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똘맘 Jun 07. 2022

왜 한국을 떠나려 하는가?

한국을 떠나서 다른 나라의 영주권을 받고 산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2년 전, 육아휴직을 쓸 때에는 내 시간을 조금 가져보며 어린 시절 정립하지 못했던,
내가 좋아하는 것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고 싶었다.  
 
1년 전, 식당을 차릴 때에는 독서를 하며 어렴풋이 그려지는 돈의 흐름을 현실화해보기 위해서 진짜 사회를 경험해 보고 싶어서 또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겁도 없이 파도의 흐름 속으로 발만 담갔다.

그렇게 전과 다른 인생을 여행하던 중,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나를 혼란 속으로 인도했다.

식당을 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 물귀신이 되는 것처럼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익숙했던 주말 휴일을 던져버리고 주말에는 더 열심히 일해야 했고,
퇴근 시간만 되면 모든 생각을 벗어 버리고 퇴근했던 회사 생활과는 달리 퇴근이 없는 자영업자의 삶,
내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 시작한 자영업이었는데, 회사 생활할 때보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는 것이 힘들었다.

Photo by Mindspace Studio on Unsplash


내가 생각했던 삶과는 너무 다른데?


정말 다행인 것은 내 인생 40살이 되기 전에 이 깨달음들이 끝났다는 것이다.

평생 회사원을 할 것처럼 돈을 펑펑 쓰며 꼴에 맞벌이라고 아이들이 가기 싫어하는 학원들 풀로 보내고 모든 일에 "맞벌이라, 어쩔 수 없어!"라는 꼬리표를 달고 수동적으로 살다가 50살까지 회사에서 버티다 퇴직 당한 후, 혹은 운이 좋아서 60살까지 버티다 정년퇴직한 후 부푼 꿈으로 퇴직금을 모조리 땡겨서 식당을 차린 후 몸 고생 마음고생을 했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그럼 현재로 돌아와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의문으로 돌아갔다.

회사에서 나올 때 했던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회사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던 말처럼 회사로 돌아갈까?

그때, 떠오르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내가 여기에서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워킹맘이라는 타이틀을 다시 달고 아이를 방치한다면 아이들은 나처럼 자랄 수밖에 없다.
아이를 방치하지 말고 키우라는 말은 워킹맘에게 팥으로 메주를 담그라는 소리를 하는 것과 같다.
즉,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한국에 공교육에 대한 신뢰는 수많은 책 덕분에 최하로 떨어졌다.
선생님들이 잘 못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선생님들이지만 한국 공교육은 효율적인 노동자를 만드는 교육일 뿐 그들의 꿈과 희망, 나아가야 하는 길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노동자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자신의 꿈을 가진 적극적인 노동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왜 하는지 모르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소극적인 노동자로 키우고 싶지는 않다.  
도덕 책은 도덕을 말하지만 현실은 도덕 책이 아닌 정글이다. 교과서에는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이 아닌 정글에서 먹잇감이 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나는 내 아이에게 도덕 책이 아닌 심리학 책을 보여주고 함께 정글에서 사냥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은 이상한 엄마다.

한국의 교육과정을 겪은 후 낙동강 오리알이 된 나로서는, 아이에게 그리고 나에게 다른 세계의 경험을 주고 싶었기에 한국을 떠나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결정은 나에게 두 가지 의미로  다가왔다.

첫째, 나는 한국에서 도망치는가? 처음 만나는 무거운 책임감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또다시 반복되는 회사 생활을 하고 싶지가 않아서,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회피하고 싶어서 한국에서 도망치는 것인가?  
둘째, 나는 한국을 자발적으로 떠나는 것인가? 내 꿈과 미래를 향해 떠나는 것인가? 그렇다면 내 꿈은 무엇인가? 내 미래의 계획은 무엇인가?

Photo by dylan nolte on Unsplash

두 가지는 상반되기도 하고 동일하기도 하다. 도망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자발적으로 떠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 한국에서 잘 살아보지 왜 굳이 힘든 결정을 하면서 외국으로 떠나려고 하는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고 몇 가지 대답을 스스로 해 보았다.


Photo by Felix Mittermeier on Unsplash

첫째로 한국은 경쟁이 심하다.

여러 책을 읽어보고 내린 결론은 성공? 을 하려면 경쟁이 아닌 협동이 필요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한국은 어린 시절부터 아주 사소한 것도 경쟁을 가르친다. 대표적으로 형제자매간의 관계에서도 밥을 먹을 때 누가 많이 먹는지, 누가 양치질을 잘하는지에 대해 경쟁만 시킨다. 그러니 많은 형제자매들 사이는 좋지 않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면서 이 경쟁에 대해 피부로 와닿았다. 아이들은 자신 부모의 차와 친구 부모의 차를 비교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의 부모 모임에는 자기 아이가 다니는 학원의 개수와 비용을 말하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이런 사소한 경쟁이 질투의 시발점이고 그 질투가 미움으로 변하고 서로 간의 단절로 변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이런 불필요한 경쟁에 내 아이를 노출하고 싶지 않았다.

Photo by Toa Heftiba on Unsplash


둘째로 한국 사람들은 도움을 바라지도, 어떻게 상대방에게 고마워하는 지도 모른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처음 시키는 일이 감사 일기를 쓰라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가?
세상에 감사할 일 투성이인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감사한 사람에게 색안경을 끼고 보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왜 저 사람이 나에게 잘 해 주지? 저 사람의 의도는 무엇이지?"라고 생각하게 하여 인간관계를 단절 시키고 더 나아가 급격하게 개인주의가 되어버려 기브엔 테이크 관계도 유지하기 싫어 안 주고 안 받는 관계로 돌입했다. 이게 편한 관계라고 생각하여 데이트도 안 하고 부모님과 친구들과 회사 동료와 모두 단절이 된 사회에서 어떻게 발전이 있겠는가?
 자연으로 따지면 꽃이 벌에게 꿀을 주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꽃이 벌에게 꿀을 주지 않으면 꽃은 수분이 되지 않아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말라죽을 것이다. 인간은 서로 고마워하고 나누어주며 소통해야 한다.

Photo by Daniel Lloyd Blunk-Fernández on Unsplash


셋째로 바쁘게 생각 없이 남들과 똑같게 살아야 하는 한국 사회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바쁜 게 미덕이다. 뭐든 빨리빨리 해야 한다. 밥 먹는 것도 빨리빨리, 준비도 빨리빨리… 미덕이라고 생각되는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는 개인의 생각을 앗아간다.
식사 시간에 맛을 음미할 시간도 없이 빨리 먹어 치워야 하고, 왜 학교를 가야 하는지 생각할 시간도 없이 빨리 가야 한다. 내 미래의 진로도 빨리 정해야 하고 모든 것을 생각 없이 빨리해야 한다.
무엇인가 질문을 하는 순간 그 질문은 말대꾸가 되어버리고 싹수없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다.
어떤 일을 빨리하려면 다른 이가 만들어 온 길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그 덕분에 한국인은 생각하는 능력을 잃은 지가 오래되었다. 진정한 삶의 의미, 진정한 나의 미래가 아닌 인터넷에서 알려준 정보, 부모님과 선생님이 말하는 미래를 위해 오늘도 빨리빨리 움직여야 한다.
특히 생각 없이 사는 것에 일침을 놓은 동영상을 보고 더욱 외국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6lWUpL2QRU


평창올림픽에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 보고 질문하라는 물음에 한국 기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권의 탓인가? 한국의 문화가 질문에 익숙해져 있지 않아서 인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눈치인가?  모자란 영어 탓인가?
내가 저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영어로라도 "한국에서 먹은 음식 중 제일 좋았던 것은 어떤 것인가요?"라고 실 없는 질문이라도 해봤을 텐데~ 만약 그랬다면 다음날 신문 1면은 '오바마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떡볶이!' 이런 글이 나왔을 지도 모른다.

Photo by Lyle Hastie on Unsplash


마지막으로 술과 미디어와 멀어지고 싶었다.

술에 대해 이렇게 관대한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한국은 술에 대해 이해심이 깊다.
음주 후 죄를 저지르면 참작이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 이외에 또 있을까?
호주 어학연수 시절에 본 호주의 술 문화는 한국과는 많이 달랐다. 술은 술을 살 수 있는 한정된 상점에서만 살 수 있었으며 시간제한이 있었다. 대부분의 술집은 밤에 문을 닫았고 오직 성황인 곳은 한국 술집밖에 없다. 지붕이 없는 곳에서 술병이 보이게 술을 마셔서는 안되며 홈리스의 경우에도 예외는 없었다.
이런 나라에서 술을 안 마신 다는 것은 자제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참기 힘든 일이다.
내 하루 시간 중에서 술 빼고 많이 차지하는 것은 핸드폰이었다. 집에 텔레비전이 있었다면 내 여유 시간을 채널 돌리기로 시간을 보냈겠지만 다행히 텔레비전이 없는 관계로 하루 종일 핸드폰이 가까이 있었다. 회사를 퇴사하면서 핸드폰을 없애고 싶기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핸드폰이라는 것이 나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했다. 외국에 가면 인터넷도 느리고 안 터지고 비용도 비싸니깐 핸드폰 사용이 줄지 않을까?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핸드폰과 술을 없애면 그 시간을 진짜 삶으로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어 외국행을 택했다.


 혹자는 나에게 어디를 가든지 자기만 잘하면 되는데 외국까지 가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쟁하고 도움을 주거나 받지 않고 남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공격받고 술과 핸드폰만을 집중적으로 하는 사회에서 나 혼자 반대로 살려고 한다면 과연 가능할까?라는 대답을 하고 싶다.

Photo by Tamara Menzi on Unsplash

이 큰 결정에 영향을 준 것은 힘들 때 즐겨 읽던 철학 책의 한 귀퉁이에 있는 구절 덕분이었다.

   Memento Mori 당신도 죽을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메멘토 모리, 우리는 백 살까지 밖에 살지 못하는 한낱 인간에 불과한데, 왜 백 년 만년 살아가는 인간인 것처럼 모든 것을 지키려 하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할까?
이 한 단어로, 나의 인생 여정이 앞으로 계속 모험이 펼쳐질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인지 아니면 행운의 생각인지 모르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비 포장도로를 달리겠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