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환상 도서관 #6
1. 노을
창 밖에서 지나치게 찬란한 노을 빛이 흘러들어와
모든 것을 삼키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햇빛 조절 나사를 비틀어
노을색의 수치를 한계까지 올린 것처럼,
창밖은 온통 끈적하고 농밀한 노을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야의 가장자리부터 현실감이 뭉개지는 기분.
나는 그 색채가 마음에 들었다.
"커피, 식겠어."
맞은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멍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웠다.
그녀의 이목구비는 내 기억 속 어딘가에 파묻혀 있던
'나만의 이상형'의 조각들을 정교하게 오려 붙인 듯했다.
그녀가 누군지, 내 이름이 무엇인지,
우리가 왜 이곳에 있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불안하지 않았다.
불안이라니.
이토록 안락하고 나른한 공간에서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나는 천천히 찻잔을 들어 올렸다.
손끝에 닿는 도자기의 감촉이 느껴졌다.
입술에 닿은 커피는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미지근하게 퍼져나갔다.
몸이 물먹은 솜처럼 의자 깊숙이 파묻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편안함이 전신을 휘감았다.
"맛이 어때?"
"...... 달아. 그리고 편안해."
"다행이네. 네가 좋아할 줄 알았어."
여자는 만족스러운 듯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붉은 노을이 비쳤다.
아니, 그녀의 동공 자체가 붉게 발광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마치 아주 오랜 시간
무언가를 기다려온 사람처럼,
미소 지었다.
"심심하지? 옛날이야기 하나 해줄까?"
그녀의 손가락이 테이블 위를 톡, 톡, 두드렸다.
규칙적인 박자.
그 소리가 내 심장 박동과 동기화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아니, 거부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이 열리자마자,
나는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를
이미 알 것 같다는 기시감이 들기도 했다.
"아주 먼 옛날,
이 행성의 바다 깊은 곳에...
아주 작고 불안한 생물이 살고 있었어."
그녀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했다.
자장가 같기도 했고,
주술 같기도 했다.
"그 생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늘 죽을까 봐 두려워했어.
파도의 흔들림조차 공포였지.
너무나 나약해서,
아주 미세한 불확정성마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거야.
그래서 녀석은 결심했어."
여자가 말을 잠시 멈추고 내 반응을 살폈다.
나는 홀린 듯 입을 열었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뇌의 깊은 곳,
잠겨있던 서랍이 덜컥 열리며 문장이 튀어나왔다.
"...... 자신보다 강한 걸 삼키기로 했지."
여자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그녀가 테이블 위로 몸을 기울이며 내게 속삭였다.
"맞아. 똑똑하네, 우리 자기.
녀석은 자신보다 조금 더 강한 생명체를 흡수했어.
그리고 녀석의 유전자를 복사해 그 모습으로 변했지.
먹고, 변하고. 먹고, 또 변하고...
녀석의 생존 방식은 '포식과 모방'이었어.
불안이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지.
결국 어떻게 됐을까?"
"바다의 가장 강력한 포식자가 되었어."
내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마치 오래전 암기했던 교과서를 낭독하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에서 희미한 이미지들이 스쳐 지나갔다.
검푸른 바다.
꿈틀거리는 살덩어리.
수천 개의 눈을 가진 괴물.
그 이미지들이 내 기억인지,
아니면 그녀의 말이 만들어낸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렇지.
바다의 왕이 되었어.
하지만 녀석은 여전히 불안했어.
바다 위에는 땅이 있었고,
땅 위에는 인간들이 있었으니까.
녀석은 생각했어.
인간도 먹어치우면 그만이겠지.
그래서 인간으로 변신해 육지로 올라왔지만...
곧 깨달았어."
"한 명의 인간은...... 너무 나약해."
내가 중얼거리자,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등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다.
"그래,
인간 개체 하나는 너무나 무력했지.
사회적 신분이 낮은 인간은 더더욱.
또한 아무리 강한 인간이라도 총알 한 방,
질병 하나면 끝이었어.
육체적인 강함은 인간 사회에서 무의미했어.
녀석은 더 거대한 무언가가 필요했어."
"그래서...... 조직을 만들었어."
내 목소리가 조금씩 건조해지기 시작했다.
몽롱했던 시야 속에,
넥타이를 맨 수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빌딩 숲을 오가는 환영이 겹쳐 보였다.
"기업?"
나는 무의식 중에 그 단어를 뱉었다.
입안에서 쇠맛이 났다.
"맞아.
녀석은 한 거대 기업의 수장을 몰래 흡수하여
그와 똑같은 존재가 되었어.
그 후 수만 명의 직원을 둔 기업의 주인이 되어,
인간 사회의 상위 포식자로 군림했지.
그리고는 정치권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확장했어.
돈과 권력.
그것이 인간 사회의 힘이었으니까."
"그럼, 이제 불안이 끝났을까?"
여자가 되물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목 근육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아니... 부족해."
"왜?"
"여전히 작은 변수는 존재했어.
시장은 유동적이고,
사람의 마음은 갈대 같으니까.
한 두 세기 정도는 지속할 수 있더라도
그 이상의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했어.
녀석은 여전히 불안했지.
인간들의 마음,
그 변덕스러운 변수까지 모조리 통제하고 싶었어."
술술 나왔다.
이것은 내가 언젠가 연구했던 주제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뭐였더라?
헷갈렸다.
머릿속에서 윙윙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지만,
여자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 소음을 덮어버렸다.
"그래서 녀석은 깨달았어.
인간을 지배하는 건 자본과 권력이 아니야.
더 근원적인 것.
인간의 사고를 규정하는 것."
"언어...... 그리고 그 안에 담기는 믿음."
"정답이야."
여자의 미소가 짙어졌다.
창밖의 노을이 더욱 붉게 타올랐다.
카페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마치 물속에 잠긴 듯 귀가 먹먹해졌다.
그녀가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그래서 녀석은 이제 움직이는 것을 멈췄어.
대신 뿌리를 내리기로 했지.
땅 깊숙이, 아주 깊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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