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페이퍼 4, 약칭 리페4 또는 리페사라고 하는 이 기기는 2022년 4월에 출시된 리디 전용 이북리더다. 리디에서는 꾸준하게 자사 전용기로만 출시하고 있는데 이는 전자책을 비롯한 디지털콘텐츠로만 수익을 내는 리디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일 것이다. 기기를 판매한다고 해서 수익은 크지 않은데 범용기로 판매하게 되면 자사 콘텐츠 구매가 줄어들 테니 득 보다 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리페4는 블랙과 화이트 두 가지 버전으로 출시되었는데 화이트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았다. 하지만 리페4의 판매량 자체는 많지 않은 듯했다.
그 이유는 잘못된 홍보 및 제품 자체의 특수성, 독자 개발 등 여러 가지로 제품 개발 및 마케팅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라는 요인까지 겹쳤다.
우선 가격 자체가 다른 기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출시가격은 329,000원인데 타 서점사의 기기들이 10만 원대 후반~20만 원대 초에 형성되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선뜻 구입하기에는 망설여지는 가격이다. 물론 이북리더들의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해서 지금은 20만 원대 후반~30만 원대의 제품들이 많지만, 작년에는 크레마 s라는, 10만 원 대 후반의 가격과 성능이 모두 괜찮은 범용 이북리더가 있었기 때문에 경쟁이 어려웠다.
출시 이벤트를 하면서 유명인들과 인플루언서들에게 스페셜패키지를 선물했는데 이게 득 보다 실이 큰 셈이 되었다. 이북리더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인플루언서라고 홍보를 부탁하는 건 이미 실패가 예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북리더를 많이 사용해 본 사람들을 중심으로 체험단을 모집하여 적극적으로 홍보하도록 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좀 더 고객을 생각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게다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이 들어갔다. 7인치는 지금은 점차 보편화되고 있는 화면크기이긴 하지만 6인치와 7.8인치 사이에서 애매할 수도 있는 크기라서 화면크기와 휴대성 모두를 잡으려다가 둘 다 놓칠 수도 있는 위험도 있다. 폼팩터도 다른 기기와 다르게 비대칭형 물리키 장착 기기라서 이러한 형태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구매를 망설이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점들을 제품 설계 시 고려했겠지만, 리디는 그것이 '고객의 니즈'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거기에서다 IPX8 수준의 생활방수도. (반신욕 수요층을 노린 것 같지만 실제로 반신욕 하면서 책을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혹은 수영장에서 쉬면서 책을 읽는 것을 노렸을 수도)
그렇게 출시 후 1년이 지난 2023년 3월 21일, 리디에서는 갑자기 '대국민 독서지원 이벤트'라는 행사를 개최했다. 소위 '3.21 대란'이라고 불린 이 이벤트는 450권의 전자책을 구매하면 리페4를 받을 수 있거나 (450권 자체도 엄청난 할인이 들어간 상태였고, 5만 원 페이백까지 있었다) 혹은 세트 구매를 하면 리페 4를 50%도 안 되는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원래 3월 21일부터 3월 31일까지 진행되려던 이 행사는 구매자들이 몰리면서 재고 파악을 이유로 3일 만에 중단되었고, 결국 이벤트는 그대로 종료되었다.
애초 리디측에선 준비해 둔 물량이 충분하므로 주문량의 대응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엔 여러 가지 준비 미숙을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게다가 원하는 색상 및 배송받을 주소도 구글폼으로 받음으로써 혼선은 가중되었다. (구글폼 주소는 구매 다음날 오후 3시에 개인별로 발송되었다)
나도 3월 21일에 일찌감치 주문했지만 제품이 제때 발송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원래 1차 발송은 3월 31일부터였지만 이벤트가 조기 종료되었기에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우려했던 대로 배송은 구매시점에 따라 2주 정도의 기간 정도로 늘어났고, 그나마 나는 3월 31일 발송대상에 포함되어 4월 1일에 수령했다. 그리고 발송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수령한 사용자들 가운데 불량 혹은 불만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가장 흔한 증상은 먹통(프리징)이 되거나 반응이 느려지는 것. 혹은 터치해도 반응이 없는 것이다. 또한 화면 겹침 문제도 발생하기도 한다. 초기 세팅 시 자동으로 펌웨어 업데이트를 진행하지만, 업데이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은 듯하다. 그리고 PC와 연결 시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내 경우에는 그런 문제는 별로 없었지만 간혹 터치해도 반응이 없는 경우가 발생하기는 했다. 아예 먹통이 된 건 아닌데 특정 상황에서 그렇게 되는 듯하다.
이러한 것은 기기 및 펌웨어의 안정성, 최적화 문제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 이 기기는 하젠이라는 업체를 통해 ODM으로 제작하였는데, 하젠은 국내에 본사를 두었지만 중국에서 생산하는 OEM/ODM 전문기업이다. 그래서 리디에서 스펙을 하젠측에 제시하고, 하젠측에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까지 개발한 형태가 되었을 것이라 본다.
문제는 하젠이 그동안 이북리더를 제작한 적이 없는 기업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이북리더에 엑시노스를 AP로 사용한 특이한 기기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소프트웨어의 안정성이나 최적화를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리디 전용기는 그동안 보위에 또는 네트로닉스 기기를 기반으로 최적화하여 출시하였는데 왜 갑자기 그런 모험을 결정하였을까? 최적화가 잘 되었다는 리디 전용기의 장점도 리페4에서는 사라져 버리게 되니 사용자들의 실망이 커질 수밖에 없는 듯하다.
물론 별문제 없이 잘 사용하고 있는 사용자가 대다수겠지만, 이번 경우처럼 많은 물량이 갑자기 풀리게 되면 그에 비례해서 불만도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런 문제들은 출시 초기부터 있었던 것들인데 그동안 사용자가 적어서 그다지 영향력이 없었던 것일 뿐이다. 마지막 물량의 배송까지 끝나게 되더라도 한동안은 그러한 이슈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일단 그러한 문제들은 뒤로 하고, 기기에 대한 소감을 적어본다.
나도 처음 사용해 보는 7인치 기기인데 화면 크기는 생각보다 커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6인치에 가까운 느낌. 그래서 리디 기기끼리 비교해 보았다.
6인치보다는 커 보이긴 하지만 7.8인치와는 차이가 많이 나보인다. 그런데 7인치는 확실히 묘한 부분이 있다. 6인치와 7.8인치 사이를 기어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묘한 부분' 때문이 아닐까?
화질은 전반적으로 무난하다. 위 사진이 조금 진하게 나온 면도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콘트라스트가 강한 편이다. 이는 장단점이 있는데 일반적인 독서에서는 장점이 더 많을 수 있다.
하지만 한 손으로 들고 보기는 좀 애매하다. 물리키가 한쪽에 몰려 있는데 기본설정으로 다음페이지가 아래 버튼에 할당되어 있다. 이는 설정에서 바꿀 수 있지만 어느 버튼으로 설정해도 무게중심이 애매하다. 특히나 아래 버튼을 다음페이지로 설정하게 되면 무게중심이 좌상단으로 쏠려 손목에 상당한 무리가 간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양손으로 잡고 보거나 혹은 거치하고 리모컨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리모컨의 경우엔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선 오닉스 정품 리모컨과 로지텍 R500s와는 괜찮았고, 사테치 R2와는 연결성에 문제가 있어서 충돌하거나 연결이 끊기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용자들은 R500s를 일반적으로 추천하는 편이다.
화이트 기기의 경우엔 화면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져 독서에 방해가 된다는 얘기도 있지만 나는 별로 그런 것을 느끼진 못했다. 게다가 플랫과 논플랫의 차이에 대해서도 왈가왈부하지만, 그것도 개인의 취향 차이라고 여겨진다. 그런 점도 별로 신경 쓰진 않는다.
그동안 리디 기기들을 사용하면서 만족했었는데 리페4에 대해선 기대가 컸었는지 실망스러운 점들이 있었다. 더군다나 리디측의 대응이나 일처리를 보면서 그러한 실망감들이 증폭된 듯하다.
사실 지난 수년간 리디의 행보를 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사명을 '리디북스'에서 '리디'로 변경하면서 도서판매가 아닌 웹소설, 웹툰 등 특정장르 쪽에 주력하였고, 라프텔을 인수했다가 적자만 내다가 결국 매각한 것도 그렇다.
도서정가제가 전자책까지 까다롭게 적용되면서 수익이 더 악화되었을 수도 있는데, 이는 전자책만 판매하는 리디로서는 종이책도 함께 판매하는 대형 온라인서점사와 경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방향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려는 시도는 필요했겠지만, 상대적으로 도서에 대한 홀대로 이어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더군다나 '리디셀렉트'는 거진 구색만 갖춘 수준이라 사실상 '읽을 책이 없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꾸준하게 전용기를 출시하는 것은 고무적이다. 대략 2년마다 신제품을 출시하긴 했는데 매번 출시할 때마다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하고 마치 노이즈 마케팅처럼 논란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게다가 이번처럼 독자적인 기기 개발은 리디의 의지를 보여준 것 같기도 하지만 리디에게 독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과연 다음 기기를 출시할 수 있을지, 다음에도 독자 개발로 갈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리페4에 문제점들에 대한 확실한 해결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출시 초기 구매한 고객이든 이번에 이벤트로 구매한 고객이든 간데 이러한 불만이 쌓이면 리디로서는 상당한 치명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리디가 구축해 온 이미지가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무너질 수도 있다. 충성고객들마저 외면하게 된다면 리디의 앞날은 어두워질 수도 있다.
나도 한 때 리디를 주력으로 사용하던 고객이자 이번에 다시 리디로 돌아오게 되긴 했지만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된다. 과연 리디의 본심은 무엇일까, 이 회사가 과연 전자책 사업을 계속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가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