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여 둔 이름의 기한
아파트 입구 밖에 우편함이 있다. 문을 열기 전에, 먼저 이름들을 마주한다. 각 우편함마다 성이 붙어 있다. BLATNIK, SIRNIK, TREBOVC.
그 옆에 나란히 붙은 숫자들은 F.1.3, F.0.4 같은 표식이다. 층과 호수를 안내하지만 앞에 서지는 않는다.
호수에 사람이 얹히는 게 아니라, 사람에게 호수가 따라붙는다. 그 차이는 작지만 선명하다.
우리 이름도 그 사이에 붙어 있다. 낯선 성들 사이에, 한글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곳 것도 아닌 영어로 적힌 두 이름.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성만 붙여 두었지만, 우리는 풀네임을 붙여 두었다. 이름과 성이 나란히 서 있다. 이 배열 안에서는 또 하나의 이름일 뿐이다. 다만 읽히는 방식은 다를지도 모른다.
가끔은 궁금해진다. 이웃들은 우리 이름을 어떻게 읽을까. 입안에서 한 번 굴려보다가 멈출까, 발음을 건너뛸까. 그저 지나칠까. 우편물을 꽂으러 오는 낯선 사람에게는 이 이름이 이곳에 머무르는 사람의 표식처럼 보일까, 아니면 잠시 스쳐 가는 이방인의 흔적일까.
이름을 붙이는 순간은 단단해 보이지만, 언제든 떼어질 수 있다. 언젠가 이 우편함에서 우리 이름을 떼는 날이 올 것이다. 그 자리에는 또 다른 성이 붙겠지. 배열은 그대로이고, 이름만 바뀐다.
입구를 지날 때마다 잠시 그 줄을 훑는다. 전단지를 꺼내기 전에, 우리 이름이 여전히 그 자리에 붙어 있는지 본다.
이름을 붙인 채 머무는 시간은 길지 않다. 떼어질 때를 알면서도, 우리는 그 사이를 붙여 둔다. 지금은 다만, 이 건물 어딘가에 우리의 이름이 한 줄 놓여 있다.
번호는 공간을 나누고, 이름은 그 위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