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 못한 시간들을 정리했다

잘 비운 한 조각

by 슬로하라


신발장을 비웠다. 이곳에도 헌옷 수거함 같은 수거함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 더 미루지 않기로 했다.


슬로베니아에 와서 신발장에 넣어 두기만 했던 것들이 많았다. 샌들, 운동화, 구두, 부츠. 어떤 건 20대 후반까지만 신고, 이후로는 한 번도 꺼내지 못한 채 남아 있던 철 지난 것도 있었다. 신을 날을 기다리다 결국 기다림 자체가 습관이 되어 버린 채 자리만 지키던 것들이었다.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미련 없이, 싹 다 꺼냈다. 신발을 하나씩 손에 들고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았다. 왜 안 신었는지, 언제 신을 생각이었는지. 그 질문들이 이미 너무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다.


수거함 앞에 서서 봉지마다 싼 신발들을 하나씩 넣는 동안, 후련함이 먼저 왔다. 올해의 목표 중 하나로 마음속에 적어 둔 '잘 비우기'가 아주 작은 조각으로나마 실행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고 집으로 돌아와 여유가 생긴 신발장을 보니, 막상 완전히 가벼워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비워진 자리보다, 아직 비우지 못한 또 다른 무언가가 한구석에 남았다.


아쉬운 건 무엇이었을까. 그 신발들을 끝내 다 신지 못한 시간인지, 아니면 그걸 살 때의 욕심인지. 생각해 보니 둘은 쉽게 갈라지지 않았다.


그 신발들을 살 때의 나는, 그걸 신을 수 있는 상황을 함께 상상했다. 조금 더 자주 가꾼 나, 조금 더 새로운 장소에 있는 나, 어쩌면 조금 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나.


결국 버린 건 신발이었지만, 함께 놓아둔 건 그때의 가능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신지 않은 물건보다, 신을 수 있었을 거라 접어 두었던 시간 쪽이 더 무거웠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됐다.


깔끔하게 정리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미련이 어디에 남아 있는지를 아주 조금은 분명히 보게 된 것 같다. 물건이 아니라 시간에, 사용하지 않은 채로 접힌 가능성에.


물론 아직 다 비운 건 아니다. 신발장 말고도, 집안 어딘가에는 여전히 손대지 못한 것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걸 지금 당장 비워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이번의 비움은 아주 작은 한 조각의 실천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비우는 일은 늘 결심보다 늦게 온다. 그리고 미련은 늘 물건보다 늦게 따라온다. 나는 그 순서를 굳이 앞당기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시간을 조금 덜 쥐고 서 있는 쪽에 가까워졌다. 그 정도의 변화면, 충분히 제 몫을 한 셈이다.

목요일 연재
이전 26화색연필로 남겨 둔 시간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