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다. 인간을 성선설과 성악설의 이분법으로 논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래의 세 가지에 대해서는 사실이라고 여긴다.
1. 인간은 이기적이다
2. 인간은 어리석다
3. 인간은 게으르다
이기적인 데다 어리석고, 게으르기까지 한 존재.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것들이 인류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고, 생태계의 최상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기적이고, 더 어리석고, 더 게을러지기 위해서다.
게으름은 보다 편리함을 추구하게 하면서 '문명'을 발전시켰고, 어리석음은 다른 이의 어리석음을 비판하기 위해 '지식'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이기심을 '경쟁'이라는 동력으로 변환시켰다. 이들은 맞물려 돌아가며 서로 강화시켰다.
이기심에서 '기'는 범주의 문제가 있는데, 자신의 속한 크고 작은 공동체 (가족, 부족, 국가)가 될 수 있다. 이는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기도 하지만 다른 공동체에 대해서는 배타적이 되게 한다. 궁극적으로는 이득이 자신에게 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AI 시대를 맞아 새로운 방식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AI는 이러한 점들을 교묘하게 파고듦으로써 급격하게 발전하고, 보급되었다. 만약 인간이 저런 존재가 아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인류에게 AI는 완벽한 답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AI 시대의 인간의 역할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분야에서 그렇지만, 특히 배우는 학생들의 경우에 그러한 우려가 더 크다.
'배운다'는 것은 대체로 '과정을 통해 습득하는 것'이다. 체계적으로 반복하여 훈련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이 된다. 하지만 AI는 그러한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을 얻도록 한다. 과정이 없는 습득은 사상누각이나 마찬가지라, 금세 무너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The New Yoker>에 아래의 기사가 나온 것을 보았다. 기사의 제목은 "AI가 대학의 글쓰기를 파괴한 이후에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이다.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25/07/07/the-end-of-the-english-paper
이 기사에서 저자는 뉴욕대 학생과의 인터뷰를 통해, 학생들이 과제하는데 AI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보여주었다. 또한 AI가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문제가 되며, 교수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고자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미국 대학생의 사례지만 국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중고등학생, 심지어는 초등학생까지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된다. AI를 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긍정적인 측면을 보려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이 어디까지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AI를 업무와 일상에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초등학교 6학년이 된 내 딸아이에게는 절대로 AI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AI의 유혹은 너무나 강해서 마약과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이도 아마 전혀 안 쓰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학교 수업에서도 AI를 활용한 수업을 하고 있을 테니까. 다만, 학습에서, 그리고 나와 같이 하는 몇 가지 공부(독서, 기사 읽기, 글쓰기 등)에서는 절대로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아이가 스스로 작성한 글이 아니라면 (다른 곳에서 베껴왔다거나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거나) 나는 그것을 바로 알아챌 수 있다. 아이와 함께 6년 이상을 그렇게 해 왔으니 내가 모를 수가 없을 것이고, 아마 앞으로도 그를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AI를 못 쓰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교육 현장은 다르다. 교사나 교수가 학생들의 과제물을 일일이 다 체크하기도 어렵고, AI로 쓴 글을 걸러내는 검사 프로그램도 불완전하다. AI가 쓴 글을 AI를 통해 찾아낼 수도 있지만 분량이 많을 경우에는 그것도 다 믿을 수 없다. 사람도, AI도 완전하게 사실을 밝히기는 어렵다. 그러나 학생들의 양심에만 맡기기에는 역부족이고, 학생들은 이에 대한 죄의식이나 양심이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냥, 검색 엔진을 이용하는 정도의 인식이랄까.
그러니 교육계는 혼란스럽다. AI가 발전함에 따라 이러한 현상도 더 가속화될 것 같다. 저 기사에 나온 일부의 대응책처럼, 온전히 오프라인 대면 필기시험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까. 그러한 것도 '시대착오적'이라는 말 밖에 못 들을 것 같고, 학생들의 반발도 있을 듯하다.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설사, AI를 이용해서 과제를 쉽게 하고, 좋은 학점을 받았다고 한들 졸업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AI 때문에 취업도 점점 더 힘들어지고, 취업 후에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 대학 교육의 몰락과 더불어 사회와 취업 시장도 같이 몰락해 가고 있다. 물론 각 개인도 그렇다.
기술의 발전과 효율성 추구. '그것이 올바른 방향인가?'라고 반문하기에는 늦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이 기차가 내가 가려는 목적지로 가고 있는가?'라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목적지를 확인하려면 타기 전에 확인했어야 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기차를 일단 출발시키고, 목적지는 가면서 정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혼란스럽기는 모두가 마찬가지다.
인터넷이 급속하게 보급되던 시기에 "앞으로의 지식은 '어떻게', '왜'가 아니라 '어디에 있느냐'가 될 것이다"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어떤 AI툴을 이용하느냐'가 될 수도 있겠다.
AI 기술이 발전하고,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대학의 전통적인 글쓰기 교육과 평가 방식이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했다. 아울러 '학습'과 '지식'의 근본적인 개념도 바뀔 듯하다.
그러나 이 과도기에서 방향과 목적성은 상실했다. 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는 아직 이 문제로 인한 장기적인 결과를 겪지 못했으며, 알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와 효율성만을 추구해 온 결과가 이렇게 나타났다. 그러나 그 근본에는 인간의 본성이 있다. 이기적이고, 어리석고, 게으른 인간의 본성이. AI 시대의 우리의 모습은 인간 본성의 표상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