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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똘맘 Jun 09. 2022

이민의 첫걸음, 박람회

지인들에게 이민을 간다고 이야기하면 백이면 백, 모두 질문하는 것이 있었다. 

" 외국에 누가 있어??" 
비빌 언덕, 즉 형제자매가 외국에 사느냐는 질문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부부는 주위에는 이민 간 사람도 없고 외국에 사는 가까운 친척도 하나 없다. 전형적으로 변화가 없는 우물에 갇힌 흙수저다. 

처음에 이민을 결정한 후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 모든 것이 막막했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대책 없는 결정이었다.  

다행히 자본주의 시대에 덕분에 돈을 지불하면 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대책 없이 시작 한 우리 이민 여정의 첫걸음은 유학, 이민 박람회였다.


우리 부부는 박람회와 인연이 깊다. 결혼도 결혼 박람회를 방문하고 가계약 10만 원을 낸 후 갑자기 진행되었고, 출산도 출산 박람회를 다녀온 후 결심을 했다. 창업 또한 창업 박람회, 커피 박람회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박람회를 조심해야 되는 커플이다. 

그렇게 입장한 해외 유학, 이민 박람회는 처음 접하는 신기한 정보들로 가득했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조금 나누자면,  이민을 하는 방법은  크게 투자이민, 취업이민, 유학 이민 3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로 투자이민이란, 
말 그래도 원화를 외국에 투자하면 해당 국가에서 영주권 혹은 시민권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투자이민에는 부동산을 투자하는 방법도 있고 법인을 설립하거나 작은 사업을 하는 방법도 있다. 
식당 창업 또한 투자이민의 한 가지 방법이다. 
나라별로 이민할 수 있는 금액이 다르며 혜택 또한 다르다.
투자이민을 왜 가는지에 대해 궁금해서 깊게 설명을 들으니 나라마다 세법이 달라 한국에 있는 재산을 양도세 납부 없이 자식에게 주려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물론 수수료가 몇천만 원이 들지만 이를 제하고도 이득이 많은 사람들은 생각해 볼만 하다. 투자이민으로 해외의 부동산만 사도 EU 영주권이 나오는 나라도 있어 신기했다.



두 번째로 취업 이민이 있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외국에서도 Blue color 업종이 인력난이 있다고 한다. 쉽게 말해 한국의 많은 식당에 조선족이 일을 하듯 한국인이 다른 나라의 외국인 노동자가 되는 방법이다.
미용, 요리, 용접 등등 많은 경로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이번 박람회에 나온 곳은 미국에 있는 미용회사와 캐나다에 있는 랍스터 포장 회사가 있었다. 몇 회사가 더 있었을지도 모르나 아이를 데리고 방문하여 정신없이 구경하여서 많은 곳을 보지는 못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평범한 유학이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 호주, 일본,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까지 많은 유학원들이 학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해외의 학교에 학비를 내고 들어가서 공부하는 것이다. 여러 어학원이 학교과 학원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박람회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곳은 체코 약대였다. 



 2천만 원으로 유럽 약대를 간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파격적인 아이디어였다. 
졸업을 한 후 취업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공부를 못해도 약대를 갈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외국의 약대를!! 우물에 살던 나에게는 너무나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한 바퀴 둘러본 뒤 우리 가족은 3가지 이민 방법 중 가장 쉬울 것 같은 유학 상담 데스크에 앉았다. 
우리의 직업과 왜 이민을 가려는지 여러 가지를 설명한 후 상담을 받았다. 

캐나다 컬리지에 들어가면 학비는 2년간 약 2~3천만 원이 들고, 한 달 생활비는 4인 가족 기준 집 렌트 포함해서 약 500만 원 지출된다. 거기에 차량 구입비까지 하면 2년 동안 약 2억 원을 소비해야 하니 여유 자금이 있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남편이 일 할 수 있는 오픈 비자가 나와 남편은 일을 하고 나는 공부를 하면 된다고 했다. 영주권 획득까지의 총기간은 약 5년이 걸린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영주권 받는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몇 개의 질문을 하자, 상담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몇 번의 고민 끝에 입을 뗐다. 

"유학은 사모님 이름으로 가면 배우자가 워킹 비자가 나오니깐 사장님께서 식당에서 일을 하시다가 영주권은 사장님 이름으로 따시죠! 그러면 2년 안에 영주권이 나옵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잠시 멍해지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영주권 진행을 남편 쪽으로 하면 제가 공부를 안 해도 되지 않나요??"
"남편분이 워킹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사모님이 컬리지 이상을 다니셔야 합니다."
"제가 공부 안 하고 워킹비자를 받는 방법은 없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

그 후 집으로 와서 캐나다 워킹비자에 대해 검색을 해 봤다. 
이민 공사라는 곳에서 자격 조건에 맞는 사람만 대상으로 워킹비자를 받을 수 있게 현지와 연결해 준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미 공사 3곳을 방문해 봤다. 

우리가 갈 수 있는 이민 방법은 2가지였다. 한 가지는 자영업 1년 경력 덕분에 얻은 자영업 투자 이민이었다. 조금의 금액만 투자하여 캐나다에서 식당을 차리면 바로 받을 수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남편이 식당에 취직하여 일을 하면 받을 수 있는 워킹비자였다. 요리를 10년 넘게 해 온 남편의 직업 덕분에 쉽게 영주권 신청을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알았고 그 자격 요건은 100% 우리 가족에게 맞아떨어졌다. 약간의 수수료가 있었지만 영주권 진행에 대한 원래 수수료가 1천만 원 정도이고, 만약 내가 유학의 경로를 통해 입국했을 때 2억이라는 비용이 소요되는 것과 영주권 발급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 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는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근데 우리가 왜 캐나다를 간다고 까지 온 거야??
다른 나라는 안돼??


그렇게 우리의 이민할 나라 확정 짓기 생각이 다시 한번  시작되었다. 

Photo by Jason Leu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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