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된 갇힘의 시간

앞유리가 다시 또렷해질 때까지

by 슬로하라


굳이 새해라서였던 건 아니다.

꽤 오랜 시간 바람과 비를 그대로 맞고 다닌 차를, 정말 오랜만에 세차했다. 손세차의 묘미를 잘 아는 사람은 아니어서, 동네 주유소의 오토세차를 택했다.


차를 정해진 위치에 세워두고, 안내된 대로 멈췄다. 잠시 정차한 듯한 그 공간에서 세차가 시작됐다. 시작을 알리듯 차를 덮는 거품, 곧이어 사정없이 쏘아대는 물줄기, 다시 한번 풍성하게 씌워지는 거품. 그 모든 과정이 앞유리 너머에서 순서대로 지나갔다.


나는 그 안에 앉아 있었다. 할 일은 없었고, 굳이 집중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차는 씻기고 있었고, 시간은 정해진 행과 열을 따라 알아서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대신 진행되는 몇 분이었다.


앞유리를 덮었던 거품이 서서히 흘러내리며, 구정물들이 한데 섞여 아래로 씻겨 내려갔다. 그 흐름을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차에 묻어 있던 때들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일상 속에 쌓였던 것들, 보여서 감출 수 없던 것들, 혹은 눈에 띄지 않아 그냥 두었던 것들이 함께 겹쳐 떠올랐다.


그것들을 굳이 떼어내려 애쓰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잠시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동안 흘러가는 장면이 있었다. 의도된 갇힘 안에서, 불편하지 않은 정적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지만, 생각들은 제각각 흘러가거나 잠시 머물렀다. 구정물과 거품이 뒤섞였다가 다시 맑은 물로 채워지듯, 머릿속은 한동안 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평온했다. 숨을 고르듯 지나간 오전이었다.


앞유리가 다시 또렷해졌다. 머릿속에서 뒤섞이던 희뿌연 것들도.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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