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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비안 Dec 08. 2016

[공연 후기] MOC Production의 사계

For Violins : 네 명의 바이올리니스트를 위한 콘서트

2016. 12. 03. (토) 오후 7시 | LG 아트센터
프로그램
G. P. Telemann : Concerto for 4 Violins in D Major, TWV. 40:202
C. de Beriot : Duo Concertante for 2 Violins in g minor, No. 1, Op. 57
S. Prokofiev : Sonata for 2 Violins in C Major, Op. 56
A. Piazzolla : Las Cuatro Estaciones Portenyas

MOC Production의 2016년 마지막 기획 연주이자, 세계 어느 뮤직 페스티벌에서도 어느 무대에서도 보기 힘든 야심차게 준비한 네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콘서트, For Violin!

오늘 연주를 들으면서 이 자리에 함께한 것이, 괜히 특별한 존재가 된 것만 같은 그런 감정이 들었다.

노부스 콰르텟의 두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 김영욱, 피아노 트리오 제이드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프랑스 국립 페이 드 라 루아르 오케스트라의 악장 박지윤, 그리고 솔리스트로서 전국과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하는 김다미, 이 네 명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모여서 한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본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이벤트가 아닐 수 없었다. 

동시에 마지막 기획 연주였기에, 온라인 서포터즈 MOC.A 모카의 활동이 오늘로 마무리 되었다.


정말 긴 하루라고 느껴졌는데, 아침에는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의 계단에서 검은 리본을 달고 악기와 목소리로 함께 한 수백명의 한사람으로서 북을 치다 왔고, 오후엔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고 중간에 빠져나와서 엘지아트센터에 도착한 시각은 정확히 연주 10분 전이었다. 악기와 옷가지를 맡겨두고 숨을 돌릴 만큼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에 여기까지 온 하루가 굉장히 뿌듯했다.


그렇게 숨을 고르고, 네 명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무대 위에 나타나길 기다렸다.


G. P. Telemann : Concerto for 4 Violins in D Major, TWV. 40:202 (김재영, 박지윤, 김영욱, 김다미)

C. de Beriot : Duo Concertante for 2 Violins in g minor, No. 1, Op. 57 (박지윤, 김재영)
S. Prokofiev : Sonata for 2 Violins in C Major, Op. 56 (김다미, 김영욱)

첫 곡은 독일에서, 그리고 고전음악의 태생이라고 할 수 있는 바로크 시대로부터 찾아온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네 대의 보면대 앞에 하나씩 선 네 명의 바이올리니스트의 호흡과 함께, 시작한 음악이 산뜻하게 울려 퍼졌다.

네 개의 악장으로 된 이 곡은 왠지 악보를 보면 정확히 4등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해변가에서 파티를 하는 장면이 생각났다고 하면 조금 웃기긴 하겠지만, 어디선가 시작한 파도는 한 방향으로 몰아쳤다가 다시 반대쪽으로 돌아가고, 네 명이 눈짓을 주고 받으며 즐겁게 서로가 남기고 간 선율을 받았다, 주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점 하나를 느꼈는데, 제일 왼쪽의 김재영으로부터 박지윤, 김영욱, 김다미 이 순서대로 음색을 자세히 들어보니까 명암과 채도의 스펙트럼이 밝고 가벼운데서 무겁고 두터운 쪽으로 배치를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넷의 연주가 끝나고, 다음 곡을 들려주려 나온 박지윤과 김재영은 관객을 이번엔 벨기에로, 그리고 100년뒤로 데려갔다. 두 바이올리니스트가 들려주는 곡은 이상하게, 브람스와 베토벤을 닮았다. 박지윤 선생님이 브람스를, 그리고 김재영 선생님이 베토벤을 그렇게 좋아한다는 사실을 선입견으로 알고 있어서 그런가? 브람스처럼 고독하게 아름답지는 않고, 베토벤처럼 강렬하진 않은 드 베리오의 곡이었지만, 둘의 음색을 자랑하기엔 부족함이 없는 곡이었다.

그 다음은 20세기로, 김다미와 김영욱이 들려주는 향수 짙은 프로코피에프의 이야기. 프로그램을 참고하면 두 대의 바이올린이 논쟁을 하는 듯한 실내악곡이라는 말이 첫 문장에 쓰여있다. 그래서 그렇게 느꼈나 모르겠지만, 두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하는 자세를 보고 있자니 카페에서 많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는 지식인 두명의 모습이 떠올랐다. 또 큰 무대에 단지 둘만 나와 서로 기싸움을 하는 2인극 '추적'이라는 연극과 영화가 생각나기도. 

김다미의 연주를 사실 제대로 들은적이 오늘 이 자리가 처음이었다. 정말 많은 콩쿠르의 입상 및 우승기록을 가지고 세계 무대에서 활동을 하다 작년에는 루체른 페스티벌의 리사이틀 스테이지에서 풀 콘서트까지, 국내 바이올린 솔리스트로서는 전무후무한 기량과 기록을 뿜어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이유를 내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A. Piazzolla : Las Cuatro Estaciones Portenyas

여름: 박지윤 - 가을: 김재영 - 겨울: 김다미 - 봄: 김영욱

with String Ensemble (Concertmaster 양지인, Viola 이기헌, 이항석, Cello 이호찬, 이세인, Doublebass 배기태)

네 명의 앙상블로부터 둘씩 짝지은 무섭고도 흥미로웠던 기싸움에 이어 남은 무대는 각자의 색을, 특히 계절로 마음껏 뽐낼 수 있는 비발디의 사계가 아니라 피아졸라의 사계. 네명의 바이올리니스트는 악장과 함께 솔리스트 한명에 바이올린 투티 넷으로, 한 계절씩 차례차례 솔리와 투티를 보여주며 한 해를 보여준다.

먼저 현악 앙상블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은데, 이 곡을 하기 위해 최소의 인원을 모은 것 같았고, 악장과 솔리스트의 리딩 아래 훌륭한 합을 보였다. 특히 더블베이스가 보통 곡에서 저음과 리듬을 담당하긴 하지만, 피아졸라는 베이스의 몸통을 손으로 때리거나 활로 현을 내리쳐서 현과 지판이 부딪히는 소리를 내는 기법도 쓰게 하였는데 이런 부분을 솔리스트가 신나게 뛰어놀 수 있도록 멋진 리듬을 만든 배기태 베이시스트가 눈에 계속 보였다. 그렇게 리듬을 튕기는 자리 옆에 역할을 나누어 중저음의 멋진 멜로디를 솔리스트와 나누는 이호찬, 그리고 리듬에 음을 입히는 이세인 두 첼리스트의 소리가 계속 귀에 맴돌았다.

사계 하면 보통 봄부터 시작하는 구성을 떠올리는데 피아졸라는 여름을 첫 순서로 정해서 곡을 썼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했을땐 박지윤선생님이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악장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작을 담당하게 된게 아닌가 싶었다. 가을남자라는 김재영 선생님은 오랜만에 콰르텟에서 뛰어나와 카덴차 풍의 솔로를 멋지게, 그리고 가을처럼 고독하게 들려줬다. 

문제는 바로 이 뒤인데... 첼리스트 이호찬의 겨울을 여는 첫 솔로 멜로디에 많은 사람들이 심장을 부여잡았을 것 같았다. 낮은 음으로 포근하게 눈을 깔아놓은 자리에 바이올린 역시 낮지만 바이올린에서 날거라고 생각하기는 힘든 두터운 음색으로 카덴차와 첼리스트와의 이중주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어진 빠른 부분에선 경악하고 말았는데...... 의상도 그렇고 동화속의 눈의 여왕인가, 하얗고 차갑고, 무섭게 빠르면서 날카로운 음악이 들려왔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리허설 영상 일부가 올라오며 신나서 달릴지도 모르니 잡아달라던 사람이 네 명 중 김다미였구나. 관객 입장에서 괜히 더 달려서 제대로된 눈보라를 맞아보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새해가 되어 김영욱의 . 정말이지 김영욱은 속주에 맞는 활을 잘 쓰고 날카로운 음을 잘 낸다. 그리고 머리 속에 본인이 원하는 음의 질서를 다 그려놓는것 같다. 그 다음엔 그걸 손으로, 활과 악기로 그 질서를 다시 무너뜨리면서 듣는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연주를 잘 한다. 이런 봄이라면 새싹들이 그냥 땅을 찢고 나와서 생기가 넘치다 못해 너무나도 생생하고 활기 넘친 모습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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