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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화 이경희 Oct 30. 2021

사과나무 사이로

십 년 만의 가족여행

사과나무 사이로

진화 이경희

가을이 깊어지는 10월 하순에 구순의 어머니와 사 남매가 여행을 떠났다. 어머니 팔순 때 고향을 찾아 아버지의 옛집과 산소를 돌아본 지 꼭 10년 만의 일이다.

그 사이 해외에 살던 동생들이 들어오고 현재도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는 셋째 동생이 합류를 했다.

10년 전에는 40명의 사촌 이내 집안 식구들과 어머니의 팔순 잔치를 마친 후 비어있는 고향집에 들렀다가 성묘를 하고 소백산예술촌에 가서 온 가족 별밤 캠핑을 했다.

폐교로 예술촌을 만들어 그 지역 문화예술 계승발전을 위해 애쓰는 촌장님이 밤중에 들이닥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 밤에 마당에서 석쇠에 고기와 생선을 구워 먹고 교실마다 가득한 전시물을 둘러보았다. 식사 시간에는 학교 종을 치고 운동장에서 사진을 찍고 놀며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갔다.

산촌에서는 해가 일찍 지고 캄캄해서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학교 뒤편에 교직원 숙소로 썼던 별채에 묵으며 단잠에 빠졌다.

다음 날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주변이 온통 사과나무였다.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 사과밭 안에 숙소가 있었다.

날이 밝자 촌장님이 그 일대의 유적지인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안내해 주었다. 팔순의 어머니와 함께 수학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10년이 지난 후 고향을 찾은 이번 가족여행은 아버지의 묘를 개장해서 호국원으로 모시기 위한 여정이었다.

고향 인근의 펜션 두 동을 빌려서 어머니와 세 동생, 조카가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새벽에 아버지 산소에 올라가기로 했다.

도시의 불빛이 없는 시골의 밤은 여전히 캄캄했고 노모와 중장년을 넘어선 사 남매와 20대의 청년인 조카까지 밤 9시 남짓하여 꿈도 없이 곤한 잠이 들었다.

지난밤 깜깜한 하늘 사이로 붉은 불을 켰던 열매들을 보려고 이른 아침 맑은 뒷문을 열었더니 이번 숙소도 사과밭 앞이고 가지가 휘늘어질 정도로 많은 사과가 빨갛게 영글어가는 중이었다.

선산의 가장 높고 가파른 곳에 22년 동안 홀로 누워 계시던 아버지의 산소가 열리고 유해를 수습하여 화장을 하는 모든 과정에 아버지를 현충원에 모신 경험이 있는 사촌과 마을의 먼 친척들이 한 몸 같이 도움을 주었다.

며칠 전부터 집안의 큰일을 준비하며 며칠간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긴장을 했었지만 아버지께 이장의 연유를 말씀드리고 기도를 마친 후 작업을 시작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순조롭게 진행된 과정과 춥지도 덥지도 않은 좋은 날씨가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우리가 산에 머무는 동안 아랫마을 옛집에 남아계시던 어머니는 이웃의 친척 아주머니와 만나 떡을 나눠드리고 아버지를 호국원에 모시기로 했다는 설명을 하셨다.

씨족마을에서 항렬이 높은 부모님은 항상 일가친척들의 존중과 환영을 받았지만 그 사이 조카뻘의 먼 친척 어른들이 거의 70~80대가 되고 보니 60대조차 없는 마을은 적막하기 그지없다.

오전 중에 개장 작업을 마치고 작은 관에 수습된 아버지의 가벼운 유해는 막내아들의 등에 업혀 산에서 내려왔고 선대의 납골묘와 아버지의 공덕비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섰다.

산에서 아버지의 옛집으로 내려오는 길 양 옆으로 논밭이 펼쳐지고 집 앞에 이르는 도랑가에는 까치밥이 매달린 감나무와 수확을 마친 사과나무가 도열을 했다. 아버지를 업은 동생 옆에는 할아버지와 아빠를 꼭 빼닮은 조카가 보폭을 맞추어 걸어 내려왔다.

사과나무가 자라는 마을의 개천을 넘나들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유난히 고향을 사랑하셨던 아버지는 사 남매와 일곱 명의 손자 손녀, 네 명의 증손들 안에 지금도 살아계신다.

화장장에 들러 따뜻한 유골함을 받아 든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며 생전보다 가까이 지내자고 미소를 보내셨다.

며칠 후에 90세 생신을 맞는 어머니와 69세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여전히 잘 어울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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