은 감독이 됐다. 13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괴물>의 흥행 기록도 대단하지만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 그리고 <괴물>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적 공포를 영화로 환기시키는 작품으로서 동시대 한국 관객에게 강력한 공감을 얻었다. 봉준호라는 이름 석자를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지난 제9회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 자격으로 전주에 머물던 봉준호 감독을 만난 것도 그 기대감과 무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명확하게 형체가 드러나지 않은 <마더>에 대한 직접적인 물음을 던지는 대신, 지금까지 봉준호 감독이 보여준 영화를 통해 쥐었던 몇 가지 물음표를 내밀었다. 그리고 블랙코미디처럼 위트 있는 답변들이 뾰족하게 정곡을 찔렀다.


볼 영화가 많을 텐데, 인터뷰까지 하느라 바쁘시겠군요.
계속 영화를 봐야 하지만, 상영시간 중간마다 진행하면 될 것 같아요. 어차피 영화는 계속 봐야 하는 거니까.


오늘도 봤을 텐데.

매일 두어 편씩 보고 있죠.


영화제 심사위원으로서 영화를 본다는 건 아무래도 관객으로서 영화를 본다는 것과 다른 일이겠죠?

영화를 채점한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저도 별로 좋아하는 일은 아니에요. 그래서 관객으로서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죠. 미장센 단편영화제 모토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이었기 때문에 심사기준 역시 '우리는 그런 거 없고 자기 꼴리는 대로 가면 된다'란 식이었거든요.(웃음) 지금도 변함없이 마음속에 그런 기준을 갖고 있어요. 물론 오피셜 한 척하기 위해 공식적인 심사기준을 언급하긴 하겠지만. 그리고 영화제 심사위원이 스케이트 날의 인 에지(inside edge), 아웃 에지(outside edge)로 채점하는 피겨스케이트 심사위원은 아니기 때문에 객관성이란 것 자체가 사실상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죠. 그래서 제게 가장 새롭고 참신한 느낌을 주고, 저를 흥분시키는 영화를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심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감독님을 흥분시키는 영화란 주로 어떤 영화인가요?

되게 사소해도 되는 거죠?


당연합니다.
어떤 인물이 뛰어가는 장면을 보면 이상하게 가슴이 막 뛴다고 할까요? 그리고 배우가 막 뛰어가면 카메라가 또 따라가겠죠. 뛰어가는 사람을 찍으려면 어쩔 수 없이 따라갈 테니까. 영화의 전후 맥락을 떠나서 그런 장면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벌렁벌렁해지면서, 그 영화가 좋아져요.(웃음) 예를 들어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에서도 보면 달리는 장면이 길고 고요하게 나오잖아요. 그걸 볼 때마다 마음이 되게 이상하죠. 그리고 어제 호텔 로비에서 전주영화제 게스트인 드니 라방이 차에서 내리는 걸 봤는데, 그 양반이 옛날에 출연한 레오 까락스 감독의 <나쁜 피>에서도 엄청난 달리기 장면이 있잖아요. 컬러풀한 펜스 옆으로 막 지나가는, 그때 아마 데이비드 보위 음악이 나왔던 거 같은데 그 장면도 이렇게 추억처럼 떠오르네요. (뛰는 장면들이) 이상하게 저를 흥분하게 만드는 데가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인지 제가 찍었던 영화에도 대부분 뛰는 장면들이 있고.


달린다는 이미지가 감수성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나 봅니다.

모르겠어요. 스트레스 해소가 잘 안 돼서 그러나.(웃음) 사실 저는 잘 뛰지 않거든요. 평소에 운동도 잘하지 않고. 그래서 왠지 마음만이라도 뛰고 싶나 봐요. 제가 지금 경쟁작 열두 편 중에서 네 편을 봤는데 그중 세 편에 뛰는 장면들이 있었고, 그중 한 편에서는 특히나 아름다운 장면이 있었어요. 심사 중이라 (작품명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그 영화에서 본 그 장면이 갑자기 지금 눈 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네요.


아까 언급한 드니 라방은 말씀하신 대로 레오 까락스 감독의 작품에 상당히 많이 출연했잖아요.

(레오 까락스의) 페르소나죠. 이번에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도쿄!>의 레오 까락스 감독 작품에서 또 주인공을 맡았어요.


<도쿄!>로 레오 까락스 감독을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도쿄!>를 촬영할 때, 감독 세 사람의 스케줄이 다 달랐어요. 제가 여름에 제일 먼저 찍었고, 미셸 공드리랑 레오 까락스가 각각 가을, 겨울에 찍어서 도쿄에서의 촬영 일정이 겹친 적은 없었죠. 그런데 홍보용 사진을 찍기 위해 세 감독이 딱 하루 동안 모인 적은 있었어요. 아슬아슬하게 스케줄을 맞춰서 성사됐는데 그때 잠깐 봤죠. 말이 되게 없더라고요. 반대로 공드리는 굉장한 수다쟁이라 이야기를 많이 했고요.(웃음)


사실 세 감독의 영화적 특징이 판이해서 <도쿄!>라는 결과물을 쉽게 짐작하긴 어렵습니다.

세 작품 다 엄청 제각각일 것 같아요. 어쩌면 그런 게 옴니버스의 재미일 테고요. 오히려 세 작품이 비슷하면 좀 별로겠죠.(웃음) 각자 개성이 강한 만큼 저마다 다른 작품을 보여주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묘한 공통점이 보일 수 있다면 성공적인 옴니버스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사실 지금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른 두 분이 어떤 영화를 찍었는지, 시나리오조차 보지 못했으니까. 이번 칸 국제영화제에 가야 저도 볼 수 있겠죠. 그래서인지 제 영화의 프리미어에 참석하는 것인데도 남의 영화를 보러 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옴니버스라는 게 기분을 묘하게 만드는 것 같네요.


<도쿄!>에서 연출한 <흔들리는 도쿄>에 아오이 유우와 카가와 테루유키를 캐스팅해서 화제가 됐어요.

운이 좋았죠. 둘 다 정말 엄청나게 바쁘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사실 이 프로젝트를 제안받고, 수락할 때부터 카가와 테루유키는 이미 머릿속에 있었어요. 히끼꼬모리를 주인공으로 한 얘기라는 계획도. 카가와 테루유키가 출연한 작품을 그 이전에도 몇 번 봤지만 칸 감독주간에 봤던 <유레루>가 결정적이었어요. 2006년에 <괴물>로 칸 감독주간에 초청됐을 때, 같은 섹션에 <유레루>가 있었거든요. 게다가 <유레루>의 감독인 니시카와 미와와 아는 사이이기도 했어요. 2003년쯤 일본의 한 영화제에서 만난 적 있었는데 <유레루> 이전에 찍은 데뷔작 <산딸기>도 좋은 성찰을 전하는 영화였거든요. 그래서 <유레루>를 기대했는데 역시 영화도 좋았지만 카가와 테루유키에게 완전히 반했죠. 그래서 <흔들리는 도쿄>를 준비할 때부터 카가와 테루유키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고, 다행히도 캐스팅이 잘 됐어요. 그리고 아오이 유우는 저뿐만 아니라 어느 감독이라도 일해보고 싶은 매력적인 여배우잖아요. 그래서 반신반의했죠. 과연 될까 싶어서. 그리고 이미 카가와 테루유키에게 스케줄을 맞춘 상태에서 아오이 유우의 캐스팅에 들어간 상황이라 안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죠. 사실 카가와 테루유키도 1년 스케줄이 다 정해진 상황에서 빈 날짜를 찾아서 촬영일자를 잡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오이 유우의 스케줄까지 맞추긴 어려울 거 같았거든요. 게다가 아오이 유우는 사실상 더 바쁜 배우였고요. 그런데 아오이 유우 관계자를 처음 만났을 때 아오이 유우가 <살인의 추억>이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 봤고 너무 좋아했다며, 이 작품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는 거예요. 문제는 스케줄이 너무 복잡한 상황이라 일단 캐스팅이 성사되진 않았어요. 그러다가 몇 달 후에 다른 여배우를 찾고 있던 중에서 아오이 유우 측에서 연락이 왔어요. 할 수 있게 됐다고. 그래서 쾌재를 불렀죠.(웃음) 원하는 대로 돼서 너무 기뻤으니까. 게다가 <쉘 위 댄스>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이자 감독이기도 한 다케나카 나오토에게도 출연 제안을 했는데 한국영화 팬이라며 제 영화도 모두 다 봤고 좋아한다며 흔쾌히 수락해서 정말 좋았어요. 정말 바쁜 세 배우가 그렇게 캐스팅됐죠.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흔들리는 도쿄> 촬영 현장의 카가와 테루유키와 봉준호 감독(왼쪽부터)
<흔들리는 도쿄> 촬영 현장의 아오이 유우와 카가와 테루유키 그리고 봉준호 감독(왼쪽부터)

<도쿄!>는 첫 해외 프로덕션 작품이기도 하고, 첫 해외 로케이션 작품이기도 합니다.

언어가 관건이었죠. 대사가 일본어라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디렉팅 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어요. 통역이 있다고 하지만 잘할 수 있을지 약간 무섭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 좋은 경험이었어요. 재미도 있었고. 외국어로 연출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는 것 자체가 개인적으로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연재미 씨라는 뛰어난 통역사의 힘을 빌린 덕분이지만 인간의 감정, 배우의 감정이 말로만 통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느낌이나 뉘앙스라는 만국 공용어가 존재한다는 걸 느꼈죠. 일본말로 표현하건, 불어로 표현하건, 영어로 표현하건, 한국어로 표현하건, 슬픔은 결국 슬픔이 되더라고요. 그걸 깨닫고 나니까 어느 순간부터 되게 수월했어요. 비록 낱말을 알아듣진 못해도 배우가 대사를 할 때, 이건 NG다, 이건 OK다, 이런 느낌이 점점 명확하게 다가왔고 배우들도 저와 마음이 잘 통했는지 제 결정을 잘 따라줬어요.


일본 영화계의 제작 시스템이나 환경의 차이를 경험한 것도 유용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일본은 타이트하죠. 한국은 장편영화를 보통 3~4개월 안에 찍는데, 일본은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 대작이라 해도 두 달 반 안에 끝내요. 스케줄이 빡빡하고, 빨리 끝내는 편이에요. 대신 프리 프로덕션부터 치밀하게 준비하는 편이고, 촬영 중간에 좀처럼 쉬질 않아요. 일주일에 6일이건, 7일이건 쉬는 날 없이 막 가요. 스텝들이 월급제 계약식이라 제작비 측면에서 촬영 기간에 민감하거든요. 한국도 작년에 한국영화산업 단체협약이 성사됐고 점점 그런 시스템으로 바뀌어가는 중이라 아마 곧 한국영화 현장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다 장단점이 있죠. 일본 스태프는 하드 하게 단련된 덕분인지 직업적인 숙련도나 집중력이 정말 뛰어났어요. <흔들리는 도쿄>를 찍으면서 저보다 나이가 많은 40대 중반의 직업 조감독과 일했는데 기존에 촬영한 작품 수도 어마어마하게 많았고, 그래서인지 스태프들의 존경심이 상당했고, 현장에서의 권위가 느껴졌죠. 그에 걸맞게 조감독으로서 책임감도 강한 사람이었고요. 이 현장을 자신이 진행한다는 의무감이 대단했고, 그만큼 정교하게 시간 단위로 촬영 스케줄 관리를 잘했어요. 다만 약간 답답한 면도 있었는데 한국 현장 같으면 쉽게 돌파할 수 있을 만한 일을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요. 같은 일을 되게 어렵게 한다는 느낌도 들었죠. 좋게 말하면 돌다리도 두들겨본다는 식인데, 나쁘게 말하면 왜 저런 일로 에너지를 낭비하는 걸까 싶을 만큼 소심해 보이는 측면도 있죠. 저마다 장단점이 있는 거 같아요.


모든 상황을 세세하게 짚고 넘어가는 편인가 보군요.
매우 그래요. 그래서 믿음직스럽고 안정감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만약 내가 갑자기 아이디어를 바꾸거나 급격한 변화를 제시할 때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기도 하더군요.


한국의 현장에서는 그런 변동성이 비일비재하긴 하죠.
그렇죠. 감독의 생각이 순간적으로 바뀌는 일들이 적지 않죠. 그래서 그런 상황을 순발력 있게 따라오는 게 한국 스태프들의 힘이고요. 사실 일본 현장에서 몇 차례 갑작스럽게 변화를 주면서 테스트해본 적이 있긴 해요.(웃음) 저는 직접 콘티를 세밀하게 그려서 제시하는 편인데 스토리보드가 있으니까 일본 스태프도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몇몇 순간에 갑작스럽게 변화를 주면서 어떻게 되나 한번 살펴봤죠. 그들도 나름 잘 따라오려고 하더라고요.


일종의 시장조사를 한 셈이네요.(웃음) 방금 말씀하신 대로 감독님은 콘티를 상당히 디테일하게 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아무래도 완벽하게 구상을 마친 이미지를 카메라로 완전히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영화를 찍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카메라의 위치나 프레임들, 공간이나 카메라 워크, 이런 건 미리 세밀하게 준비하는 편이에요. 촬영이 확정된 장소를 제대로 관찰한 후 콘티를 그리죠. 머릿속으로만 담아두는 게 아니라 정말 실질적인 콘티 작업을 하려고 애쓰는 편이에요. 다만 그렇게 구상된 화면 속으로 배우가 들어왔을 때 발생하는 변화는 적용해야 한다고 봐요. 배우와의 작업에 있어서는 순간순간마다의 감정이나, 현장에서의 느낌을 굉장히 중시하는 편인데요. 배우들이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제기하거나 즉흥 연기를 잘 구사하면 좋아하는 편이죠. 드라마나 스토리, 캐릭터의 본질을 해치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기대하는 쪽이기도 하고요. 어떤 면에서는 현장에서 변화를 많이 주고자 해요. (배우들과) 같이 대사도 많이 고치고.


작품마다 공간의 이면을 발견하게 되는 점도 일관된 특징처럼 보입니다. 일상적인 아파트 지하에서 서스펜스가 발생하고, 평온해 보이는 농촌에서 시체가 발견되고, 살인이 이어지고, 그리고 한강에서 괴물이 출몰한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공간의 전형성을 배반함으로써 영화적 특이성을 획득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더 크게 보면 그 공간 안에 뭔가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뒤섞여 있죠. 어떻게 보면 악취미이기도 한데,(웃음) 그러니까 심각하고 장중해 보이는 장소에서 조잡하고 뻘쭘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거나,(웃음) 반대로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늘 오고 가며 지나치던 논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던가, 어쩌다 휴일에 가서 오리배나 타는 한강에 어이없게 괴물이 활보한다거나, 너무 생경한 일이겠죠. 만약 울산에 있는 오래된 폐공장의 어두운 지하에서 괴물이 나온다면 분위기도 그럴싸하겠지만 한강은 괴물이 나오기엔 좀 썰렁한 공간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자전거나 빌려 타던 한강 다리 밑에서 갑자기 괴물을 맞닥뜨린다면 뜨악해지겠죠. 제가 그런 이상한 부조화를 좀 좋아하는 거 같아요.


어쩌면 그게 장르영화에 적용할 수 있는 한국적인 리얼리티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할리우드 장르영화와 한국영화 사이에서, 그러니까 미국과 한국의 현실 사이에 갭이 크잖아요. 한때는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특징도 사실적인 리얼리즘에 있었는데 그게 오랜 세월을 흘러오다 보니 장르의 컨벤션이 돼서 굳어버린 거죠. 중절모를 쓰고, 기관단총을 쓰는 갱스터가 미국의 과거에, 1930년대 금주법 실행 당시엔 실제로 있었던 거잖아요. 근데 그게 하나의 장르가 되고 컨벤션과 클리셰가 된 건데, 우리는 한국 현실에 살면서 애초에 그런 미국적 리얼리티와 동떨어진 삶을 살면서 장르만을 봐왔잖아요. 그 갭 자체가 영화에 적용돼 들어가 버린 거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한국적인 현실이 반영된 제 영화가 생경하고 특이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진 게 아닐까 생각해요.

<괴물> 촬영 현장
<괴물> 촬영 현장

공간의 이동 경로나 진행 방향에 따라 발생하는 감정의 양상도 다른 것 같습니다. 수직적인 이동이 야기되는 상황에서는 긴장감이 발생하지만 수평적인 상황에서는 처연함이 발생한다고 할까요. <괴물>을 예로 들면 현서(고아성)가 괴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하수구에서 탈출하려 안간힘을 쓸 때는 긴장이 발생하지만 희봉(변희봉)이 괴물과 맞서다 죽는 한강고수부지 씬에서는 처연함이 묻어납니다. 남일이 빌딩에 올랐다가 탈출하는 수직적 상황도 그렇고, 결말부에 강두가 괴물을 저지하는 상황도 수평적이라고 볼 수 있고요. 수직과 수평이라는 동선의 이동에 따라 영화의 감정도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그렇게 까지 거창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만,(웃음) 사실 제가 수직적인 것에 대한 집착은 있어요.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아파트는 수직적인 공간이었죠. 그리고 수평적인 복도에서 현남(배두나)과 윤주(이성재)가 쫓고 뛰어가면서 벌어지는 사건도 발생하고요. 옥상이나 깊숙한 지하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도 있었고. 그리고 <괴물>은 명백하게 현서가 수직적인 공간에 감금되어 있는 거니까, 수직적인 비극이라고 할 수 있겠죠. 불과 몇 미터 높이를 올라가지 못해서 안간힘을 써야 하는 공포와 긴장이 있는 거니까. 그런데 수평이 어떤 감정과 연결됐다는 인식을 못했는데 말씀하신 걸 듣고 나니까 <괴물>의 변희봉 선생님 장면이나, <살인의 추억>의 백광호(박노식) 현장검증이 아수라장으로 마무리된 장면이 떠오르네요. 고속촬영으로 촬영된 신에서 사람들이 모두 뒤엉키고, 논의 흙탕물이 튀는데 그런 인간군상이 어떻게 보면 약간 우스꽝스럽다가도, '우린 다 같은 못난이들이야'라는 것 같아서 처연하기도 하고. 사실 잘 몰랐는데, 그런 면도 있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괴물>에서는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마다 비용 대비 최대 효과를 얻어내는 것이 최고의 화두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웃음) 한정된 예산 안에서 괴물이 출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숏의 숫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요. 단지 100여 숏 안에 최대한 표현해내야 하다 보니 시나리오 상에서 괴물이 등장하는 숏을 최대한 줄여나가야 했죠. 그만큼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지만 할리우드에서도 다 겪는 일이더라고요. 이안 감독의 <헐크> 메이킹 영상을 보면 스토리보드상 CG 숏이 4백여 개 정도 되는데 프로듀서와 시각효과 감독이 여기서 100여 개 정도를 줄여야 된다고 이야기하니까 이안이 영어를 못 알아듣는 척하면서 눈만 깜빡이는 장면이 있어요.(웃음) 그런 데서 위안을 받았죠. 동시에 좀 더 좋게 생각해보자면 그런 현실적 한계가 제 창의력을 자극한 부분도 있었던 거 같아요. 괴물이 카메라엔 안 잡히지만 같은 공간 안에 계속 존재하고 있다는 존재감을 유지시키면서 공포감, 긴장감을 유발해야 되니까 그런 연출을 하기 위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쥐어짰으니까요. 예를 들어 도입부에서 괴물이 처음 나타났을 때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안에서 사람들 뒤엉키고, 컨테이너 박스가 이렇게 흔들리고. 그건 CG 숏도 아니고 컨테이너 뒤에서 기계로 컨테이너 박스만 뒤에서 기계로 흔든 건데, 관객은 머릿속으로 그 안에 괴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니까 결국 그 안의 지옥 같은 아수라장을 상상하는 거잖아요. 그런 긴장감을 어떻게 계속 끌고 가느냐가 관건이었죠. 그래서 좋게 받아들이면 좋은 상황이기도 했던 거 같아요. 게다가 <괴물>이 순 제작비만 100억 원이 넘은 영화였기 때문에 한국영화 기준으로 봤을 때에는 대작 내지는 블록버스터라고 말했지만 비슷한 특수효과를 사용하는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에는 정말 저예산 영화나 다름없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 때보다 더 많은 압박감을 느꼈어요. 결국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긴 한데, 사실 예산이 두세배 정도 풍족했다면 어땠을지, 이런 미련이 남긴 하죠.


해외에서의 인지도가 높아진 만큼 연출 제의도 심심찮게 들어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영화보다 제작비 여건도 좋은 작품도 있을 거 같고요.

영화의 탄생 때부터 있었던 일이지만 제작비의 지원이 클수록 그에 상응되는 간섭은 더 커지기 마련이죠. 다행히도 저는 좋은 제작자들을 만나서 단 한 번도 간섭받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극장에 개봉된 세 편의 영화는 모두 디렉터스 컷일 수 있었고요. 촬영에서건, 편집에서건, 큰 압박을 받은 적은 없었어요. 그게 제 행운이었다고 봐요. 제가 제 영화를 100%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 저로써는 그게 가장 중요하거든요. 이번에 <도쿄!>도 100% 제 컨트롤로 완성한 영화인데 그만한 충족이 된다면 해외에서도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런데 만약 그런 점이 보장되기 어렵다면 수천억을 줘도 별 의미는 없을 거 같아요. 사실 할리우드에 제 에이전시가 생긴 덕분에 할리우드의 스크립트 시나리오는 계속 들어오고, 이런저런 제안을 받은 경우도 있었어요. 일본에서도 몇 차례 장편 영화 제안을 받은 적 있었고, 이미 하기로 한 프로젝트도 있고. 다만 지금은 조심스럽게 짚어보는 상황이라 선뜻 뭐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작품에 대한 컨트롤만 가능하다면 외국에서 영화를 찍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거 같아요.


전주국제영화제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건 '2004 디지털 삼인삼색’에 참여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인플루엔자>라는 단편영화를 찍었죠.


그 작품이 유일하게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영화인데 디지털로 장편영화를 찍어볼 계획은 없나요?

지금의 트렌드나 산업의 흐름상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겠지만 사실 저는 필름광이에요. 필름으로 찍힌 사진을 좋아하죠. 물론 편하니까 디카를 쓰긴 해도 여전히 필름으로 사진을 찍기도 해요. 필름에서만 전해지는 화학적 느낌과 그 맛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네거티브한 질감 같은 것 말입니까?

네. 그래서 어떻게든 필름을 써보려고 버티는 쪽이 될 거 같아요. 요즘은 배급의 경제논리로 디지털 상영을 많이 하는 편인데 저는 디지털 프로젝터로 상영되는 스크린의 느낌도 좀 싫어요.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 그래요. 그런데 최근에 그런 선입견을 깨뜨린 게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조디악>인데 HD로 촬영했더라고요. 바이퍼 카메라로 찍었다는데 화면에서 품격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정말 좋았고, 저런 정도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면 HD도 해볼 만하겠다 싶었어요. 중후한 살인 사건 영화임에도 화면이 묘하게 부드러우면서도 아름답고, 하여튼 그 느낌이 독특했어요. 인상적인 경험이었죠. 조명이나 시각 효과 자체도 뛰어났던 거 같아요. 그리고 마이클 만 영화에서의 HD 역시 아름답고 박력 있는 느낌을 주죠.


<이공> 프로젝트 당시에 다른 감독들이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할 때 혼자 16mm 필름을 사용한 것도 그런 애정 때문이었습니까?

그때는 몇 가지 사정이 있었어요. <이공>에서 제가 찍은 6분짜리 단편 <Sink & Rise>는 원신 원테이크로 찍었잖아요. 어두운 다리 밑에 있는 매점 앞부분에서 한강 둔치까지 나가는 과정을 다 원테이크로 찍다 보니 노출이나 밝기에 큰 변화가 생기는데 그걸 6mm 디지털카메라로 찍자니 극복하기 힘든 핸디캡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반칙을 했죠. 디지털 프로젝트인데 저만 16mm 필름으로 찍었으니까.

<인플루엔자>
<Sink & Rise>

작품마다 인상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애정이 컸다고 느낀 인물을 하나 꼽는다면 누구일까요?
다들 애정이 가지만 딱 한 명만 꼽으라면, (잠시 생각하다가) 지금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한 명은 <괴물>에서의 현서, 고아성 양이네요. 모든 가족이 구하려고 하는 사람이니까 그저 단순히 대상화될 수 있는 캐릭터인데도 그 안에서도 더 약한 애를 구하려고 발버둥 치잖아요. 결국 끝에 가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조그마한 남자아이를 보호하고 끝내 자기 아버지에게 인계한 셈이죠. 왠지 현서 생각이 나네요.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까지, 지금까지 연출한 세 작품 속의 인물들은 늘 무언가를 찾는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강아지나, 범인이나, 현서나. <플란다스의 개>는 강아지를 찾아냈지만 진범을 찾지 못한다는 아이러니가 있었고, <살인의 추억> 역시 연쇄살인마를 잡지 못하는 형사들의 이야기이고, <괴물>의 가족도 살아있는 현서를 만나지 못합니다. 결국 인물들이 원하는 바가 해소되지 못한다는 공통된 맥락이 이어집니다.

그렇게 보니 진짜 뭔가 제대로 성사된 적이 없네요. 항상 빗나갔군요. 제가 좀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데.(웃음)


어쩌면 그게 감독님께서 인지하시는 한국적인 현실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그들이 하나같이 서민이자 사회적 약자라는 점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살다 보면 참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많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고’라는  ‘쿵따리 샤바라’ 가사처럼 말이죠.(웃음) 디즈니 영화에서는 모든 상황이 안락하게 봉합되며 끝나는데 그렇게 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잘 안 되잖아요. 실패하거나 어긋나는 게 우리 삶에 가까운 모습이죠. 그래서 오히려 관객들이 제 영화에 공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조금 씁쓸하거나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래서 오히려 위로받는 것일지도 모르죠. '나도 저랬지. 그렇지만 계속 살아야지 어쩌겠어'라는 마음으로. (<괴물>에서) 강두(송강호)도 딸을 못 구했지만 세주(이동호)와 함께 꾸역꾸역 밥을 먹으며 살잖아요. 산사람은 계속 살아야 하니까. 결과적으로는 슬픈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낙관적인 거 같기도 하고요.


<괴물>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비롯한 정치적 상황을 연상시키는 측면도 있는데요. 비약적인 질문일 수 있겠지만 감독님이 바라보는 정치적 관점이 개입된 바가 있진 않을까요?

<괴물>이 괴수 장르다 보니까 장르 전통에 맞게 직설적이고 썰렁한 정치풍자를 많이 하긴 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괴물>이 드러내는 풍경은 정치 이전에 더 큰 삶의 영역을 보여주는 거 같아요. 사소한 게 안될 때도 많잖아요. 짬뽕시켰는데 자장면 나오듯이.(웃음) 거대한 정치적 영역까지 다다르지 않아도 일상적으로 원하는 게 안 되는 삶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리고 속상해도 배가 고프면 자장면이라도 먹어야 되는 게 삶인 거죠.


<괴물>은 분명 진보적인 메시지를 품은 영화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1300만이라는 스코어를 기록했죠. 단순히 그 머릿수를 개개인의 정치의식으로 온전히 치환하는 건 무리겠지만 정말 많은 수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보수 정권이 들어서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감독님에게 어떤 아이러니한 단상을 줄만한 사안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괴물>에 의도적인 풍자나 메시지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관객 입장에서 영화를 받아들일 때에는 여러 가지 맥락이 발생할 거 같아요. 가까운 지인 말로는 어린 초등학생 딸내미와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런 질문을 받았대요. "아빠도 내가 잡혀가면 저렇게 해줄 수 있어?" 그 아이 입장에선 그런 부분이 두드러져 보였겠죠.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때 득표수를 보면 1100만 표 정도 되더라고요. 근데 방금 1300만 명이 제 영화를 봤다고 하신 이야기를 들어보니 <괴물>을 본 관객수가 대통령 득표수보다 많은 거잖아요. 물론 그래서 <괴물>이 잘 났다는 게 아니라.(웃음) 어쨌든 정치적인 투표행위, 즉 정당과 인물을 선택하는 행위와 영화를 감상하는 행위는 다른 거 같아요. 영화는 다층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니까. <괴물>을 본 관객 중에는 변희봉 선생님을 보면서 자기 아버지를 생각한 사람도 있을 거고, 미국에 대한 풍자나 정치적인 서브 텍스트에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도 있었을 거예요. 내 아빠라면 어떻게 할지 궁금해하는 꼬마도 있는 것처럼, 광범위한 감상이 나올 수 있는 것이죠.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처럼 직접적인 정치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대중의 정치적 성향과의 함수 관계 같은 걸 쉽게 짚어보긴 어려울 거 같아요. 훨씬 혼란스럽고 복잡한 문제겠죠. 그러므로 <괴물>이 진보적인 성향의 풍자를 담은 작품이고, 그런 영화를 13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봤다 해도 그다음 해에 보수적인 성향의 정치인에게 1100만여 명의 사람이 투표했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라는 논리를 세우긴 어렵겠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훨씬 더 복잡한 층위의 문제라고 봐요.

<괴물>의 결말에는 일말의 서스펜스가 담겨 있지만 <살인의 추억>의 결말과 비교했을 때에는 좀 더 희망적인 여운을 쥐여주는 것 같아요. 그건 아무래도 실화를 바탕에 두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괴물>은 현서가 죽음에도 불구하고 낙천적인 면이 있는 거 같아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영화가 밥 먹으면서 끝나잖아요. 먹는 걸 계속 강조하는 영화이기도 했고. 혈연관계가 아닌 괴상한 인연의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꾸역꾸역 밥을 먹으며 끝나는 결말에는 낙관적인 면이 있다고 봐요. 반면 <살인의 추억>은 어쩔 수 없이 어둠을 직시해야 하는 영화였죠. 제목은 역설적으로 추억이라는 단어를 붙였지만 실제론 추억이라 말할 수 있는 과거가 아닌, 해결되지 않은 과거이기 때문에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사건인 것이죠. 우리가 80년대에는 이렇게 연쇄살인범 하나 못 잡았고, 줄줄이 죽어가는 여자들을 보호하지 못한 채 살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안도감으로 과거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거죠. 2003년 배경의 에필로그 형식으로 등장하는, 박두만(송강호)이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라스트 컷을 그래서 넣었고요. 과거에 우리에게 이렇게 어두운 시절이 있었는데 그 어둠을 지금 우리는 완전히 다 씻어낸 것인가.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죠. 만약 그런 면에 너무 강하게 집중했다면 어둡고 막막해지는 느낌이 있었을 거예요. 좀 더 부담스러운 영화가 될 수도 있었겠죠.


결국 과거나 허구를 통해서 현재와 현실을 환기시키는 셈인데, 그것이 봉준호라는 감독이 추구하는 영화적 리얼리즘이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리얼리티,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실에 대한 관심은 많은데 리얼리즘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없어요. 특별히 추구하지도 않고요. 오히려 영화는 판타지라고 믿는 쪽이죠. 대신 한국적인 리얼리티와 판타지가 이상하게 충돌했을 때 거기서 발생하는 생경한 영화적 흥분을 좋아하는 것뿐이에요. 아까 말한 것처럼 한강둔치에서 뛰어나오는 괴물 같은, 거기서 나오는 생경한 영화적 흥분을 좋아하는 것일 뿐이에요. 켄 로치나 올리버 스톤의 영화처럼, 한국 현실에 대해 의도적으로 목청 높여 메시지를 부르짖거나 발언하고 싶진 않아요. 제가 계몽적인 메시지를 던질만한 주의나 주장을 가진 사람은 아니고, 제 자신의 생각에도 항상 회의를 품는 성격인 데다가 주장을 하기에는 되게 소심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다만 한국 사회에 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이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한 공포감은 있죠.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지 않아요? 누구나 힘들잖아요. 물론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사회가 그럴 수 있겠지만 제가 외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고, 한국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제게 사회나 시스템은 그냥 한국인 거죠. 그런 면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투영되는 거 같아요. 한국사회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이 영화에 반영되는 셈이죠. <괴물>에 등장하는 것처럼, 합동분향소에서 집단 장례식을 한다는 건 그만큼 사람이 떼로 죽는다는 얘기니까 그것만으로도 엽기적이고 공포스러운데, 그 와중에 거기서도 누군가 '2487 차 빼!'라고 막 소리 지르고.(웃음) 우리가 매일같이 겪는 일이잖아요. 차 빼 달라는 말을 하거나 듣는 거. 그게 웃기지만 알고 보면 되게 슬프고 공포스러운 순간인 거죠. 한국 사회에 그런 이상한 감정들이 용광로처럼 뒤엉켜있다고 보기 때문에 관객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 몰라도 일단 저는 그걸 고스란히 표현하고 싶은 거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영화적 모티브가 된다는 것이군요.

그렇죠. 영화나 드라마는 현실을 따라갈 수 없다니까요.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보면 정말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싶은 일들이 많이 보이잖아요.(웃음) 모든 창작자들이 그렇겠지만 저는 확실히 주변 현실에서 받는 자극이나 영감이 큰 편이에요. 소설이나 영화와 같이 타인의 창작물을 보면서 느끼는 자극보다도 개인적인 경험이나 제가 살아가는 주변에서, 한국 사회의 어떤 모먼트에서 자극을 받는 경우가 많죠.


그런 자극을 기록해두기도 하나요?

그럼요. 특히 <플란다스의 개>에서 소소한 일상의 디테일을 구성할 때 많이 활용했어요. 휴지를 굴리는, 그 어처구니없는 장면도 그런 경우였죠. 실제로 해본 건 아니었고, 조감독 시절에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면서 해봤던 생각이었거든요. 조감독 시절에는 워낙 돈이 없었어요. 그런데 애는 키워야 되고 생활은 쪼들리니까 맨날 아르바이트도 나갔는데 돈이 없이 지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만큼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슈퍼에서 음료수를 살 때 용량 120㎖ 이렇게 쓰여 있으면, '이게 120㎖가 맞는지, 안 맞는지, 누가 알아? 누가 재봤어?'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0.5ℓ 함유? 이 자식들, 0.4ℓ 넣어놓고 이렇게 파는 거 아냐?' 막 이렇게 예민하게.(웃음) 휴지도 겉면에 100m라고 쓰여 있는데, '진짜 100m 맞아? 운동장 100m 트랙 위에 쫙 펴볼까?'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다 보면, '내가 봐도 이건 너무 쪼잔하다, 어쩌다 내가 이런 인간이 됐지?'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웃기니까 공책에 적어두게 됐어요. 그러다 그 이상한 시추에이션들이 시나리오까지 들어가게 된 거죠.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전주영화제가 끝나면 이제 <도쿄!> 프리미어가 열리는 칸영화제로 가시겠군요. 이제 한국을 대표할만한 감독으로 꼽히고 있기도 한데.

김기덕 감독님이 대표할만한 분이죠.(웃음)


최근 영화주간지에서 조사한 영화인 파워 리스트마다 감독 중에 가장 상위 랭커를 차지했어요.

그게 참 이상하죠. 사실 저를 규정하는 가장 명쾌하고 쉬운 방법은 영화 세편 찍은 감독이라는 거예요. 세 편밖에 못 찍었고, 계속 가봐야 알 수 있는 거죠. 저의 유일한 꿈은 임권택 감독님이나 마뇰 드 올리비에라처럼 끝까지 현역으로 남아서 영화를 계속 찍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한 번쯤 걸작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계속해보려는 것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말씀하신 파워 리스트 같은 건 그저 형식적인 거 같아요. 제가 제작사나 영화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영화로 찍고 싶은 스토리나 저를 흥분시키는 어떤 이미지나 장면에 병적으로 집착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니까. 어쩌면 파워 리스트에서 조만간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죠.(웃음) 만약 그래서 계속 영화를 찍을 수 없다면 개인적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방법들을 마련해봐야겠죠.

김혜자 씨가 <마더>에 캐스팅됐다는 게 그 파워를 증명하는 사례가 아닐까요?

김혜자 선생님은 <괴물> 이후가 아니라 <살인의 추억> 직후에 처음 연락드린 거였어요. 그니까 <마더>는 <괴물> 전부터,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던 프로젝트였고, 김혜자 선생님의 캐스팅을 전제로 둬야만 성립되는 프로젝트였죠. 다행히 배우가 먼저 정해진 상태에서 시나리오도 쓸 수 있었고요. 생각해보니 김혜자 선생님을 처음 뵌 지는 벌써 4년이 흘렀네요. 선생님도 많이 기다리셨죠.


벌써 <마더>의 차기작도 정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2010년도쯤에 <설국열차>도 제작하실 예정이죠?

2010년이나 2011년쯤에 되겠죠.


아무래도 지금까지 감독님은 한국적 현실을 영화적 배경으로 삼아왔는데 <설국열차>는 아무래도 범세계적인 프로젝트가 될 것 같습니다.

새로운 도전이죠. 그 영화 찍고 나면 많이 늙을 거 같네요.(웃음) 정신과 육체를 최대한 리프레시하면서 잘 버텨야 할 텐데. 일단 대작이 될 거 같아요. <마더>는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짠한 영화가 될 거 같고요. 어쨌든 <설국열차>는 몸과 마음의 준비를 잘해야만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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