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론>과 <21세기 자본>으로부터 알게된 것
현재의 부동산과 가상화폐의 열풍을 보면서 인간의 탐욕은 어디까지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저금리와 경제성장으로 인한 화폐 유동량이 너무 많기 때문인데 이게 파도처럼 여기저기로 휩쓸고 다니고 있는 현상이다. (자본의 순환 이론도 있지만)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나오는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은 교육과정에서 너무나 왜곡되게 설명되어 (그 또한 신자유주의자들의 음모라 생각한다) '수요와 공급곡선'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듯하지만, 사실 그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에 대한 것이다. 정부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하고 경제를 시장에 맡겨놓아도 (자유주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기초가 되었다. 그의 <국부론>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쪽 모두의 바이블이 된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과연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사실 그러한 믿음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쪽 모두에서 붕괴된 지 오래다. 양쪽 모두 누덕누덕 기워서 모양새만 갖추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 빈부격차는 1차 세계대전 직전에 극에 달했고, 이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촉발했다. 그나마 전쟁으로 인한 기득권층의 몰락과 전후대책에 의해 어느 정도 소득균등화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다시 양극화가 심해지는 건 예견된 일이었다. 중산층의 몰락? 누구나 잘 살 수 있다는 희망? 그런 건 애초부터 신기루와 같았다.
역사상 그런 것이 존재한 경우는 전후 몇십 년 간이 유일했다. 그 기간 동안 전 세계의 경제성장률은 높았고, 누구나 그런 희망을 품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고. 이젠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그 동력이 사그라들면서 다시 그런 희망을 품기 어렵게 됐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더 쉽게 그 꿈에 다가서려는 욕망이 남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자본소득이 경제성장률을 훨씬 상회하기 때문에 대다수는 거대 자본을 가진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
이는 겜블러의 법칙(?)과 유사하다. 확률적으로 도박을 하는 사람이 절대로 카지노 딜러를 이길 수 없는 건 가지고 있는 자본의 차이 때문이다. 몇 번의 게임에서는 도박하는 사람이 이길 수는 있지만 자본의 차이로 인해 결국 확률적으로는 카지노 측의 승리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양극화가 심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말한 대로라면 우리는 또다시 큰 전쟁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가장 극단적인 수단이지만 가능성도 없진 않다. 전쟁의 아이러니. 그러나 누구도 전쟁을 원하진 않는다. 특히나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가진 것이 많아지면 잃을 것도 많다. 하지만 그만큼 쉽게 얘기하는 것이 전쟁이기도 하다.
지금의 상황이 100여 년 전과는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노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있으니까.
인간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면 '자유'와 '권리'를 내세우고, 손해가 되면 '평등'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정부에 대해서도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부분을 해주길 바라면서 손해가 되는 부분은 관여하지 않기를 바란다. 인간의 본성을 믿을 수 없기에 국가가 나서야 하는 부분들이 생기지만 국가의 힘은 인간 본성의 결집을 이길 수 없다. 그 자체가 자기모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나의 관심 주제는 '인간의 본성을 믿을 수 있는가' 였는데 올해가 다 가도록 고민해봐도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믿음의 근거, 가능성은 있지만 확고하진 못하다. Evidence level로 보면 최하위, case report 수준.
더불어 울리히 벡이 말한 대로 '체계적 모순을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결국 시스템을 바꿀 것인가 아니면 시스템에 순응할 것인가 혹은 그로부터 탈출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그 와중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고민도 필요하다.
유감스럽게도 후자가 덜 힘들기에 대부분은 후자를 택하고 있고, 나도 그러하다. 변명의 여지는 있겠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개체 존속'과 '종족번식'의 왜곡된 확장형이며, 자신을 넘어서야 하는 문제이기에 쉽지 않고 비난할 수도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