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운둥빠 Jan 01. 2021

영알못 분대장과 우왕좌왕 분대의 성공 스토리

분대원들아! 미안하다! 그래도 우리는 해냈다!

카투사는 이상하게 SKY 대학, 하버드, 예일대 등 슈퍼 엘리트 출신의 훈련병들이 많다. 그들의 부모들도 대부분 상류층이다. 나는 SKY 대학 출신도 아니고 부모님도 고졸로 말단 공무원부터 시작한 평범한 집안의 자식이었다. 카투사 훈련병들 중에 내가 제일 하층민(?)이었던 것 같다.     


나는 훈련병 중에 영어도 제일 못했다. TOEIC도 간신히 700점을 넘겨 카투사 지원 자격만 겨우 갖춰 지원했었다. 다행히 카투사 선발은 추첨이어서 운이 좋게 된 것이다. TOEIC 점수가 높은 순서대로 뽑히는 것이었으면 나는 당연히 떨어졌을 것이다.      


카투사 교육대의 모든 교육은 영어로 진행된다. TOEIC도 700점을 간신히 넘기 내가 당연히 알아들을 리가 없다.     

랩, 랩, 랩, 라잇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나중에 알았다.     


“왼발, 왼발, 왼발, 오른발!”이라고 한다. “Left, Left, Left, Right!” 이거였다. 이런 구호도 못 알아들으니 심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분대장이 된 것이다. 교관님들로부터 지시를 받고 분대원들에게 전달을 해야 하는데 당연히 엉뚱하게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시를 받는 분대장이 못 알아들으니 우리 분대는 엉뚱한 곳에 가서 서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분대원들과 교관님들이 모두 나 때문에 엄청 고생했다.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미안하다.     


카누사 교육은 PT, 사격 등 몸으로 하는 교육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군사 기본 지식 등의 이론 교육도 있다. 시험도 봐야 한다. 분대장을 맡았던 나는 공부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영어도 못 알아듣는데 공부할 시간마저 없으니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카투사 교육대 문을 들어서면서 했던 다짐 덕분이었던 것 같다.      


3주 동안 미친 듯이 해보자!   


하루 일과가 끝나고 소등을 하면 책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불을 켤 수 있는 곳이 화장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2시간 정도 화장실에서 공부를 했다. 기상나팔이 울리기 1시간 30분 정도 전에 일어나 또 화장실에서 공부를 하고 씻고 모든 준비를 마쳤다. 기상나팔이 울리면 나는 분대원들의 준비를 도와야 했다. 그렇게 다른 전우들이 자는 시간에 나는 화장실에서 2~3시간씩 부족한 공부를 했다.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나 때문에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분대원들은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내가 부족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잘 따라줬다. 영알못 분대장 때문에 고생하면서도 오히려 잘 도와줬다. 그렇게 3주가 흘러 카투사 교육대 수료식이 다가왔다.      


수료식 전날 밤이었다. 미국인 교관님이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나를 분대장으로 뽑은 것을 후회했었다고 말씀하셨다. 나 같았어도 후회했을 것이다. 운동 좀 잘한다고 뽑아놨더니 지시사항을 제대로 못 알아들어서 분대 전체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속으로 얼마나 열불이 나셨을까.     


You were terrible. (너 정말 최악이었어.)  


라고 말씀하셨다. 맞다. 나는 정말 최악의 교육생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분대가 전체 1등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Distinguished Honor Graduate이라고 한다.      


‘Distinguished Honor Graduate?’

카투사 교육대 1등 졸업생이 받는 실버 드래곤 트로피

또 못 알아들었다. 마지막까지 못 알아듣는다. 멀뚱멀뚱하고 있으니 말씀해주셨다. 내가 1등 졸업생이라고 한다. Distinguished Honor Graduate(DHG)이 1등 졸업이라고 한다. 영어를 못 하니 그런 것을 뽑는지도 몰랐다. 아마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설명해줬을 수도 있다. 내가 못 알아들은 것일 수도 있다. 애초에 나는 그런 것을 뽑는 줄도 몰랐다. DHG가 되려고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다.      


교관님은 이번 카투사 교육 기수가 마지막이라고 하셨다. 본인이 카투사 교육대 교관으로 오랜 기간 있으면서 1등 분대는 종종 만들어 봤지만, Distinguished Honor Graduate을 만들어 본 것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 그것도 ‘분대 1등’과 ‘교육생 1등’을
 동시에 만들어 줘서 정말 고맙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 마지막 문장은 똑똑히 알아들었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고 몸에 전율이 돋는다. ‘실패한 인생’이었던 내가. 어깨도 못 움직이는 내가. 하버드 수석, 예일대, 수많은 SKY 출신의 엘리트들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덕체’를 모두 갖춰야만 하는 카투사 교육대에서 Distinguished Honor Graduate, 1등 졸업생이 되었다. 이 경험이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이때 깨달았다.     


아! 나라는 사람도 노력하면 되는구나!
사람은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구나!


사람은 그냥 노력이 아니라 사력(死力)을 다하면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다. 이걸 깨닫고 나니 인생이 달라졌다.     


카투사 교육대 수료식에 오신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셨다. 실패한 인생이었던 큰 아들이 당당하게 앞에 나가 선서를 하고 상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그 이후로는 나에게 실패한 인생이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이제 아버지도 나를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신다.          



작가의 이전글 실패한 인생, 논산 훈련소에서의 좌절과 눈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