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삶에 대한 질문을 해보려고 한다.
처음 돈이라는 존재에 대해 객관적으로 마주한 것은 2019년이었다.
그전까지는 돈에 대해 막연하게 필요한 것이고, 욕심을 부려야 할 것으로만 생각했고, 돈이 많은 것이 최고라 생각하고 소원을 빌 수 있는 곳에서 항상 "로또 1등!"을 외치던 사람이었다.
어쩌다 돈에 대해 마주 했을 때, 힘든 하루하루로 부터의 자유를 갈망하던 나의 길은 크게 2개로 갈렸다. 하나의 길은 부자가 되도록 노력을 하는 것이고 또 다른 길은 최대한 자급자족을 하며 돈을 아껴쓰는 것이었다. 쳇바퀴 같은 내 삶 속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많이 가지거나 자급 자족을 하면서 적게 소비하는 것, 이렇게 두 개의 길이 보였다. 처음에는 부자를 갈망 했지만,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위험과 댓가를 감수해야 했는데, 솔직히 인생에서 도전을 해본 적이 없고 내 소프트웨어가 사업에 맞추어져 있지 않았기에, 하루아침에 변화하기 힘들고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자급자족의 길을 선택하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결국에는 둘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본주의'라는 존재에 대해 사회주의의 반대인지 알았고, 자세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우리의 생활이 백 년 만에 급속도로 변하였고, 그 변화가 정말 가능했던 것인지, 어떻게 가능했던 것 인지에 대해 무관심한 채, 원래 있던 전기, 수도, 전화, 인터넷 같은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사람이 공기 중의 진동을 알아채고
휴대전화를 만들었다고??
아무리 발명가가 천재라고 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모르는 것투성이인 곳에서, 주어진 것들에 익숙해진 채,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며 의심조차 해보지 않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당연한 것들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고, 익숙한 것들이 부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온 윈스턴처럼, 내가 겪었던 우울증 속에는 이 사회에 대한 불안감 또한 한몫을 했다.
어떻게 사람들은 이 비정상적인 사회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지?
미디어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불안감을 심어주며 서로 싸움을 조장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는데, 그것을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남의 말을 듣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한쪽에서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팔면서 남을 설득하는 기술을 말하고 한 쪽에서는 설득을 당하는 사람을 가스라이팅을 당한다고 범죄를 저지른 것 마냥 죄인 취급을 한다. 물론 자식에게 화를 내며 자신의 뜻대로만 하려는 부모는 나쁘지만, 세상의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전달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의 생각은 다르기에 본인과 다른 의견들이 존재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나의 의견만이 정답이라도 되는 양, 자신의 박스 안에서 색안경을 낀 채, 다른 사람을 무시, 평가, 참견, 충돌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왜 사는가?
살아야만 하는가?
큰 틀의 세상으로 봤을 때는 내가 오늘 죽든 말든 상관이 없다. 개미 한 마리를 우습게 밟아 죽이 듯이 우리의 목숨 또한 개미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목숨이 대단하다는 듯 세상의 중심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지구의 모든 생물이 먹고 자라고 번식하고 죽는데, 왜 인간만이 이성이 있어서 복잡한 것을 고민하고 걱정하고 여러 도구를 써서 다양하게 생활을 하는가? 복잡한 인간의 삶은 축복인 것인가? 저주인 것인가? 어제는 이 모든 것이 축복인 것 같다가 오늘은 이 모든 것이 저주인 것 같았다.
정신 줄을 조금만 놓으면 정상인과 비 정상인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위태로운 시간들이 나를 스쳐갔다.
책을 보면 이 증세가 파도처럼 울렁거렸다. 시중에 나오는 자기 개발 책들은 자본주의를 옹호한다. 돈에 대해 생각을 하고 꿈을 꾸라고 말을 한다. 내가 살았던 인생들이 모두 잘 못 된 것처럼 모든 생각을 고쳐먹고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알려준다. 철학이나 종교에 대한 책을 보면 삶에 대한 무념, 무상들이 부자가 돼야겠다는 내 욕망에 찬물을 끼얹고 내가 그렸던 모든 그림에 물을 뿌리고 가버린다. 마치 모래사장에서 모래로 된 성을 쌓고 있으면 파도가 지우고 가듯이 허무한 시간들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1~2년을 방황하고 난 후 삶이 가벼워지고 나라는 존재가 중요하지 않게 되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어차피 사라질 존재이며, 그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아도 되고 남들보다 더 나아지지 않아도 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며 살아 있는 동안 행복을 느끼며, 죽음의 축복을 기다리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자꾸 다가온다.
부자가 되려고 치열하게 살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연인 같은 홈리스로 살아갈 것도 아니기에, 적당히 살아가면 좋으련만 이 적당히를 모르겠다.
캐나다에 오기 전에는 귀농을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이 비정상적인 세계가 무너진다면, 자급자족뿐이 살 길이었기에 시골에 가서 자급자족을 하며 1차 산업시대처럼 살고 싶었다. 실제로 우리의 삶의 1차적인 재료는 자연에서 오는 것들이다. 책장은 나무로 만들어졌고, 핸드폰의 플라스틱은 석유로 만들어지고, 나머지 부품은 광물로 만들어졌다. 유리는 모래로 만들어졌고, 옷 또한 동물의 털 혹은 목화솜, 폴리에스테르 천은 석유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종종 모든 것은 자연에서 온 다는 것을 망각한 채, 공장에서 만들어진다고 착각하고 살아간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이것들이 모든 것의 시작점이다. (달은 모르겠다.)
그러다 '눈먼 자의 도시'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이 사회가 무너진다면 굳이 살아남으려고 애쓰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는 참 팔랑귀다.
어쨌든 나는 태어났으니 살아야 한다. 이왕이면 재미나게 살아야 하는데,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재미있게 살기 어렵다. 아니 애초에 재미있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옛날에는 돈이 있으면 재미있는 삶이 될지 알았는데, 비싼 음식을 먹는다고 더 행복한 것도 없고 호텔에서 숙박을 해도 재미있지 않고 집이 더 편하다. 오마카세, 호캉스도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신기루 일뿐이다. (우리 남편은 나에게 우리가 가진 돈이 많지 않아서 이런 생각을 한다고 했다.)
진정한 부모라면 자식이 힘들게 일해서 번 돈으로 비싼 음식을 먹고 백화점에서 옷을 사는 것을 행복이라고 느낄 사람이 있을까? 남편이 출근하기 싫은 회사에 가서 고생을 하며 욕을 먹고 번 돈으로 비싼 가방을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그것을 행복이라고 세뇌 당했기에 비싼 옷을 먹고 백화점에서 옷을 사고 비싼 가방을 샀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비정상적인 행동을 행복이라고 칭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행복한 시간을 지낸 후에는 무엇인가 모를 공허감이 올라왔었다.
혹시, 내가 정말 비정상이라 그런 이질감을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세상이 비정상이고 내가 정상일까?
그럼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아마 이 행복이라는 단어 또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허상이 아닐까? 그래서 행복을 좇으면 쫓을수록 불행해진다는 말이 떠도는 것 같다. 세상에 없는 것을 있다고 생각하게 하고, 평생 쫓게 하는 것처럼 힘이 빠지는 일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물건을 사도 사도 행복함을 못 느끼고 먹어도 먹어도 행복함을 못 느낀다. 남에게 자랑을 하면 잠깐의 우월감과 함께 미묘한 허무감과 시기, 질투, 미움이 따라온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좇고 있기에 현실을 살지 못하고 불행해지는 것 아닐까?
정작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간 주제에, 영원을 살 것처럼 생각을 하고 오늘을 내일을 위해 희생하고 투자한다.
가끔씩, 내가 하는 말이 가난을 정당화하는 자의 변명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그러기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쉽지 않다. 모두가 살아온 인생이 다르기에 답이 없는 것을 답이 있다고 본인 것이 정답이라고 우기면서 살아가기에, 다른 사람과의 사이도 쉽지 않다.
두 번째 인생의 갈림길에 놓인 지금... 다시 한번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의 고민에 놓였다.
솔직히 자본주의가 조금 약한 캐나다에 온 것은 정말 잘 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돈을 많이 벌 수도 있고, 조금 느리고 여유 있게 살 수도 있다. 감사하게도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는데, 어떤 선택이 나에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행인 것은 자본주의의 허상을 따라가지는 않을 것 같다.
세상에 무엇이 맞는 것인지, 아니 맞는 것이 있기나 한 건지 왜 맞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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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내가 비정상인 것인지, 정상인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