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
대학 때 도서관 귀퉁이에서 우연히 만난 책이 있다. 의도하지 않았고, 추천받지도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놓여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잠시 멈췄다.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
소설을 읽는 호흡을 오롯이 즐기는 편은 아니어서, 하루키의 작품 중 또렷하게 남은 작품은 많지 않다. 그런데 이 에세이집만은 다르다. 몇 차례 대여하며 옆에 두고 한동안 유심히 들여다본 시간으로 남아 있다.
그때 나는 싸이월드에 문장을 옮겨 적어 두곤 했다. 무언가를 기록하려 했다기보다, 그 시선이 지나간 자리에 잠시 머물고 싶었던 것에 가까웠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어느 날 문득 끄적여 두었던 문장 조각들을 되짚다 보니 불현듯 그 책이 너무 갖고 싶어졌다. 이미 절판되었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한동안 온라인과 오프라인 중고서점을 뒤졌다.
그로부터도 한참이 지나서 겨우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은, 마치 오래 미뤄 두었던 만남을 다시 치른 쪽에 가까웠다. 사고 싶었던 건 책이라기보다 아마도 그때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이 에세이집이 하루키 작품으로 치기엔 그저 메모에 가까워서 문체가 약하다고 말한다. 완성도도 떨어지고 매력적이지 않다고도 한다. 다만 나는 이 책에서 잘 다듬어진 문장보다, 의미 있는 통찰보다, 사물을 밀어내지 않고 그저 본질에 두는 태도를 더 오래 기억했다.
이 책의 소장은 사람들의 주 관심에 놓여 있지 않았기에, 오히려 평가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 겉도는 위치가 이 책의 가치가 되었다.
이야기가 되기 전의 생각들, 다듬어지지 않은 고뇌와 사색이 그대로 눌러 담겨 있는 장면 장면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장 날것의 결을 조용히 맡고 있는 일에 가깝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거리, 다가서지도 물러서지도 않는 시선. 그래서 나는 내가 어떤 글을 좋아하는지 떠올릴 때면 이 책을 다시 꺼낸다.
책장에서 책을 빼내 아무 쪽이나 펼쳤다. 그 시절 몹시도 공감하며, 나의 색깔이 궁금했던 구절이 담긴 페이지를 다시 마주했다.
102
색연필로 인생을 그릴 수 있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지 몹시 궁금하다. 내 인생의 그림은 과연 아름다울 수 있을까? 만약 인생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를 색연필이나 무슨 그런 것으로 하나하나 색칠하면서 구분한다면 '어떻게 하다 보니'라는 부분을 칠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양의 색연필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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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력은 몹시 불확실하다. 그것은 너무나도 불확실한 것이어서 가끔씩 그 불확실성에 의해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도대체 무엇을 증명하고 있는지 나로서는 통 알 수가 없다. 불확실성이 증명하고 있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그 문장들을 읽던 시절의 나는 아직 어떤 색으로도 선뜻 칠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무엇을 지나온 것인지도 또렷하지 않은 상태로 그저 '어떻게 하다 보니'의 구간을 오래 서성이고 있었다.
그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금의 나는 적어도 비워 두어도 되는 칸이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다. 굳이 채우지 않아도 남아 있는 자리, 설명하지 않아도 지나온 것으로 족한 시간들, 채우고 싶어도 끝내 남겨지는 무색의 여백들.
기억력은 여전히 완전하지 않다. 다만 예전처럼 무엇인가를 증명하려 애쓰지는 않는다. 기억이 흐릿해지는 대신에 채워 가고 남아 있는 것들의 윤곽이 조금씩 분명해졌다고 느낄 뿐이다.
아마도 내 인생의 색연필은 선명해졌다기보다, 여백을 감당할 줄 알게 된 쪽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면, 지금의 나는 충분히 이 페이지 앞에 다시 앉아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