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어 올라온 오후

언덕을 대신 올라 준 작은 버스

by 슬로하라


산책을 하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작은 차가 있다. 하루에도 서너 번은 본다. 같은 길을 천천히 돌고, 골목을 다시 지난다.


크지 않은 미니 버스다. 마주 보는 자리로 네댓 명, 많으면 여섯 명쯤 탄다. 이제는 제법 익숙한 풍경이다.


처음엔 그저 동네를 도는 택배 버스인가 싶었다. 알고 보니 전화를 하면 오는 차였다. 몸이 불편한 사람, 짐이 많은 사람, 언덕이나 가는 길이 부담스러운 사람을 태운다. 부르면 와서, 각각의 목적지 앞에 내려 준다. 요금은 따로 받지 않는다. 큰 버스처럼 빠르지 않다. 대신 천천히, 필요한 곳에 닿는다.


딱 한 번, 그 버스를 탄 적이 있다. 슬로베니아에 온 지 반 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다. 슬로베니아어 첫 수업에서 만난 같은 동네 친구 E가 이 버스를 알려 주었다. 둘 다 집이 언덕에 위치해 있고, 센터와 거리가 제법 되었다. 그녀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그렇게 그날 같이 올라탔다. 나는 그때까지 이런 방식의 이동을 몰랐다.


언덕은 가파르지는 않지만 경사가 있었고, 길은 아직 낯설었다. 그 작은 버스는 그 길을 내 다리 대신 올라 주었다. 그날 함께 탔던 어르신 두 분과, 생경했던 공기로 덮은 감정이 그 장면과 겹쳐 있다.


운전하던 분은 어르신이었다. 며칠 뒤 산책길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먼저 인사를 건네셨다. 몇 번 더 지나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은 이제 희미해졌지만, 그때의 설렘은 한쪽에 남아 있다. 그날 내가 잠시 이 도시에 기대어 왔던 기억과 함께.


이 작은 버스는 빠른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된 것 같지 않다. 정해진 노선이 있는 듯하면서도, 전화를 건 사람의 위치에 따라 길이 조금씩 달라진다. 나는 그날, 이 도시가 빠른 사람을 기준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산책길에서 다시 그 버스를 본다. 오늘도 언덕을 오르고 이내 다시 돌아 내려오고 있다.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덜 가파르게 만들면서.


이런 운행이 이곳만의 풍경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처음 그 버스에 올랐던 날, 나는 이 도시의 속도를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


누군가의 불편에서 출발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이 동네의 속도라는 걸, 그날 알았다. 그 속도에 나도 잠시 올라타 있었다.


작은 버스는 오늘도 천천히 돈다. 빠르지 않은 사람의 속도로.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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