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대 사이에 서서

한 박자 늦은 새해

by 슬로하라


25년 12월 31일.

올해의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여느 일상과 다른 특별함은 없었다. 이부자리를 개고, 설거지를 하고, 집을 청소하고, 산책을 위한 산책을 한다.


한 해의 끝이기에 의미를 부여할 법도 하지만, 몸은 여전히 평소의 동선을 따른다. 끝이라는 말보다, 계속됨에 더 가까운 하루다.


오늘도 일찍 문을 닫을 상점들과 2일까지 휴일인 이곳의 시간을 대비해 조금은 더 넉넉히 장을 본다. 이른 오후, 한국 시간에 맞춰 송구영신예배를 드린다. 기도의 무게가 어디에 머물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시간을 통과하는 나의 방식만은 변함없었다. 그곳의 시간에 마음을 잠시 맞대어 보는 일이었다.


이곳의 밤은 아직 12월 31일에 머물러 있고, 그곳에서는 이미 새해가 시작된다. 시간은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데 도착하는 지점만 서로 다르다. 누군가는 이미 건너갔고, 나는 아직 이쪽에 남아 있다.


금지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삼삼오오 모여 터뜨리는 축하가 의례처럼 이어진다. 크게 요란하지도, 도시 전체를 뒤흔들지도 않는다. 어디선가 잠깐 빛이 터졌다가 곧 다시 깜깜한 어둠 속으로 스며든다.


찰나의 빛을 쏘기 위한 것이지만, 초저녁부터 잠잠해질 만하면 터져 울리는 진동에 이곳에서 보낸 한 해의 단상들 또한 그저 말없이 울려 보내게 된다.


정리하려 들지 않아도 정리는 이미 시작된 상태다. 새해 인사를 먼저 건네는 텍스트 속 목소리들이 화면 너머에서 한 박자 빠르게 들려온다.


나는 아직 닫히지 않은 하루 속에 서서 이미 지나간 시간을 맞이한다. 어긋나는 시간 틈에 새해의 문턱을 더디 넘어 보는 묘한 공백감마저 스친다.


카운트다운도 있고, 폭죽도 있지만 이곳의 새해는 밖으로 확장되기보다 각자의 집 안으로 접혀 들어간다. 문이 닫히고, 불이 켜지고, 사람들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어디로도 가지 않는 방식으로 새해가 시작된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나는 두 시간대 사이에 잠시 머문다. 이미 끝난 해와 아직 남아 있는 하루 사이에서. 맞이라기보다 통과에 가깝고, 시작이라기보다는 정리의 끝에 놓인 시간.


폭죽 소리가 멎고 나면 거리는 다시 평소의 고요로 돌아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해는 바뀌고,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시간을 지나고 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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