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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ul 30. 2020

시가렛 애프터 섹스, 사랑의 그림자를 노래하다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프론트맨 그렉 곤잘레스를 만났다.

어둠이 내려도 열기는 흩어지지 않았다. 식지 않는 밤이 이어졌다. 방 안까지 밀려 들어온 열기로 밀착한 온몸이 말라붙은 땀으로 끈적였다. 이방인처럼 찾아온 열대야와 함께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음악을 들었다. 까만 어둠으로부터 스며든 열기 속으로 나른한 관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열기처럼 눈으로 볼 수 없는 음색이 감각을 건드렸다. 감각의 조각들로 재현된 기억들이 귓가로 흘러들었다. 흘러간 인연을 되짚는 속삭임, 은현하게 끈적이던 사랑의 밀어, 은밀하게 증발해버린 관계의 미언, 뿌옇게 흩어지는 추억들. 시간의 그림자 속으로 은신한 기억 속에서 선명하게 반짝이는 관계의 육체들. 열정적인 사랑의 잔상 속으로 파고드는 언어의 기억들. 어둠이 내려도 열기는 흩어지지 않고, 식지 않는 밤이 이어졌지만,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마지막 트랙은 끝났다.


뜨거운 열기가 세상을 꽉 채웠던 지난 7월 29일,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프런트맨 그렉 곤잘레스를 만나기 위해 홍대의 한 호텔로 향했다.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한국을 처음 방문한 차에 공연 리허설을 준비하기 전 잠시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했다.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커버 아트처럼 까만 옷에 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난 그는 고요하지만 강렬한 흑백사진 같았다. 그를 촬영한 흑백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모니터를 응시하다 또 다른 흑백의 풍경을 상상했다. 떨어지는 해를 품고 찬란하게 빛나는 흑백의 바다를 떠올렸다. 영화 같은 순간이었다. 비록 거기 있지 않았지만 거기서 멀지 않은 것 같았다.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프런트맨 그렉 곤잘레스와 마주 보고 대화를 하면서 그의 깊은 눈매와 옅은 웃음이 그의 음악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와 헤어지고 호텔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세상이 지나치게 뜨겁고 선명하다고 느꼈다. 새삼 그랬다. 그날 밤에도 어김없이 열대야는 찾아왔다.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음악이 흐르고, 식지 않는 밤이 또 한번 찾아왔다.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한국 방문은 처음이다. 한국의 팬들에 대해 들어보거나 인지할 기회가 있었나?

2년 전쯤 유튜브를 통해 유명해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한국에 우리 음악을 듣는 팬들이 좀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고, 언젠가 한국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방문하는 중에도 한국을 찾을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는데 드디어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을 통해 오게 됐다.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기분이 좋다.


다른 언어를 쓰는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있었나?

사실 내게는 언어가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어릴 때부터 프랑스, 일본, 브라질, 포르투갈, 스페인 등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부르는 음악을 많이 듣고 자랐고, 덕분에 좋은 음악은 가사가 아니라 멜로디로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 해도 괜찮다는 걸 알았다. 가사를 이해하지 못해도 즐겨 듣고 좋아한 음악이 있었던 것처럼 나 역시 다른 이들에게 내가 느낀 강렬한 느낌을 전해줄 수 있기를 바라며 음악을 만들어왔다.


그렇게 다양한 국적의 음악을 즐길 수 있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

멕시코 바로 옆에 있는 도시인 텍사스의 엘패소가 고향이고, 멕시코인에 가까운 히스패닉계 혈통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스페인어로 된 음악을 들을 기회가 많았다. 부모님이 특별히 스페인 음악을 많이 들은 건 아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런 음악을 많이 들었다. 사실 스페인어를 못했지만 어쨌든 그런 음악을 듣고 자랐다. 프랑스 음악이나 일본의 J팝은 고등학생이 돼서야 접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혼자 찾아 듣는 편이었다.


결국 그런 다양한 음악적 국적성이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음악적 골격을 만들어낸 셈인 거 같다. 그런데 가사는 개인적인 경험을 투영해 쓰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결국 음악적 외형은 대단히 외향적인 취향의 영향을 받았지만 음악적 내면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다른 문화권의 음악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은 건 확실하다. 언어적으로 통하지 않는 음악이라 해도 음악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내가 음악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내면에 있는 말을 밖으로 내보내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음악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통해서는 내보낼 수 없는 내면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음악을 하고, 그렇기 때문에 내면에 있는 이야기로 가사를 쓰는 건 제일 중요한 작업이다. 뭔가를 해야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문화권의 음악적 경향을 많이 수용해서 음악을 만드는 편이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경험과 성찰이 담긴 결과물을 타인들이 듣고 즐긴다는 사실이 본인에게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올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이 내 음악에 공감해줄 때 굉장히 강렬한 감정을 느낀다. 어떤 면에서는 360도를 돌아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기도 하고. 왜냐면 어렸을 때 내 감정이나 생각을 스스로 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음악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내 음악 또한 다른 이들에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입장이 됐다고 느껴지면 원점으로 회귀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같다. 사람들을 울게 만들 수도 있고, 웃게 만들 수도 있고, 힘든 일을 잊게 만들 수도 있는 그런 음악처럼. 결국 내 곡도 사람들에게 그런 감정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게 내게는 굉장히 강렬한 경험이 된다. 그리고 정말 좋은 음악에 대한 고민은 공감이라는 열쇠를 통해 해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팬들에게 그런 공감대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내 음악이 성공적으로 전달되고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좋다.

그런데 막상 대화를 나눠보니 노래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라 놀랍다. 하이 톤의 미성인 보컬과 달리 말하는 목소리는 굉장한 허스키한 저음이다.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실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음악으로만 접한 이들은 여성 보컬이라고 오해할 정도로 미성인 보컬에 익숙한 상태에서 좀 신기하기도 한데, 이런 반응이 처음은 아닐 거 같다.

자주 접하는 반응이다.(웃음) 사실 내가 좋아하는 보컬리스트는 저음보다는 고음으로 노래하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여성 보컬리스트가 많다. 물론 저음으로 노래하는 세르주 갱스부르 같은 아티스트도 좋아하지만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보컬리스트에는 고음으로 노래하는 여성 뮤지션이 많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프랑수아즈 아르디라든지 지넷 비더만 같은 여성 보컬리스트의 음색이 항상 남성 보컬리스트보다 아름답다고 느꼈고, 그들이 전달하는 분위기나 메시지가 내게는 더 깊게 와닿았다. 그리고 내 음악을 만들 때도 그런 여성 아티스트들의 스타일처럼 들리길 바랐고, 그런 스타일의 보컬 톤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여자 보컬이라 생각하는 것이 내게는 굉장히 큰 칭찬이라고 여겨진다. 내가 그런 반응을 원했던 것이기 때문에 그런 말은 결국 내가 원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2008년에 밴드를 결성했고 2012년에 첫 번째 EP 앨범을 발표한 뒤 2017년이 돼서야 첫 정규 앨범 를 공개했다. 밴드를 결성한 지 9년여 만에 첫 정규 앨범이 나온 셈인데 꽤 오래 걸렸다.

일단 2008년에 처음 시가렛 애프터 섹스라는 밴드명을 만들었을 때는 거의 솔로 프로젝트나 다름없었다. 라이브 공연 때만 세션 아티스트들을 섭외해서 함께 공연하는 수준이었고, 그즈음에 공개한 넘버들은 혼자 집에서 연주하고 녹음해서 완성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넘버를 공개했다가 몇 달 후에 마음에 들지 않거나 지겨워서 삭제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일이 몇 번씩 반복되면서 시가렛 애프터 섹스라는 이름으로 발표했지만 결국 사라진 넘버가 꽤 많아졌다. 그러다 2012년에 진짜 멤버가 있는 밴드 형태를 갖춰서 녹음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밴드를 조직했고 그렇게 EP 앨범을 만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건 삭제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앨범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더 발전시킬지 고민하다가 결국 엘패소에서 뉴욕 브루클린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당시 같이 EP 앨범을 만든 멤버들은 함께 뉴욕으로 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EP 앨범과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다른 멤버들을 찾았고, 그런 과정 끝에 결국 적절하다고 생각한 타이밍에 정규 앨범을 만들게 됐다.


혹시 과거에 삭제한 노래 중에 미련이 남는 곡은 없는지?

사실 2012년 EP 앨범을 발매하기 전에 공개했다가 삭제한 앨범이 하나 있다. 라는 앨범인데 그걸 찾아낸 팬들이 있었다. 나는 삭제했지만 놀랍게도 어디선가 찾아냈더라. 사실 그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 대부분 별로다.(웃음) 일종의 워밍업 같은 곡이랄까. 그런데 그중에서 ‘Please Don’t Cry’라는 곡은 지금도 라이브 공연에서 자주 연주한다. 팬들도 좋아해주는 것 같고 내게도 아직까지 특별하게 느껴지는 곡이다. 그리고 라이브에서 연주할 때는 녹음된 버전보다 부드럽게 연주하는 편인데, 그래서 종종 다시 녹음하는 건 어떨지 고민하게 된다.


올해 새롭게 공개한 싱글 ‘Crush’와 ‘Sesame Syrup’은 모두 2015년에 브루클린에서 녹음했던 미공개 곡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혹시 아직 공개하지 않은 미공개 곡이 더 있나?

정규 앨범 발매를 앞두고 앨범에 정확히 10곡만 수록되길 원했기 때문에 수록곡을 까다롭게 선택해야 했다. ‘Crush’와 ‘Sesame Syrup’은 결국 수록되지 못한 곡이다. 사실 정규 앨범에 포함된 곡 중에서 ‘Sweet’나 ‘Truly’가 이 두 곡과 함께 고민했던 곡인데 알다시피 결국 그 두 곡이 선택됐다. 공식적으로 말할 수 있는 건 정규 앨범을 녹음할 때 함께 녹음했지만 공개하지 못한 곡이 두 곡 정도 더 있다는 점이다. 다만 그걸 공개할지 말지는 잘 모르겠다. 항상 신곡을 낼 때마다 충분히 만족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이 정도면 공개할 수 있다 생각하고 공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공개한 뒤 삭제하진 않았으면 좋겠는데.(웃음)

참고하겠다.(웃음)

지금 입고 있는 검은색 의상처럼 만 레이의 사진을 쓴 EP 앨범과 정규 앨범을 비롯해 모든 싱글까지 하나같이 검은 배경과 흑백 이미지로 이뤄진 커버 아트를 선보였다. 시가렛 애프터 섹스를 대변하는 색이 검정 혹은 흑백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일단 시가렛 애프터 섹스라는 밴드가 일관성 있는, 눈에 띄는 아이덴티티를 갖길 원했다. 물론 다양한 커버 아트를 시도하는 밴드도 있지만 우리는 그보다는 일관성 있는 아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원했다. 그래서 스미스와 벨 앤 세바스찬의 커버 아트를 참조했다. 그들에겐 다른 밴드와는 다른 차별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각기 다른 앨범의 커버 아트이지만 하나같이 동일한 세계관을 그린 작업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시가렛 애프터 섹스도 그런 세계관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EP 앨범이 완성됐고, 그때 만 레이의 ‘Necklace (or Anatomy)’라는 사진을 발견했다. 그걸 보는 순간 이 이미지야말로 우리 음악과 완벽한 합을 이루는 것이라 생각해서 사용하게 됐고 그 뒤로는 그 사진과 비슷한 분위기의 아트워크를 찾는 과정이 이어졌다. ‘Necklace (or Anatomy)’라는 작품의 앤티크하면서도 로맨틱한 느낌, 꿈속에 있는 듯한 초현실적인 분위기, 그런 다양한 요소가 내가 하고자 하는 음악에서도 중요하다고 여겼기때문에 그런 사진을 거듭 찾았다. 결국 그 이후에 발매한 싱글 같은 경우에는 만 레이의 작품과 같은 세계관이라고 여겨지는 작품을 계속 선택하는 과정이었다.


지난 관계나 오래된 감정에 대한 가사는 그 순간에 대한 그리움과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허무를 동시에 담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노래에 담긴 노스탤지어는 좋은 시절을 돌아보는 기쁨과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슬픔이 공존하는 듯한 아이러니를 전하는 것 같다.

맞다. 과거의 좋은 기억을 노래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때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지금 돌아보면 슬픈 느낌이 들고, 그런 감정을 곡에 담게 된다. 이런 곡을 연주하는 순간은 그 좋았던 기억을 다시 경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내게는 즐거운 과정이라 여겨진다. 결국 그런 즐거웠던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계속 기억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가사는 당신의 자전적인 경험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시가렛 애프터 섹스라는 밴드명 역시 일상적으로 떠오른 것을 적용한 것이라 들었다. 혹시 자신의 노래로 인해 오래전에 끝났다고 생각한 감정이 복원되거나 과거형이라 생각한 인연이 현재형으로 돌아온 경험은 없었나?

나는 사랑에 한번 빠졌다가 끝나면 다시 돌아가지 않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끝난 관계가 다시 이어진 적은 없다. 내가 만드는 곡도 최근의 일이 아니라 옛날 일을 노래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일은 없다. 예를 들어 ‘Sunsetz’ 같은 곡은 2015년에 공개했지만 그 곡의 가사에 담겨 있는 사건은 6년 전 일이다. 결국 누군가와의 관계가 끝나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집중할 뿐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두 번째 정규 앨범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는데, 어느 정도 진척됐나?

말 그대로 계획 중일 뿐이다.(웃음) 완성되려면 한참 멀었다. 작년에 스페인에서 녹음을 많이 하긴 했지만 여전히 작업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게다가 지금 굉장히 오랫동안 투어를 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쉽지 않다. 밴드와 함께 즉흥적으로 멜로디를 만들어놓은 곡이 많긴 하지만 가사가 완성되지 않은 곡이 대부분이고, 현장에서 쓴 가사를 다시 보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곡에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서 다시 작업해야 한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게다가 멜로디를 먼저 완성하고 그에 맞는 가사를 쓰는 게 내게는 완전히 새로운 작업 방식이라 도전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만큼 그런 작업을 해볼 생각에 즐겁기도 한데, 다만 언제 완성될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담배나 섹스가 없어도 삶이 끝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담배와 섹스가 없는 세상에서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음악은 계속될 수 있을까?

담배나 섹스가 사랑의 열정적인 면을 표현하는 키워드이긴 하지만 우리 음악은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두 가지가 없어진다 해도 의미가 없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사랑이 없어진다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니까, 어쩌면 그럴지도. 하지만 이 세상에서 사랑이 없어질 일은 결코 없지 않을까?


('Esquire Korea' 2018년 9월호에 진행했던 인터뷰 기사를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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