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 분자'생물'학
분자 생물학.
생물학 전공자들이라면 전공과목 기초 중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과목이다. 혹은, 생물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이름 정도는 들어보았을지도 모른다.
이 글은 그런 당신을 위한 글이다.
전공 기초라서 배우긴 배웠는데 내가 도대체 뭘 배운 건지 모르겠는 당신.
혹은, 궁금하긴 한데 너무 어려워서 차마 도전하지 못하고 발을 뺀 당신.
그런 당신을 위한 분자생물학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분자생물학, 그게 대체 뭔데?
생물이란 무엇인가?
'분자생물학'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생물'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생물을 분자 단위에서 다루는 학문, 그것이 분자생물학이니까.
생물이란 무엇인가? 우선 표준국어대사전의 설명을 보자.
생명을 가지고 스스로 생활현상을 유지하여 나가는 물체
좋다, 우리는 이제 생물을 이해했다. 생명을 가진 물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생명은 무엇인가?
여기서부터 조금 복잡한 과학 이야기가 시작된다. 국어적 의미의 생명과, 생물학에서 말하는 생명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그저 '살아있다'라는 의미만 가진 것이 아니다.
아니, '살아있다'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
2. 필요한 에너지와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3. 각자 특징적인 형태를 가지고,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을 것
4. 번식이 가능할 것
5.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 것
벌써 읽기 싫어지는 당신. 조금만 더 참고 읽어보자.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 '유전정보'(genetic information)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벌써 머리가 아프지 않은가. 유전정보란 또 무엇인가? 이래서 과학이 싫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뒤의 것을 당연히 안다는 듯이 설명하는 저 태도란.
다행히 우리는 유전정보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유전정보란 생물의 설계도를 말한다. 이 설계도는 DNA, RNA라는 물질에 담겨 있다. (DNA와 RNA가 무엇인지는 잠시 미뤄두도록 하자. 뒤에 질리도록 들을 단어들이니 지금은 인사만 하고 넘어가도록.)
대부분의 생물들은 안정적이고 용량이 큰 DNA라는 그릇에 유전정보를 저장한다. 하지만 간혹 가다가 RNA라는 아주 불안정한 그릇에 자신의 정보를 저장하는 희한한 녀석들도 있다. 바이러스라고 불리는 이 녀석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DNA라는 물질은 유전정보라는 아주 중요한 설계도를 저장하는 담당으로 선택되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복제하고, 다음 세대로 넘겨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능력으로 유전정보가 계속해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것이다.
두 번째, 필요한 물질과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상상해 보자. 설계도만 있는 기계가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그 기계를 움직일 '동력원', 즉 에너지가 필요하다. 기계를 구성하는 '물질' 역시 필요할 것이다. 생물은 이 에너지와 물질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다. 외부에서 얻은 것들을 이용해서, 그것들을 쪼개거나 합쳐 새로운 물질을 만들면서 에너지를 생산해 낸다. 이처럼 생물체 내에서 에너지와 물질을 만드는 반응을 '대사과정'(metabolism)이라고 총칭한다.
세 번째, 각 생물은 고유한 형태를 가지고 자신과 타인을 구분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생겼다. 그리고 우리와 세균도 다르게 생겼다. 각자 필요한 대로 형태를 가지고, 그 안에 필요한 물질을 담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우리는 '나'(self)와 '타인'(non-self)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이것은 면역계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정보이다. '나'를 잘못 공격해서는 안되지만, 동시에 '나'가 아닌 것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능력 역시 생명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그리고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 생명이라면 당연히 후손을 남길 수 있어야 한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에 불과하다고. 유전정보는 자신을 세상에 남기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그 결과, 우리는 자손을 낳게 되고, 그 자손에게 유전정보를 물려주게 된다.
마지막, 환경에 '적응'(adaptation)할 수 있을 것. 이것은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생물은 살아남지 못한다. 즉 자신의 유전정보를 후손에게 전달해주지 못한다. 이는 유전정보에게 있어 커다란 문제로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글을 여기까지 읽은 당신. 축하한다, 우리는 이제 생물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분자'생물'학을 배울 준비가 된 것이다!
물론 아직 알아야 할 내용이 아주아주 많고, 당신을 괴롭히기 위한 것 같은 온갖 용어들이 쏟아지듯 나오겠지만... 걱정하지 말도록 하자. 그런 당신을 위한 글이니까.
우선 오늘은 이 페이지를 덮고, 물이라도 한잔 마시며 내 안의 '생명'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