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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koya Jul 13. 2022

아무래도 싫은 사람

20대 때는 잘 몰랐던 마스다 미리의 솔직함

20대 초반에 마스다 미리의 작품들을 참 좋아했다. 만화 속 수짱의 일상은 참 편안하고 담백했다. 섬세하고 조용하면서도 내면의 단단함이 느껴지는 캐릭터였고, 공감이 가는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한참을 잊고 살다가 최근 회사도, 인간관계도, 그 무엇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시기가 나에게 찾아왔고, 자연스럽게 마스다 미리의 작품들을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20대 초반의 내가 읽어 내지 못했던 부분들이 보이면서 모든 장면, 모든 대사가 전부 새롭게 읽히는 경험을 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아무래도 싫은 사람'에 손이 갔다. 책을 펴자마자 보이는 수짱의 첫마디는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였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자체가 너무나 소모적이고 나에게 부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일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최대한 좋아하려고 노력해왔다. 종종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 못할까' 라며 나를 책망하기도 했었는데, 사실 수짱의 말대로 정말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할  없는 사람은 있다. 이걸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자체가 그동안 나에겐 힘든 일이었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상대하는 것도 불쾌한 사람. 사람이 싫어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와 상황들이 있지만, 절반 정도는 누가 봐도 이상한 사람이어서 싫은 경우, 나머지 절반은 나와 성향이나 생각이  맞지 않아서 부딪히는 경우인  같다. 오히려 누가 봐도 이상한 사람은 마음이 편하다. 나만 싫어하는  아니니까. 문제는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의 경우이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이는데, 유독 나랑은 사소한 것 하나부터 안 맞고, 무슨 말을 해도 다 내 귀에 거슬리고 불편하다. 이런 건 내 개인의 성향 문제라 누군가에게는 매우 사소하고 별거 아닌 일이기 때문에 하소연하기도 애매하다. 특히 내 주변에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갈 때면 '아, 이거 진짜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더욱 괴로워진다. 피상적인 관계가 많다 보니 그런 사람들에게 일일이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불편한 기색도 못하고 집에 돌아와 애꿎은 이불만 발로 차기 일쑤다.


여기서 또 난감한 문제가 발생한다. 피상적인 관계라면 '네 인생 열심히 살아라. 난 내 인생을 산다'라고 외치며 앞으로 안 보고 살면 그만이고, 회사 사람이 괴롭히면 팀을 옮기거나 회사를 옮기면 그만이다.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가족들이 싫어지는 상황은 그야말로 내 앞으로의 인생이 깜깜한 지옥불로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최근에 한국에 다녀올 일이 생겨 큰 맘을 먹고 3주간 휴가를 내고 좋은 마음으로 가족들을 만났다. 아니나 다를까 친척들은 '미국에서 얼마나 잘됐나 한번 보자'라는 식의 질문들을 던졌고, '네가 잘돼 봐야 우리 아들보다 못하지'라는 적나라한 험담들을 오롯이 받아내야 했다. 몇 년간 낯선 곳에서 힘들게 버티다 온 나에게 '힘들었지'하며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는 걸 기대한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걸까. 다행히도 나의 유일한 편인 부모님과 언니 부부가 열심히 위로해줬지만 한국식 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픈 친척 관계는 정말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싫다.


겨우 친척 지옥에서 탈출했더니 곧 시댁 지옥이 열렸다. 시부모님들은 힘든 미국 생활을 이겨낸 아들을 치켜세우고 칭찬하느라 바쁘셨다. 나는 잘난 아들을 따라가 운 좋게 옆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남편 잘 만난 여자에 불과했다. 애초에 결혼을 준비할 때부터 시가와의 사이가 썩 좋지 않았지만 이렇게 몇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시부모님의 아들 사랑에 정신이 아찔했다. 시가를 이해하려고 온갖 글을 찾아 읽고, 마음을 수련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뿐이었다.


한국에서의 하드코어 인간관계 트레이닝이 끝나고 미국에 돌아오자마자 가슴 깊이 해방감이 느껴졌다. 이유가 어찌됐건 내가 괴롭고 힘들다면 그런 관계에서 빨리 벗어나는 게 참 중요하다. 나를 지키고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을 단호하게 끊어내야하고, 도망치는 기분이 들더라도 그게 내 마음이 편하다면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싫어하는 사람을 억지로 노력해서 좋아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그게 설령 가족일지라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적정 거리를 찾아나가는 것이 내가 현재까지 찾은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럼에도 계속 생각이 나서 괴로울 때는 마음 한 구석에 아무 제한 없이 사람을 미워할 수 있는 정신과 시간의 방을 하나 만들어두고, 집중해서 미워한 다음 미련 없이 빠져나오곤 한다.


아무래도 싫은 사람은 많다. 나를 지키는 선에서 실컷 싫어하고 행복해지자.


(마흔 살의 내가 이 글을 다시 보게 된다면 철없다고 생각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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