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천사의 날개를 타고
10장 천사의 날개를 타고
중요하지만 적절하지 않은 요인들
평화주의자의 딜레마
리바이어던
온화한 상업
여성화
확장하는 공감의 범위
이성의 에스컬레이터
고찰
이제 마지막 장입니다. 10장의 제목은 "천사의 날개를 타고"인데요, 원문에서는 "On Angels' Wings"입니다. 즉, 천사가 한 명이 아니라 복수인 건데 이는 우리의 본성에 있는 선한 천사가 여럿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그러한 천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10장은 여러 개의 짤막한 파트로 나뉘어 있는데요, 그중 핵심을 이루는 것은 '평화주의자의 딜레마'를 행렬로 나타내고 그중 어느 것의 이득이 가장 큰가를 보여주는 것인 듯해요. 이는 '죄수의 딜레마'를 조금 변형한 것이지만, 핑커는 여기에 여러 가지 요소를 더해 그 손익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주장을 산술적으로 증명하고자 했던 것이죠. 이에 대한 얘기는 조금 있다가 다시 해볼게요.
지금까지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분들께서는 어떤 것을 느끼셨을까요? 핑커의 의견에 동의하시는지, 아니면 여전히 그가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의 주장과 그가 제시한 근거들에 대해 불신을 갖고 계시는지요? 사실 저는 그의 주장을 반 정도만 받아들이고 있는데요, 그도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리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까지 많은 종류의 폭력이 감소했다고 '정말로' 믿고 있는 듯합니다. 그는 폭력의 감소는 사회적, 문화적, 물질적 조건의 산물이라고 하며, 그러한 조건들을 정말 샅샅이 조사하려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여전히 미래에 대한 예측이나 조언은 삼가려 합니다. 추세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지만요.
10장에서는 앞서 일부 다뤄졌거나 혹은 중요하긴 하지만 일관성이 없는 요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러한 요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무기와 군축 (기술결정론): 무기의 발전과 군축 경쟁이 더 많은 사상자를 낳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무기는 폭력을 감소시키는 역학 관계에 내생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 자원과 권력 (자원결정론): 자원을 둘러싼 전쟁(베트남 전쟁도 텅스텐 전쟁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죠)이 있지만, 직접적인 원인이라기보다는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는 (이 역시 내생적인) 느슨한 연관성만 보여줍니다.
- 풍요: 사회가 부유해질수록 더 평화로워진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합니다. 또한 폭력 범죄는 경제 지표와 밀접한 관련이 없습니다. 다만 빈곤한 국가에서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은 있지만 대량 학살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 종교: 종교는 과거나 현재도 여러 가지 폭력을 합리화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계에서 폭력에 대항해 활동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렇듯 종교는 폭력의 역사에서 단일한 역할을 하기보다는 그러한 신념과 관습, 근본주의가 세력을 가질 경우에 폭력적이 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죄수의 딜레마를 변형한 평화주의자를 딜레마를 이용하여 폭력이 왜 더 유혹적인지, 폭력을 줄이는 것이 왜 어려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폭력을 줄일 수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는 이를 기본적으로 다음의 형태로 표현합니다.
여기에 있는 숫자는 핑커가 임의로 부여한 것인데 딜레마의 비극적 구조를 보여주기 위해 비대칭적으로, 다소 과장되게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후에 이어질 다른 요인들을 고려하기 위해 나름 적절한 수치를 넣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엔트로피의 법칙을 언급하면서 평화보다는 파괴와 불행을 초래하는 것이 더 쉽다고 합니다. 사실 국가 혹은 집단 간 분쟁이 아니어도, 개인 간에도 늘 분쟁 상황을 경험하기에 매번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쉽지는 않습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는 없고, 대체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별다른 마찰 없이 넘어가는 것을 택하게 되죠. 하지만개인에 따라 좀 더 과격한 선택(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결국 가장 나은 것은 양쪽 모두 평화적인 쪽을 선택하는 건데요, 이는 단순히 평화주의자여서가 아니라 그 안에 작용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홉스의 함정' 같은 것도 그러한 선택압이 되기도 하겠죠.
또한 리바이어던 (혹은 정의의 여신인 유스티티아)은 폭력을 독점하며 관리합니다. 이로 인해 내부적 혹은 대외적으로 폭력을 억제할 수 있으며, 폭력에 대해 페널티를 부과합니다. 이에 대한 도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렇듯, 페널티가 부과될 경우에는 평화적인 선택 이외에는 모두 상당한 손실을 입게 되며 특히 전쟁의 경우에 더 그렇습니다. 설사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아무런 이득이 없는 것이죠. 사실 이것 역시 다소 과장된 표현일 수 있는데요, 대부분의 전쟁은 전쟁을 일으킨 쪽이 승리를 장담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죠. 역사적으로는 승률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요. 또한 이는 리바이어던이 개입하게 되면 분쟁의 빈도는 낮아져도 그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온화한 상업의 경우에는 평화적인 결정에 더 이득이 됩니다. 이는 공격의 동기를 제거하는데, 상호 신뢰와 서로의 이익을 존중하는 쪽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또한 앞서 엘리아스가 문명화의 원동력이 리바이어던과 상거래의 발달이라고 하기도 했었죠. 이에 대한 근거도 제시했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정리하는 의미로 보여준 것 같습니다.
여성화 역시 앞서 언급된 바 있었습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덜 폭력적이라는 것을 생물학적, 사회적인 관점에서 얘기했는데요, 단순히 그러한 것뿐만 아니라 남성적 명예문화에 대한 비판, 결혼을 통한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감소 효과(이건 좀 이해가 안 되지만요), 남성 과잉의 부작용 등도 같이 언급하고 있네요.
어쨌든 여러 종류의 여성화, 직접적인 정치적 권한 부여, 남성적 명예의 축소, 여성의 조건에 따른 결혼 장려, 여아의 출산권, 여성의 생식 능력에 대한 통제권 등이 폭력을 감소시키는 힘이 되어 왔습니다.
이어 공감(동정심)과 이성적 판단이 폭력의 억제와 평화적 선택에 얼마나 이득이 될 것인가를 보았습니다. 앞서 '공감의 확장하는 원'이라는 개념이 나왔었는데요, 이는 평화적 선택의 이득을 증가시키지만 폭력적인 선택의 경우에는 그 손실을 가중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17세기부터 출판과 교통이 발달함으로써 인도주의 혁명이 시작되었죠. 더욱이 지금은 세계화와 전자 혁명으로 인해 긴 평화, 새로운 평화, 그리고 인권 혁명의 시기가 되었습니다.
이 책도 이제 마무리에 들어갑니다. 확장하는 원과 이성의 에스컬레이터는 문맹 퇴치, 국제주의, 교육 등 동일한 외생적 원인에 의해 구동됩니다. 그리고 이들의 진정 효과는 평화주의자의 딜레마에서와 같은 이해관계의 융합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성의 에스컬레이터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성의 에스컬레이터에는 논리적 관계와 경험적 사실을 파악하려는 사상가의 심리적 구성과는 무관한 현실의 본질이라는 또 다른 외생적 원천이 있습니다.
이성의 에스컬레이터가 가져온 더 광범위한 효과는 부족주의, 권위, 도덕 체계의 순수성에서 벗어나 휴머니즘, 고전적 자유주의, 자율성, 인권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입니다. 또한 인간의 번영을 궁극적인 선으로 여기는 인본주의적 가치 체계는 이성의 산물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 체계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의 방향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잘 발달된 추론 능력과 협력, 민주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비폭력에 대한 수용성 사이에 상관관계, 또는 약간의 인과관계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마지막 고찰에서 핑커는 폭력의 감소를 보여주고자 수많은 데이터를 제시했지만 그럼에도 그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폭력의 역사적 쇠퇴에서 다음의 두 가지 성찰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자주 그러긴 했지만, 몇 가지라고 얘기했지만 그것이 명확하지 않아서 여기에서도 두 번째는 어떤 것인지가 좀 불분명하긴 합니다)
첫 번째는 과학, 기술, 이성에 의한 인간 삶의 변화와 그에 따른 관습, 신앙, 공동체, 전통적 권위, 자연에 대한 내재성의 약화와 같은 근대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아마도) 두 번째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현대에 더 폭력이 넘쳐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현대에도 폭력 범죄는 끊이지 않으며, 전쟁과 분쟁도 여전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과거와 양상은 다르며, 핑커는 '어떤 낭만주의자도 실제로 타임머신에 탑승해서 과거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평화로운 과거에 대한 향수는 착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많은 통계자료를 제시했던 것이겠죠.
평화주의자의 딜레마의 행렬에서 인간의 본성은 좌상단에 위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쪽으로 갈 수 있는 동기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앞서 언급했던 여러 가지 요인들이 같이 작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괴적인 경쟁에서 벗어나는 것은 우주의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목적입니다. 종교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신의 칙령이 없는 한 도덕은 결코 우리 외부에 근거를 둘 수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사람들은 취향이나 유행에 따라 이기적인 이익만을 추구할 수 있으며, 상대주의와 허무주의의 삶을 선고받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이 주장이 왜 잘못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카리스마, 전통 또는 힘에 의해 임의의 파벌에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동료 사상가에게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에 천상의 합창단에 합류하거나 우주의 정신에 녹아들거나 더 높은 생명체로 환생하는 것보다 더 고귀한 목표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살펴본 데이터는 그것이 진전을 이룰 수 있는 목표, 즉 멈춰 있고 불완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틀림없는 진전을 이룰 수 있는 목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 우리 삶의 모든 고난과 세상에 남아 있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폭력의 감소는 우리가 음미할 수 있는 성취이며, 그것을 가능하게 한 문명과 계몽의 힘을 소중히 여기는 원동력입니다.
이렇게 이 책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낙관적인 입장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개개인의 본성에 내재된 선한 천사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서의 인류, 그리고 집단적인 힘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즉, 우리는 그러한 천사들의 날개를 달고 종교적 의미에서의 천상이 아닌, 우리가 추구하는 높은 이상향을 향해 날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요.
저는 이 책을 두 번째 읽으면서, 처음 읽었을 때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쉽게 생각해서 함읽을 해보자고 했었는데 내포된 것들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음을 깨닫게 되었네요. 하지만 함읽을 통해 더 깊게 읽을 수 있었고 다른 분들의 시각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더 이상 읽을 필요는 없을 듯해요. 이 책도 나온지 10년이 넘었고, 그 이후에 더 좋은 책들이 나와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