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어지는 하루의 끝

성탄 전야, 닫히는 시간의 풍경

by 슬로하라


성탄절을 하루 앞둔 아침은 기대와 달리 요란한 비바람으로 시작됐다. 날씨는 기념일의 들뜬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거칠었고, 이곳은 평소보다 조금 더 서둘러 하루를 열고 있었다.


이런 날, 마트는 오전부터 유난히 붐빈다. 성탄절을 앞두고 마트와 쇼핑몰의 문 닫는 시간이 평소보다 일러지기 때문이다.


일하는 사람들 역시 조금이라도 빨리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라는 분위기.


사람들은 카트를 빠르게 밀며 오늘 안에 끝내야 할 장보기를 정리한다. 내일이 아닌 오늘,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들만 담아 나오는 얼굴들이다.


연말의 들뜸보다 먼저 도착하는 건 생활의 조정이다. 열리는 시간보다 닫히는 시간이 먼저 공지되는 하루.


성탄절 다음날도 이곳은 공휴일이라 밖의 시간들이 하나둘 접히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집 쪽으로 방향을 튼다.


성탄절을 앞둔 저녁은 특별한 계획이나 준비는 없어도, 오늘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라는 묵시적인 합의 같은 것이 퍼져 있고, 그 기척은 이내 저마다 가족 쪽으로 둥글어진다.


평소보다 일찍 돌아오는 발걸음들, 저녁을 준비하는 시간이 앞당겨지고 식탁 위에는 오늘 안에 마쳐야 할 하루가 놓인다.


저녁이 가까워질수록 바깥은 조용해지고, 집집마다 켜진 창가의 반짝임이 안쪽의 소란함을 대신 밝힌다.


무엇을 더 하지 않아도, 어디를 더 가지 않아도 하루는 이미 충분히 접힌 상태다.


밖에서는 문이 닫히고, 안에서는 불이 켜진다.


요란하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가 조금 더 뚜렷해지는 하루. 하루의 가장자리가 천천히 마무리되는 밤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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