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14장
11장과 12장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다윈은 왜 "지리적 분포"라는 동일한 범주의 내용을 굳이 두 개의 챕터로 나눴을까요? 단순히 분량이 좀 많아졌기 때문은 아닌 듯한데요, 두 장을 읽어보면 그래도 조금 구분이 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우선 11장에서는 조금 더 이론적인 주장을 펼치고 12장에서 그에 대한 증거나 예시, 또는 예외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특히, 각 장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보이네요.
11장은 "기후 조건이나 물리적인 환경을 바탕으로 해서는 다양한 지역에 사는 생물들의 유사성이나 차이점을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비슷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뚜렷하게 다른 종이 서식하는 지역들이 있기 때문에 물리적인 환경과는 다른 요인이 종 분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죠.
그러면서 그는 장애물, 즉 지리적 장벽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합니다. 산맥, 사막, 바다와 같은 자연 장벽이 종의 이동 능력을 제한함으로써 종 분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반면, 물리적인 조건과는 무관하게 '시공간에 걸쳐 만연했던 깊은 유기적 유대'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유대란 단순히 말해 대물림'이라고 하였지만, 거기에 어떤 필연적인 발달의 법칙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각 종의 변이성은 독립적 속성으로서 복잡한 생존 투쟁에서 개체에게 이득을 주는 정도에 한해서만 자연선택에 의해 이용될 것이므로, 다른 종에게서 나타나는 변화의 정도는 제각기 다를 것"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다른 지역 간 뚜렷한 동물 군의 차이와 고립된 섬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종과 같은 예를 통해 설명됩니다.
또한 과거의 기후 변화(빙하기)와 지질학적 변화가 어떻게 여러 지역에 걸쳐 종의 이동을 허용하거나 제한했는지 설명하면서 종 분포의 역사적 측면까지 보고자 했습니다. 그러한 것은 우발적 또는 간헐적인 사건이었는데요, 그러한 사건들이 어떻게 선택압으로 작용하여 진화를 야기했는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죠.
지질학적 변화로 인해 육지가 연결되거나 혹은 끊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연결성의 변화로 인한 종의 이동성이나 인간 활동에 의한 우연한 확산 등도 종의 확산에 기여합니다. 특히 지질학적 시간 규모에서는 이러한 분산 방법이 종의 확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는 "왜 한 지역의 서식 생물들이 그것들이 존재했던 다른 지역의 서식 생물들과 유연관계를 맺고 있는가"하는 점도 설명합니다. 이러한 대륙 간 종의 유사성은 종종 대륙이 분리되기 전에 존재했던 공통 조상 종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더라도 공통의 유전적 유산을 가진, 생태적으로 유사한 종이 나타나게 된 것이죠.
다윈의 주장은 "모든 종은 유연관계가 밀접한 기존 종들과 우연히 동일한 시공간에서 생겨났다"는 월리스의 견해와도 일치하며, 이것이 곧 '변이를 동반한 계승'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그는 지질학자로서의 자신의 식견을 발휘하여 (특히 대륙 이동이나 빙하기 등) 지리적 분포에 대한 설명을 하였는데요, 만약 그가 단순한 생물학자였더라면 오히려 진화의 증거를 찾기가 더 어렵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만, 베게너가 대륙이동설을 주장한 것이 20세기 들어와서인 것을 고려하면 다윈이 얘기한 대륙 이동이나 지질학적 변화는 그보다는 덜 역동적이며, 단순히 해수면의 높이가 바뀌거나 혹은 대륙이 융기하거나 가라앉는 정도의 변화만을 생각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12장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지리적 장벽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범위를 갖는 담수 생물의 역설을 보여줍니다. 호수와 하천은 육지에 의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니까요.
이에 대해 그는 물새에 의한 우연한 종의 이동, 홍수나 지질학적 변화로 인한 수역의 연결성 등이 넓은 지역에 걸쳐 종의 이동을 촉진한다고 설명했네요. 이렇듯 12장에서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서술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리처드 도킨스의 <조상 이야기>에서 빅토리아호수의 시클리드 사례를 들어 종분화를 설명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도킨스는 기존의 지리적 격리이론에 대해 보완 설명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다윈 역시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면서 단지 지리적 격리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물론 다윈과 도킨스가 설명하는 내용과 범주는 다르지만요.
이 챕터에서는 고유종이 많이 서식하는 대양도(해양 섬)의 독특한 생태학적 역학에 대해 다룹니다. 섬이 고립되어 있다는 것은 섬에 도착한 생물종이 그곳의 틈새에 적응해야 하며, 종종 본토의 조상과 다른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특히 갈라파고스와 뉴질랜드, 하와이는 고립된 환경으로 인해 놀라운 진화 과정을 거쳐 높은 수준의 고유종과 특정 서식지에 고도로 적응한 종을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박쥐 얘기가 나왔네요. 앞서도 박쥐 얘기가 나왔던 것 같은데요, 도킨스도 그렇고 다윈도 그렇고, 진화론자들은 박쥐에 대한 애착이 있나 봅니다.
하지만 그러한 외래종이 기존의 생태계를 교란하고 토착종의 멸종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인간 활동이 종 분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하죠. 외래종을 의도적으로 유입하거나 혹은 기존의 종을 멸종시키기도 하니까요. 특히나 섬과 같은 곳은 생태계가 취약하기 때문에 그러한 영향을 더 쉽게 받습니다. 호주의 토끼와 여우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겠죠.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이 문제인 것 같아요.
다윈은 "시공간을 통틀어 생명의 법칙들에는 놀라운 유사성이 존재한다"라고 했는데요, 과거에 생명의 천이를 지배했던 법칙들이 현재 서로 다른 지역에서의 차이점들을 지배하는 법칙들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죠. 이는 수렴 진화의 다른 표현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의미는 조금 다르게 해석될 수 있지만요.
정리하자면, 지리적 분포가 현재의 환경 조건뿐만 아니라 역사적, 진화 과정, 인간 활동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살펴보았는데요, 그러한 종의 분포 메커니즘은 당시로서는 자연선택설 못지않게 센세이셔널한 주장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분량에 비해서 (예시가 많다 보니) 정리할 내용은 그렇게 많지는 않은 듯합니다. 지리적 분포 역시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강조하고 있는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인데요, 앞서 종이 어떻게 분화되었는가를 살펴보았다면 종이 왜 분화되었고, 어떻게 분포되었는가를 보고자 하는 것이 12장의 내용이었던 것 같네요. 익히 알려진 것들도 있지만 다윈은 그러한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자신의 탐험 기록 및 여러 자료들을 자세히 살펴본 듯합니다.
13장의 제목은 "유기체들의 상호 유연관계, 형태학, 발생학, 흔적기관"입니다. 챕터의 제목이 꽤 긴데요, '상호 유연관계'는 '비슷하다' 혹은 '연관성이 있다'라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즉, 유기체(생명체)들이 형태학, 발생학 측면에서 유사성이 있고, 때로는 퇴화된 기관들이 흔적 기관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얘기하려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먼저 '분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린네의 분류학을 진화의 관점에서 고찰해보고자 한 것 같은데요, 당시 분류학은 형태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고정된 형질이 아닌 바뀌는 형질이라면 (진화론에서는 고정된 것이 없다고 했으니까요) 분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심스러웠을 거예요. 다윈이 자신의 이론을 주장하면서, 결국 분류의 문제를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니까요.
린네는 '형질이 속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속이 형질을 부여한다'라고 했다네요. 다윈은 이를 '형질 집합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분류가 임의적이지 않고 '자연적 분류 체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다윈은 그 말에서 '계통의 근연성'을 생각했습니다. 이건 단지 외형적 유사성은 아니죠. 그러면서 기존처럼 형질에 기반한 단순한 분류학이 아닌 '계보학'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나중에 분기학 또는 계통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요, 이 부분도 그의 통찰력이 돋보였네요. 이에 대한 얘기는 이전에 <자연에 이름 붙이기>에서 자세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다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것이 이번 장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생존 투쟁의 결과로 초래된, 그리고 하나의 우세한 조상 종으로부터 나온 많은 자손들이 멸종되거나 형질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자연선택이 모든 유기체들이 보여 주는 유연관계, 다시 말해 집단 아래에 집단이 속하게 되는 거대하고 보편적인 양상을 설명해 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는 어떤 종을 구성하는 개체들을 분류할 때 계통이라는 요소를 이용하며,... (중략) 나는 계통이라는 이 요소가 박물학자들이 그동안 자연적 분류 체계라는 개념 아래 찾으려고 노력했던 숨겨진 연결의 요체라 믿는다.
또한 종-속-과-목-강-문-계-역으로 정리된 체계에서, 종보다 윗 단계, 즉 속이나 과, 목, 강 등에서도 유사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고자 하는 듯합니다. 그는 특히 동일한 강의 구성원들이 유기체 전체의 구조 측면에서 서로 유사하다는 것을 강조했는데요 이는 '유형의 통일성'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상동성, 상동기관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이러한 유사성은 동일한 구조적 요소가 다른 목적에 맞게 변형되는 것에서 볼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인간의 손, 두더지의 앞다리, 말의 다리, 알락돌고래의 지느러미, 박쥐의 날개와 같은 것이죠. 이러한 상동 기관은 형태와 기능이 변하더라도 동일한 순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특정 체형을 가진 공통 조상으로부터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동기관도 자연선택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발생학 측면에서는 같은 분류에 속하는 다른 종의 배아가 종종 서로, 그리고 공통 조상을 닮는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배아 발생 비교 그림은 아마 많이 보셨을 것 같아요. 배아의 이러한 유사성은 다양한 종의 공통 조상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변화를 동반한 계승이라는 관점에서 설명 가능하다고 했네요. 이는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보여주는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생각보다 더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당시 생물학 수준이나 현재의 일반적인 생각의 수준에서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흔적 기관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퇴화 기관 혹은 발육이 정지된 기관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는 동물과 식물 모두에서 나타나는데요, 형태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쓸모가 없는 기관이죠. 이러한 기관은 상황에 따라 여러 세대에 걸쳐 불용용을 통해 축소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축소된 형태로 유전됩니다. 자연선택과 기능의 변화는 이러한 구조를 더욱 축소하거나 용도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퇴화시키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죠. 개체 내 자원의 분배라는 측면에서 본다면요.
그는 분류학에서의 복잡한 관계와 분류의 어려움은 공통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종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형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는 형태학, 발생학, 흔적 기관의 존재에서 관찰되는 패턴과 일치하며, 분류에 대한 계통학적 접근이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모든 생명체가 공통의 계통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다음의 말에서는 다윈의 확신이 느껴집니다. 자신의 이론을 더 넓은 범위까지 확장했지만 거기에서 어떤 모순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최종적으로 이 장에서 살펴본 몇 가지 사실들은 이 세상을 채우고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유기체 종들, 속들, 그리고 고가들이 모두 각각 자신의 강이나 집단 내에 공통 조상으로부터 내려왔으며, 모두 계승의 과정에서 변화되어 왔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따라서 나는 아무리 다른 사실이나 논의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시각을 망설임 없이 채택할 수밖에 없다.
드디어 <종의 기원>의 마지막 장에 이르렀습니다. <종의 기원>의 마지막인 14장은 "요약 및 결론"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윈은 그동안 각 장마다 친절하게 반복 설명과 요약을 해주었는데, 책의 말미에서도 요약을 해 주네요. 정리하는 내용이라 크게 어려움 없이 읽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책의 도입부에서 다윈은 육종에 의한 품종 개량이 인위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면 자연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시작했는데요, 그러한 '자연선택'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유익한) 변화를 동반한 계승'이라는 메커니즘이었습니다. ('성 선택'이라는 메커니즘도 있습니다만, <종의 기원>에서는 '자연선택'이 더 강조되고 있으며, '성 선택'에 대해서는 그의 후속 저서인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서 좀 더 자세하게 소개되었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생존 투쟁' 때문입니다. '종 내 경쟁', 그리고 '종 간 경쟁'을 통해 더 우세한 개체가 종의 다수를 차지하게 될 것이고, 그러한 종이 다른 종을 밀어낼 것이라는 점이죠. 이러한 것은 자칫 '우생학'으로 진행될 우려도 있고, 실제로 20세기 전후로 그러한 것들이 있었습니다만, 이는 그의 주장을 잘 못 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다윈은 자신이 주장한 내용이 많은 반대에 부딪힐 것을 예상했습니다. 특히, 복잡한 기관과 본능이 직접적인 창조나 설계가 아닌 수많은 작고 유익한 변이를 통해 진화했다는 주장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죠. 그래서 방대한 분량과 증거 제시를 통해 설득을 하려고 했던 것이고요.
하지만, 그는 모든 형질은 조금씩 다를 수 있고, 생존을 위한 투쟁이 있으며, 유익한 형질은 보존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누적된 변화가 복잡한 적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합니다. 이러한 개선은 점진적으로 일어나며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는 개념과도 일치합니다. 이러한 것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긴 시간의 힘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다윈은 종의 분포와 화석 기록이 불완전하고 공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여러 지역과 시대에 걸쳐 점진적인 진화와 공통의 조상이 존재하는지를 설명하였습니다. 지리적 분포에 대한 내용에서 이를 자세히 설명했던 기억이 나실 거예요.
다윈이 진화라는 개념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각 종이 독립적으로 만들어졌다면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불완전성과 의문점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당시에도 진화론은 지식인들 사이에 퍼지고 있었지만, 그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정립되지 못했습니다. 다윈보다 앞서 라마르크가 소위 '용불용설'을 주장했던 것도 그러한 일환이었죠.
다윈의 업적은 그러한 진화의 메커니즘을 보다 명확하게 밝혔으며, 그것을 지지하는 증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결과물이 바로 이 <종의 기원>인 것이죠. 이로써 진화론은 학문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대중들에게도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다윈은 진화생물학의 기초뿐만 아니라 분류학, 형태학, 발생학, 고생물학, 지리학 등 다양한 지식을 동원하여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주장을 전개했습니다. 물론 다윈이 모든 것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 과학 기술 수준으로는 모르는 것이 더 많았으며, 그러한 한계 속에서도 다윈은 많은 통찰력을 보여주었죠. 그리고 그러한 통찰력은 이후의 연구자들에게 길을 제시해 주었을 것입니다. 다윈 역시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미래의 연구자들에게 맡긴 것 같아요.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특히, 다윈은'생명의 나무' 개념으로 표현되는 계통도를 통해 '혈통의 계보(계보학)'를 제시하였는데요, 이것이 현재의 계통학이 기반이 되었죠.
또한 다음과 같은 내용도 다윈의 통찰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압권입니다.
유추를 통해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즉 모든 동식물들이 어떤 하나의 원형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추라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지침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화학적 조성에서나 밑씨, 세포 구조, 그리고 성장 및 생식의 법칙 등에서 많은 공통점을 가진다. 우리는 심지어 똑같은 독성분이 동물이나 식물에 유사한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는 점, 혹은 어리상수리 혹벌 (gall-fly)에 의해 분비된 독이 야생 장미나 오크나무에 기형적인 성장을 초래한다는 점 등 매우 사소한 경우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유추를 통해 나는 아마도 지구에서 살았던 모든 유기체는 처음으로 생명력을 가지게 된 어떤 하나의 원시 형태로부터 유래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론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윈은 이 책에서 인간처럼 복잡한 동물도 태초에 하나의 작은 세포에서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진화해 왔다는 식의 주장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종의 기원'이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이는 '속' 또는 '과', '목'의 단위에서 어떻게 '종'으로 분화하는가에 중점을 두었기에, 분기된 종에게는 분기되기 전의 공통된 조상이 있을 것이라는 것 정도가 이 책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와서야 마치 '단순한 시작', 즉 단세포에서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왔다는 것을 시사하는 듯합니다.
다윈은 다음과 같이 유명한 말로 이 책을 마무리합니다. 이상으로 이 책의 정리를 마치겠습니다.
수많은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고, 덤불에서 노래하는 새들과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는 곤충들 그리고 축축한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벌레들로 가득 차 있는 뒤얽힌 둑(entangled bank)을 지긋이 관찰해 보면 참으로 흥미롭다. 또한 서로 너무나도 다르고,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서로 얽혀 있는, 정교하게 구성된 이런 형태들이 모두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법칙에 의해 탄생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법칙들은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번식을 동반한 성장, 번식과 거의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는 대물림, 외부적 생활 조건의 직간접적인 작용과 사용 및 불용에 의한 가변성, 생존 투쟁을 초래하는 높은 개체 증가율, 자연선택의 결과로 나타난 형질 분기와 덜 개량된 형태들의 멸절을 포함한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대상인 고등 동물은 이 법칙들의 직접적 결과물로서 자연의 전쟁 및 기근과 죽음으로부터 탄생한 것들이다. 처음에 몇몇 또는 하나의 형태로 숨결이 불어넣어 진 생명이 불변의 중력 법칙에 따라 이 행성이 회전하는 동안 여러 가지 힘을 통해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는,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장대익 교수가 이 책의 번역 후 사이언스북스와 인터뷰를 진행한 것이 있는데 참고가 되실 듯하여 링크를 걸어봅니다.
https://blog.naver.com/sciencebooks2/223773389325
https://blog.naver.com/sciencebooks2/223773389362
https://blog.naver.com/sciencebooks2/223773389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