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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봉 May 21. 2022

[SF 감상(?)]지구 끝의 온실

주의 - 스포일러: 소설을 감상하시고 싶은 분들은 이 글을 읽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SF를 자주 읽지 않지만,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을 아주 재미나게, 몰입해서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여운이 남아서 몇 시간이고 멍하니 그 세계 속에 있었다.

다른 독자들의 감상도 찾아보았다. 이런저런 재미를 이야기하는 사람, 아쉬운 점, 이야기 전개상의 흠을 지적하는 글들이 있었는데, SF에서 중요한 과학적 설정에 대해 설명하는 글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런 점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과학적 설정은 다음과 같다.   

2055년에 자가증식 나노봇(더스트라고 부른다)이 연구실을 탈출하여 대재앙이 시작되었다. 더스트는 무차별적으로 증식하고, 사람의 폐에 들어와서 사람을 죽이고, 동물과 식물, 기계든 뭐든 모조리 파괴한다. 

그 와중에 더스트에 잘 견디는 더스트 내성 인간, 더스트 내성 생물도 있다.

사이보그인 식물학자가 더스트 퇴치 식물(모스바나라고 부른다)을 개발한다.

이상은 이 소설의 줄거리가 아니다. 줄거리는 대재앙이 끝나고 완전히 정상화된 뒤에 젊은 식물학자가 이 이야기를 파헤치고, 대재앙 시절에 디스토피아가 전개되는 등 복잡하지만,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우선 더스트는 여러 가지를 연상시킨다. 이름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미세먼지 문제가 떠오르고, 연구소에서 탈출했다는 이야기는 코로나 발생 초기에 이 바이러스가 연구소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라는 루머가 겹치며, 폐에 작용해서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도 코로나 비이러스를 연상시킨다. 대재앙이 시작되는 것이 2055년경이라는 것은 탄소제로의 목표시점이 2050년경이라는 점, 그러니까 기후 온난화의 재앙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이야기의 배후에는 기술이 인간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러다이트적 관점, 프랑켄슈타인의 공포가 깔려 있다. 그리고 그 해결책도 결국은 생태계가 재앙을 더 빨리 극복할 수 있도록 식물학이 돕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 중요한 과학적 장치는 자가증식 나노봇, 사이보그, 식물학 -진화생물학이다. 처음 두 가지는 아무런 설명 없이 던져지고, 세번째인 식물학은 아주 자세하고 박진감 있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내가 이 소설에 몰입하게 된 이유도 식물학의 이야기 전개가 너무 재미있었고, 띄엄띄엄 알고 있는 생물학 지식으로 쫓아가기에 매우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다른 독자들의 감상 포인트는 나와 다를 것이다.


작가가 전혀 설명하지 않은 두 가지 중에서 자가증식 나노봇에 대해서만 알아보겠다. 

이것은 폰 노이만이 1948년에 발표한  "자기 재생산 셀룰러 오토마타 이론"의 나노 버전으로 보인다. 

노이만은 이 논문에서 생명(즉 자기보존과 자가증식을 할 수 있는 단위체)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들을 이론화했다. 그걸 프리먼 다이슨이 정리한 걸 여기에서 다시 정리해 보자.

A 모듈 - 자동 공장  - 리보솜

B 모듈 - 복제자      - RNA와 DNA중합효소

C 모듈 - 통제자 - A와 B를 하나로 통합함(D에서지령을 받아 B에게 주고, B는 A에게 이것들을 생산하게 한다) 

D 모듈 - 지령 - 유전자(DNA, RNA)


생명은 모두 이런 구조를 가져야 한단다(나의 확대 해석인지 정설인지 모르겠다). 


인공 생명을 만드는 시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기존 생명체의 설계를 조금씩 바꾸는 것이고, 둘째는 위의 구조를 갖춘 시스템을 무에서부터 만들어내는 것이란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위의 첫째 방법의 생명과 둘째 방법의 생명의 싸움이다. 내가 알기로는 둘째 방법은 매우 요원한 이야기다. 그러므로 이 소설의 공포 그 자체는 현실성이 없다.


이 소설은 명시적으로 말해진 내용도 재미나지만, 거기에 묻혀 있는 질문도 흥미롭다. 좀 확대해서 해석하면, 트랜스휴머니즘, 포스트휴머니즘, 특이점, 인공지능, 초지능 등등 완전히 뜬구름 잡는 모호한 이야기들이 다 걸려 있다. 물론 요즘은 뜬구름도 인공위성, 레이더 등으로 잡아서 슈퍼컴퓨터로 계산하는 시대다. 미래 논의의 뜬구름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미래를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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