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리듬 위에서

파도를 피하지 않는 오후

by 슬로하라


찬바람이 바다를 몰아붙이던 오후였다.

물결마저 쉴 새 없이 때리며 결을 바꾸고 있었다. 물결은 고르지 않았고, 우윳빛과 청빛이 쉼 없이 뒤섞였다.


그 틈 사이로 성난 리듬을 온몸으로 타고 있는 희끄무레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것이 갈매기 떼라는 걸 알았다.


저리 거센 파도 위라면 날아올라도 될 텐데,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파도를 몰아치는 그 냉기가 하늘 위에서는 더 거셀 거라는 걸. 나는 그 이유를 끝까지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보다 먼저 도착하는 판단처럼.


그들은 떠나지 않았다. 몸을 낮춘 채 출렁임에 자신을 맡기고 있었다. 피하지도, 거스르지도 않은 채 그대로 견디고 있는 움직임들. 숨는 것도 아니고, 이기려 드는 것도 아닌 태도였다. 파도를 밀어내지 않고 그 위에 머무는 방식.


대개는 해변 근처를 날거나 자갈과 시멘트 바닥을 걷는 모습만 보아 왔기에 그날의 장면이 또렷하게 남았다.


성난 파도 위에서도 일상처럼, 아니 어쩌면 더 집중된 몸으로 그 리듬을 함께 타는 일. 그 장면을 오래 보게 된 건, 나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어떤 시간 위에 머물러 있는 중이기 때문인지도.


그들이 그렇게 평온해 보였던 건 내가 바라보는 쪽에서 만든 해석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오후였을 수도 있고. 혹은 판단할 필요조차 없는 자연의 생태를 내가 굳이 이해하려 들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정답을 묻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이 보여 준 지극히 평범한 한 장면에서 삶의 태도 같은 것을 의도 없이 얻어걸린 느낌.


가르치려 들지 않아도 말없이 남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날의 파도 위에서 보았을 뿐이다.


그저 맞이하는 것.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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