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성의 아이돌 입덕기
유튜브 프리미엄인 내 계정을 아내와 아이도 같이 쓰는데 최근에는 알고리듬의 추천 영상으로 아이돌, 특히 오마이걸의 영상이 많이 뜨고 있다는 것을 아내가 눈치챘을까?
만약 아내가 이상하게 여긴다면 커밍아웃해야겠다.
나 사실 오마이걸에 입덕했어...
그렇다고 미라클에 가입하거나 대놓고 좋아하는 티를 내지는 못할 것이다. 나도 그러기에는 멋쩍은 중년 남자니까.
이제 곧 50이 될 나이에 걸그룹 입덕이라니, 웃기는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꼭 나이 든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곤 하지...)
사실 내가 이전부터 오마이걸의 노래들을 좋아했던 건 아내나 아이도 알고 있다. 가끔 오마이걸 신곡 나왔다는 얘기를 해도 아내와 아이의 반응이 시큰둥해서 서운한 감이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들의 노래를 들었다.
내가 오마이걸의 노래들을 알게 된 건 2018년에 <비밀정원>이 발표되었을 때부터다. 그 이전에도 이 그룹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고, 몇 번 그들의 노래를 들어보거나 TV에서 공연하는 것을 본 적은 있었지만 그다지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그저 유사한 걸그룹이 또 하나 나왔구나 싶었다. 한 해에도 100여 개의 걸그룹들이 데뷔를 하고, 대부분 비슷한 콘셉트이니 그 가운데서도 눈에 띄는 건 쉽지 않은 것이다. 처음에는 그들도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 공연을 하기는 어려웠겠지.
하지만 <비밀정원>은 뭔가 달랐다. 뭔가 그들만의 느낌이 있는 것 같달까? 그래서 그들의 이전 곡들도 몇 곡 들어보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곡들이 많았다. 여러 가지 콘셉트가 혼재되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러다가 그들에게 확실히 꽂히게 된 건 <돌핀> 때였던 것 같다. 그 노래의 중독성이 강해서 자주 들었던 것 같다. 반면 같은 앨범의 타이틀곡이었던 <살짝 설렜어>도 좋긴 했지만, 사실 그들의 곡인줄도 몰랐다. 나중에서야 알고 '이런 콘셉트의 노래도 불렀어?'라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던던 댄스>나 <여름이 들려>까지, 그들의 곡인 줄 모르고 들었던 것들도 나중에 알게 되면서 내 플레이 리스트에서 그들의 노래는 (주로 유튜브 뮤직을 듣는데, 오마이걸 노래만 모아놓은 리스트들도 많다) 아마 거의 유일하게 듣는 걸그룹곡이 아닌가 싶다.
그들의 노래는 좋아했고 자주 들었지만 멤버가 몇 명인지 조차도 몰랐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멤버들에게 관심이 생긴 것은 이번에 미니 10집 앨범이 나오기 전에 발표된 티저 영상을 보고 나서다.
'아, 얘네가 여섯 명이었구나'라는 걸 처음 알게 된 것. 하지만 나무위키의 정보를 찾아보니 초기에는 8명이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진이가 탈퇴했고, 2년 전에는 지호가 역시 건강상의 이유로 재계약을 안 해서 현재의 6인조가 된 것이었다.
이후 각 멤버의 얼굴과 이름(본명까지)도 매치시키고, 목소리도 알게 되었다. 사실 일부러 외우려 한 건 아닌데 외워지더라. 왜냐하면 거진 일주일 동안 그들의 무대 영상과 동영상들을 많이 찾아보게 됐으니까. 약간의 안면인식 장애에 사람 이름 외우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내가 거의 완벽하게 외우게 됐으니 대단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데뷔 초기의 멤버들을 구분하는 것은 조금 어려웠다)
유튜브 상에 그들의 데뷔 때부터 최근까지 무대 영상을 모아놓은 동영상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든 생각.
얘네들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
물론 아이돌 중에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말 치열한 경쟁 속에서 데뷔를 하고, 정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다. 그래도 그동안 그들의 무대와 활동을 보면 멤버들이나 소속사나 참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소속사가 작은 곳이어서 상대적으로 열악할 수 있는 환경이었을 것이고, 데뷔 후 상당 기간 동안은 인지도가 낮아 다들 힘들었을 것 같다. 오죽하면 소속사 대표가 <비밀정원> 발표 전에, '이 곡이 잘 안 되면 이제 다 놓아주겠다'라고 했다고 할까.
다행히 <비밀정원>이 인기를 얻으면서 그룹에 대한 인기도 많아지고, 착실하게 성장해 나간 것 같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을 것 같다.
그들이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각인된 건 "컴백전쟁:퀸덤"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나는 당시에는 보지 못했고, 이것도 얼마 전에 그들의 무대 영상을 찾아보면서 알게 됐는데 그들이 화제가 될 만했고, 최종적으로 2위까지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무대에서 그들은 기존의 자신들에 대한 선입견을 모두 날려 버렸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무대를 만들었다. 각각의 무대에서 그들의 기획력과 실력이 빚어낸 결과였다. 많은 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오마이걸에 입덕했다고 하나 나는 이 프로그램을 몰랐기에 한참 더 늦게 된 것이다.
하지만 퀸덤에서의 영향력을 기반으로 상승하려던 차에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팬데믹에 빠졌고, 공연계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오마이걸 역시 막 비상하려던 차에 상승세가 꺾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러한 가운데서도 새로 발표한 곡들이 큰 히트를 쳤고, 그들의 인기도 더 많아졌다.
그리고 몇 년이 더 지나 이번에 10집 미니앨범이 나왔다. <Dreamy Resonance>라는 이름의 이 앨범에는 타이틀곡 <Classified>를 비롯해서 총 여섯 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타이틀곡이 '청순/몽환'의 계보를 잇는다면, <Start up>은 '청순/발랄/청량'의 계보를 잇는다고 할 수 있겠다. 소속사에서도 일단은 이 두 곡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듯하다. 그 외에도 두 명씩 짝을 지어 유닛으로 부른 곡 세 곡과,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곡인 <Heavenly>가 수록되어 있다.
나는 여섯 곡 모두 마음에 든다. 특히 타이틀 곡 <Classified> 같은 경우에는 뮤직비디오나 무대영상을 계속 보게 만든다. 그만큼 완성도가 높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마이걸이 '청순/몽환'과 '청순/청량'의 양쪽 모두에서 특색을 갖고 있기에 이젠 어떤 콘셉트를 해도 다 잘 소화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있다. 게다가 퀸덤에서 보여주었던 무대나 그동안 다른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었던 다양한 모습들, 그리고 커버나 리메이크 등에서도 좋은 평을 얻었기 때문에 그들의 실력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빠지게 된 이유를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1.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팀이다
앞서 말했지만, 그들의 무대 영상을 보면 그들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이돌 퍼포먼스의 기본인 칼군무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의 동선 이동이나 동작을 보면 재능도 있겠지만 연습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솔직히 데뷔 초반부터 초기의 무대 영상들을 보면 다소 부자연스럽거나 여타 걸그룹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러한 것도 모두 노력의 결과겠지. 지금은 그동안의 쌓인 경험과 관록으로 인해 여유를 가지고 즐기는 모습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신인 때 못지않은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초심을 잃지 않는 그 모습에 어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있으랴.
2. 안무 수준이 높다
그들의 안무는 수준이 높다. 이 역시 초기에는 여타 걸그룹과 비슷했지만 점차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나가게 되면서 그에 맞는 안무를 하게 된 것이다. 특히나 동선 이동이 많고 (<클로저> 같은 경우에는 안무로 별자리를 형상화하는 극상의 난이도를 보이기도 했다), 동작이 섬세해서 쉬워 보이진 않는다. 또한 청순/몽환 계열의 곡에서 그들의 안무를 보고 있으면 마치 무용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든다. 하지만 그런 곡들 뿐만 아니라 신나는 댄스 곡들, 혹은 약간 걸크러시 느낌이 나는 곡들 (예를 들어 <불꽃놀이>)에서는 자유로우면서도 힘 있는 댄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아, 그래도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의 귀여운 춤까지는 사랑스럽게 봐줄 수 있지만, <윈디 데이>에서의 개다리춤은 적응이 안 된다...
3. 좋은 곡들이 많다
소속사가 작은 곳이긴 하지만, 오마이걸의 곡들은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작사가와 작곡가들이 참여하여 만들어서 대체로 좋은 편이다. 곡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했거나 인기가 없었던 곡들도 나중에 재조명되기도 한다. 또한 팬들마다 애정하는 곡이 각기 다를 만큼 다양한 곡들이 있기 때문에 어느 곡을 골라 들을까 고민이 되기도 한다. 그동안 발표한 곡들이 많다 보니 그 곡들을 다 듣는데도 시간이 꽤 필요하기 때문에 '노동요'로도 좋다.
4. 노래의 가사가 좋다
사실 가사는 그동안신경 써서 듣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몰랐지만, 무대 동영상을 보면서 함께 나오는 가사를 보니 대체로 가사가 좋은 편이었다. 또한 노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영어보다는 한글로 된 가사가 많은 것 같았다. (앨범명이나 노래제목은 영어로 된 것이 많지만) 의미 없는 단어의 나열보다는 곡 내에서 기승전결이 이루어지는 구조가 많거나 혹은 한 편의 서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그들의 곡을 듣고 있으면 뮤지컬 공연 한 편을 본 것 같기도 하다. 그러한 느낌이 아련함이나 여운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멤버들이 대체로 딕션이 좋아서 가사 전달력도 좋은 것 같다. 가사를 알게 되니까 노래를 더 좋아하게 된 듯하다.
5. 보컬과 댄스 모두 수준급이다
멤버 각각이 맡은 포지션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미미의 랩파트를 제외하고는 다른 팀들처럼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는 듯하다. 이는 멤버 개개인이 보컬과 댄스에서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꾸준하게 개선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멤버들 전원이 보컬과 댄스에서 평균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팀은 그리 흔치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개개인의 음색이 다르고, 미미도 랩 할 때와 노래할 때 음색이 다르기에 적절하고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듯하다. 그래서 보컬파트의 배분이나 무대에서의 위치도 대체로 잘 배분할 수 있는 듯하다.
6. 오마이걸의 노래는 위안과 힐링이 된다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위안이 되거나 힘을 얻게 된다. 아무래도 청순/몽환 계열은 그러한 감정을 느끼게 돼서 위안이 되는 것 같고, 발랄한 댄스곡은 힐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출근해서 아침마다 그들의 노래를 듣거나 공연 영상을 보곤 한다.
7. 멤버들이 각각 가진 매력이 있고, 멤버 간에 케미가 좋다
멤버들 모두가 개성이 있으며 매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누구 한 명 특별히 더 관심이 가거나 덜 가는 멤버가 없다. 또한 현재 활동 중인 여섯 명의 멤버들뿐만 아니라 이전 멤버였던 두 명이 있을 때도 서로 잘 지냈던 것 같고, 케미도 좋은 것 같다. 이는 리더인 효정의 역할이 큰 것 같다. 그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팀 전체를 잘 이끌고 있는 것 같고, 그 덕분에 불화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그 멤버 그대로 (안타깝게 탈퇴한 멤버들 외에)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또한 각자 자신이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이제는 자신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개진하려는 것 같다. 그것이 더 발전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될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의 개성이 더 드러나고 있지만, 그것이 조화를 이루면서 장점이 되는 것도 '잘 되는 팀'의 특징인 것 같다.
8. 진심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진심이 느껴진다. 노래와 공연에 대한 진심은 물론이거니와, 팬들(미라클. a.k.a. 크리), 관객, 그리고 모든 이에게 진심인 것 같다. 특히 팬들에게는 그러한 마음을 자주 표현하고, 곡으로 담기도 했다. 이번에 발표된 <Classified> 역시 그러한 멤버들의 마음을 담은 곡이다.
이러니 오마이걸의 매력을 알게 되면 입덕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최근에 읽었던 <음악소설집>이라는 옴니버스 단편집에서는 다섯 명의 소설가들이 음악을 주제로 각각 한 편씩 단편을 썼고, 뒷부분에는 작가들에 대한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다.
그중에서 윤성희 작가의 <자장가>에서는 '태어나서 본 것 중에 가장 커다란 꽃'이라는 가사가 인용되어 있는데 이는 오마이걸의 <불꽃놀이>에 나오는 가사다. 작가 인터뷰를 보면 윤성희 작가도 오마이걸의 팬이라고 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또한 이세돌 9단의 경우에도 '자타공인 미라클'인데, 괜히 끄덕끄덕하게 된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도 있다. 무엇보다 멤버들의 건강문제다. 데뷔 초부터 멤버들에겐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가 많았는데 아무래도 무리한 연습과 일정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서다. 특히 그들의 퍼포먼스 상 난도가 높고 많은 연습이 필요해서 그럴 것이다. 아무쪼록 앞으로도 계속 부상당하는 멤버가 없이 오래 활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한 가지 염려되는 건, 점차 개인 활동이 많아지면서 팀의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미 솔로로 활동하고 있는 유아나 뮤지컬에 출연한 효정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멤버가 영화나 드라마 촬영도 했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러한 활동들을 병행해 오면서도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괜찮을 것 같고, 자신들도 그러한 개인 활동으로 인해 팀 활동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내가 괜한 생각을 하는 걸까 싶기도 하다.
오마이걸도 2015년데 데뷔했으니 올해로 벌써 10년 차다. 하지만 그들은 10년 간 착실하게 실력을 쌓아와서 이제 그 정점이 이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멤버 개개인이 가진 장점을 잘 살리고, 자신에게 부족했던 점들을 더 보완해 감으로써 팀 전체의 완성도가 높아진 점도 강점이다. 말 그대로 '만능툴'이 된 것이다.
10대 중후반에 데뷔한 그들은 이제 20대 중후반이 되었고, 벌써 30대에 접어드는 멤버도 있다. 시간이 어느덧 그만큼 지났으니. 그래서 데뷔 때처럼 '소녀 콘셉트'를 지속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을 수 있겠다.
그렇지만 팬들에게 그들은 여전히 "oh, my girl"로 남아 있을 것이고, 그들을 응원할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앞으로도 롱런하면서 오래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https://youtu.be/a-O02JzD3us?si=4o3pEi-cx2uHEoIt
얼마전에 올라온 킬링 보이스에서는 그들의 대표곡들을 들을 수 있다. 공연 영상을 보면 그들의 매력을 더 느낄 수 있겠지만, 보컬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