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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Jan 08. 2024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5

제5부. 두 자아


5부 두 자아

35. 두 자아

36. 이야기로서의 삶

37. 체감 행복

38. 삶을 돌아볼 때

결론


부록 A: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

부록 B: 선택, 가치, 틀짜기




35장은 '두 자아'인데 우리 내면에 있는 두 가지의 자아에 대한 이야기인 듯합니다. 먼저 '효용'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제러미 벤담이 말한 효용을 '경험효용'이라고 했고, 현재의 경제학자나 결정 이론가들이 이야기하는 '욕구 충족력'을 '결정효용'이라고 했네요. 


이 두 가지는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결정효용조차도 상황에 따른 일관성이 없어서 그 결정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어려워지는군요.


그래서 저자는 경험효용을 보다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합니다. 그러면서 쾌락이나 고통의 정도를 측정하고자 하죠. 이는 19세기에 프랜시스 에지워스가 제안했던 '쾌락측정기'와 유사하지만 저자는 '쾌락 측정기 총합'으로 나타냈습니다. 이를 통해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알아냈죠.


 • 정점과 종점 원칙: 환자들이 회고하는 전체 평가를 가장 정확히 예측하는 수치는 최악의 순간에 보고한 고통과 검사가 끝날 때에 보고한 고통의 평균이었다.
 • 지속 시간 무시: 검사가 지속된 시간은 전체 고통 평가에 어떤 식으로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는 고통의 최고점과 평균치에 따른 것이지만 지속시간은 영향이 없다는 것이었네요. 이는 얼핏 생각하면 납득이 안 되기도 합니다. 지속시간이 과연 영향이 없는 것일까요?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지속 시간 가중 판단'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서 이 부분에서 좀 혼동이 있었는데요, 결론적으로는 지속시간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고통의 강도와 지속시간 둘 다 줄이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만약 둘 다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의사의 경우라면 환자에 대해 그런 결정을 해야겠죠.


그건 각 개인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러한 딜레마에 대해 두 자아는 이해 충돌을 합니다.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의 충돌이죠. 그런데 경험과 기억을 혼동하는 것이 인지 착각이며, 경험을 기억으로 바꿔치기하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데 경험과 기억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네요.


그런데 인간의 진화하는 과정에서 기억하는 자아를 지배하게 되었는데요, 이는 그것이 생존에 더 유리했기 때문이겠죠.


이 세 가지 상황은 시스템 1의 한 가지 특징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시스템 1은 합이 아니라 평균, 일반적인 것, 원형의 집합을 대변한다. 찬물에 손 넣기 실험은 여러 순간의 집합인데, 기억하는 자아는 그 실험에서 원형이 될 만한 순간을 저장한다. 그러다 보니 충돌이 발생한다. 경험하는 자아의 보고로 상황을 평가하는 객관적 관찰자에게 중요한 것은 실험하는 동안의 고통을 합친 ‘곡선 아래 넓이’이고, 그것이 합계의 본질이다. 반면에 기억하는 자아가 가지고 있는 기억은 정점과 종점에 큰 영향을 받는 대표적 순간이다.


여전히 말이 좀 어렵습니다. 이건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36장의 제목은 '이야기로서의 삶'입니다. 앞의 내용을 이어서 설명하고 있어요.


기억하는 자아가 작동하는 방식을 다른 예를 들어서 부연하고 있는데요, 그러한 작동을 통해 기억하는 자아는 이야기를 만들고 미래의 참고 자료로 간직하게 됩니다. 


만약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좋은 기억을 모두 잊어버리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의 경험에 대해 기억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 (그것이 인위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경험은 가치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 그것이 있었다는 것조차 사라지게 되겠죠.


36장의 내용은 짧아서 금방 넘어갔네요.




37장은 '체감 행복'입니다. '행복'의 정의와 그 측정 방법은 많이 나와있지만 사실 모두가 수긍할만한 것은 없는 듯해요. 저자도 그에 대한 고찰을 해보려 한 것 같은데요, 그것은 '삶에 대한 만족'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다고 했네요. 경험하는 자아의 삶의 질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어요. 그래서 삶의 연속적인 순간에 경험한 행복의 추이를 평가하고자 했네요.


'일상 재구성법'을 이용해서 경험 표집과 비슷한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사람들이 시간은 보내는 방식에 대한 추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했는데 저자들의 목적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즉, 일상의 감정을 수치로 요약할 때 오래 지속된 사건은 짧게 끝난 사건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었다고 하네요. 또한 심적 고통에 개인 편차가 크다는 것도 밝혀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U지수'로 나타냈어요.


어떤 순간이나 어떤 사건을 경험하는 것은 어느 하나의 행복 수치로 쉽게 표시되지 않는다. 긍정적 감정에는 사랑, 환희, 몰두, 희망, 즐거움 등 여러 형태가 있다. 부정적 감정도 분노, 수치심, 우울, 외로움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은 동시에 존재하지만, 삶의 순간들은 거의 다 궁극적으로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리는 개인이 불쾌한 상황에 소비하는 시간의 비율을 ‘unpleasant(불쾌한)’의 u를 따서 ‘U지수’라 불렀다. 예를 들어 하루 중 깨어 있는 16시간 가운데 네 시간을 불쾌한 상황에 소비하는 사람은 U지수가 25퍼센트다. U지수의 장점은 주관적 점수가 아니라 시간이라는 객관적 수치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U지수가 20퍼센트에서 18퍼센트로 떨어졌다면, 불편한 감정이나 고통에 소비하는 총시간이 10분의 1 줄었다는 뜻이다.


또한 U지수를 활동별로 계산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출퇴근 때나 업무 중에, 또는 부모, 배우자, 자녀와의 소통 중에 부정적 감정이 드는 시간의 비율을 측정할 수 있다네요.


핵심은 무엇에 주목하느냐다. 감정 상태는 주로 우리가 주목하는 것에 달렸고, 우리는 보통 현재 활동과 당장의 주변 환경에 주목한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주관적 체험의 질이 그 순간의 사건보다 되풀이되는 생각에 지배될 때도 있다. 


그리고 시간을 잘 활용하면 더 행복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쾌한 경험을 하는 시간을 줄이고 행복한 경험을 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죠.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러한 체감 행복 측정은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조사를 할 때도 적용될 수 있는데요, 갤럽의 조사에서는 행복의 두 가지 측면, 즉 사람들이 살면서 체감하는 행복, 자기 삶을 평가할 때 내리는 판단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캔트릴 자기규정 성취도'라는 방법으로 조사한다는군요.


하지만 삶의 여러 측면 중에서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지만 체감 행복과는 무관한 것들도 있어요. 삶의 질이 높아지면 더 행복해질 것 같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는 거죠. 그래프로 보면 편평한 구간이 생기는 것과 비슷하겠죠?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 될 때의 얘기이지 그 수준 이하에서는 당연히 비례해서 증가하게 될 거예요. (경제학에서도 '한계 효용 체감'이라든가 하는 용어들이 기억나네요)


어쨌든 이번 장의 앞부분에서 나왔던 대로, 삶에 대한 만족도와 체감 행복 수치는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38장은 '삶을 돌아볼 때'라는 제목이 붙어 있어요.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그런가, 저자도 좀 감성적이 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저도 책의 내용이 거의 끝나가는 것이 아쉬워서 그런지 (내심 기쁘기도 한 양가감정이지만요 ㅋ) 이 제목을 보니까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런데 결혼에 대한 그래프, 정말 공감합니다. 이건 기혼자분들이라면 (알쓸통잡에 참여하시는 분들께서는 거의 대부분 다 기혼자분들이신 것 같지만요) 공감하지 않으셨을까요? ㅎㅎ


비단 결혼에 대한 것만 그런 건 아닌 듯해요. 뭔가 기대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일어나기 직전 및 직후가 가장 좋고, 그 이전, 이후는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한 것도 '감정 예측' 오류입니다. 이것도 시스템 1이 작동한 결과인데요, 기분 어림짐작 때문입니다. 시스템 1은 이 책에서 계속 용의선상에 오르거나 주범으로 지목되는군요. ㅋ 


이러한 기분 어림짐작은 응답 당시의 기분이 답변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또한 생각하기 복잡한 질문에 대해서도 더 쉬운 질문으로 바꿔 대답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이러한 특징은 앞에서도 이미 나왔었죠.


그런데 개인이 처한 환경과 삶에 대한 만족도 사이의 상관관계가 낮은 이유는 유전적 기질 때문이기도 하다네요? 유전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저는 일단 의심을 좀 하는 편이긴 한데 행복하게 사는 기질도 유전이 되고 증명된 바도 있다고 하니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겠습니다. 이쪽 연구가 대체로 그런 식이니까요.


그러면서 어릴 때 목표가 큰 사람은 성공할 가능성도 높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이것도 꽤 비판이 많은 주제이긴 하죠? 예전에 언젠가 관련된 얘기들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나 저자는 그러한 것에 인상을 받았는지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나는 이 연구 결과에 일부 영향을 받아, 이제까지 생각해 온 행복의 정의를 바꾸기로 했다. 사람들의 목표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그 일을 어떻게 느낄지에 워낙 중요해서, 오직 체감 행복에만 주목하는 것은 정당화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바라는 바를 무시하는 행복의 개념은 옳지 않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면서 느끼는 감정은 무시한 채 자기 삶을 돌아볼 때 느끼는 감정에만 주목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정당화하기 어렵다. 두 자아의 행복을 모두 고려하는 혼합된 관점의 복잡성을 인정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이슈는 '주목 착각'에 대한 것이에요. 시스템 1은 삶의 작은 부분으로 삶 전체를 쉽게 대체해 버리는데 그로 인해 삶에서 특정 부분에 주목하게 되어 전체 평가에서 그 부분이 커 보이게 됩니다. 이것이 ‘주목 착각’의 본질입니다.


지금 삶에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 생각하는 만큼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일침을 날리셨습니다. ㅋㅋ 읽으시다가 갑자기 뜨끔하셨을 것 같기도 해요. 저만 그랬을까요? ^^;;


그러면서 아무리 좋은 환경, 상황이어도 그것이 변화가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앞에서도 어떤 상태보다는 상태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고 했었는데 그것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는 듯해요. 그것은 상대적이기도 하겠지만, 좋은 상태에서 안 좋은 상태로 혹은 그 반대가 될 때 체감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자신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게 되고,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에 주목 착각이 발생하게 되는 거네요.


그건 좋은 것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안 좋은 것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요?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는데 어쩌면 적응력이 그러한 원천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같은 삶을 두고, 경험하는 자아는 제법 수월하게 참아내는데 기억하는 자아는 심각한 주목 착각에 빠지는 성향을 보인다네요?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는 또 충돌하는군요. 전반적으로 경험하는 자아에 비해 기억하는 자아가 문제를 더 야기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통제가 필요한가 봐요.


이러한 주목 착각은 '희망 오류'도 야기합니다. 이는 '어떤 대상이 나를 행복하게 할 거라는 착각으로 그것을 원하는 현상'인데요, 이 부분에서도 많이 뜨끔했어요. 특히 어떤 물품들을 지르는 것들이 그런 것일 것 같아서요. 물건일 수도 있고, 경험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또한 경제를, 사회를, 일상을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ㅎ


저자의 말을 보며 문득 이북리더와 독서의 관계도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요, 이북리더의 장기적 이익을 과장하는 반면 독서에서는 그런 일이 적겠죠? 정신 집중이 필요한 일에 대해서는 희망 오류가 적어진다고 하니까요.


5부는 사실 앞의 내용들과는 좀 동떨어진 듯한 인상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생각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시간의 역할을 더 강조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자는 앞의 내용에서는 순간적인 것, 미분적인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5부에서는 그것의 연속 혹은 적분으로 나타내려 한 것 같아요. 결국 우리의 삶은 연속적이고 누적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기억하는 자아에 의해 기억을 왜곡해서 시작, 정점, 종점을 중심으로 느끼게 되고, 지속시간은 무시하곤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정신은 이야기에는 능숙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처리하는 데는 서투르다고 하네요.




이제 우리는 이 책의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 책의 초반부에서는 시스템 1과 시스템 2라는 두 자아를 내세웠고, 각각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책의 대부분의 분량을 시스템 1의 편향과 오류를 설명하는데 할애했죠.


기억하는 자아는 시스템 2가 구성한다. 그러나 기억하는 자아가 사건과 삶을 평가하는 방식의 두드러진 특징은 우리 기억의 특성이다. 지속 시간 무시와 정점과 종점 원칙은 시스템 1에서 나오고, 시스템 2의 가치와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지속 시간이 중요하다고 믿지만, 우리 기억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과거에 대한 평가를 지배하는 규칙은 시간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결정에 좋은 지침이 못 된다.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 시간은 궁극적으로 유한한 자원이지만, 기억하는 자아는 그 현실을 무시한다. 


시스템 2가 기억하는 자아를 구성한다는 것은 좀 의외였어요. 하지만 이것도 시스템 1의 영향이긴 하네요. 5부에서의 두 자아의 충돌은 결국 시스템 1과 시스템 2의 충돌이기도 한 셈인 것 같아요. 그리고 지속시간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는 아직 완전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이 책에서 나왔던 '이콘'이 완벽해 보이기는 하지만 인간은 그러한 존재가 아니고, 또 이콘과 같은 존재들로만 구성된 사회도 완전한 사회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합리성에 대한 정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합리성이 논리적 일관성인지 아니면 타당성인지는 별개의 것인데요, 일관성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특히 인간은요. 그런 면에서 인간은 비합리적이지만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른 판단을 하더라도 그에 대한 이유는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타당성이겠죠.


그러한 것은 상당 부분 시스템 1이 작용하고, 시스템 2가 도와줍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시스템 2의 경우엔 좀 더 의식을 해야 하지만) 일어나는 것들이라 그 과정에서 좋은 결과도, 안 좋은 결과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불완전해 보이는 시스템 1이 주도적으로 작용하더라도 그것을 내버려 두도록 진화해 온 것은 그래도 그 작동 방식이 더 유리했기 때문이겠죠. 실제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보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으니까요.


그러니 시스템 1이 문제투성이고 엉망이라는 편견에서도 벗어나야 할 것 같아요. 비록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더 나은 쪽으로 우리를 이끌어 온 것이니까요. 하지만 시스템 1의 오류를 막기 위해서 시스템 2의 강화가 필요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그런 방법을 강구할 수 있겠죠.


그리고 개인보다는 조직이 그러한 오류를 최소화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집단 지성'의 힘이겠죠? 물론 집단이 편향에 빠지면 더 무섭고 개인의 편향을 더 강화시킬 수도 있지만 합리적인 인간들의 집단이라면 그러한 편향을 상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건설적 비판과 판단을 위해 명확하고 풍부한 어휘의 사용이 필요합니다. 그런 것들은 '기준점 효과'나 '틀짜기', '일관성' 등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그리고 이러한 말로 이 책을 마무리합니다.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교양 있고 공정한 사람으로 신뢰할 때, 그리고 자신의 결정은 결과뿐 아니라 과정으로도 평가받으리라고 예상할 때, 더 나은 선택을 내릴 것이다.


저도 이 책을 통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고 심리학의 한 분야와 행동경제학에 대해서도 좀 더 이해를 하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연관된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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