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니스바 안귀솔라. 한때 그녀의 그림이 남자 화가의 작품으로 여겨지기도
스페인 역사에서 힘이 가장 강했던 합스부르크의 첫 왕 카를로스 1세는 사촌인 포르투갈의 공주 이자벨라와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스페인의 다음 왕 펠리페 2세가 태어나죠.
우리는 프라도 미술관 0층 55번 방에서 그의 초상화를 만나게 됩니다. 흔히 기대하는 왕의 모습과 좀 다르지 않나요? 그는 검은 계열의 옷을 입고, 눈에 띄게 화려한 장신구들도 착용하지 않았어요.
펠리페 2세의 아버지인 카를로스 1세는 상당히 호전적이었던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수 많은 나라를 정복하기도 했죠. 이와는 반대로 펠리페 2세는 마드리드에 머물면서 서신 즉 편지를 통해 스페인을 다스린 인물로 알려졌어요. 그래서 이 사람의 별명이 “편지의 왕” 혹은 “신중왕"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림을 그린 화가는 초상화에 왕이 가지고 있었던 일종의 ‘차분함’ 그리고 ‘내재된 강인함’을 그림에서 드러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제 눈에는 힘 있게 우리를 쳐다보는 두 눈과 앙다문 입이 이 두가지 특징을 잘 말해주는 것 같아요.
또한, 이 두 가지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화가는 처음에 그렸던 화려한 왕의 의상을 지금 보는 것과 같은 차분하고 심플한 검정색의 망토가 달린 것으로 수정해요. 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구교인 가톨릭 수호를 위해 애썼던 펠리페 2세의 특징을 반영하듯 그의 손에는 묵주가 있네요. 손에 쥐어진 묵주가 허리에 꽂혀 있는 칼보다 큰 걸 생각하면, 확실히 화가가 펠리페 2세가 아버지와 달랐음을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이 그림은 이탈리아 출신의 여성 화가 소포니스바 안귀솔라(Sofonisba Anguissola)의 작품입니다. 1500년 대에 왕의 초상화를 여성이 그린거라고요. 대단하지 않나요?
소포니스바는 이탈리아 크레모나의 한 귀족 집안의 딸이에요. 자매들과 함께 미술 교육을 받았는데, 이때만해도 미술 교육을 받는 여성들은 남성 화가의 아내나 딸들이었다고 해요. 이런 점에서 딸들에게 미술 교육을 시킨 소포니스바의 아버지는 좀 독특헀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 화가는 가족들을 보면서 다양한 초상화들을 그렸어요. 그러면서 순간 순간 얼굴에 나타나는 인간의 감정이나 성격을 포착하여 그림으로 그려내는 연습을 많이 했죠. 이 여성 화가의 그림을 보고 칭찬을 한 화가 중 하나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3대 화가 중 하나인 미켈란젤로에요. 그녀가 그린 초상화를 보고 “다른 감정들을 표현한 그림들을 더 보고 싶다"라고 했다죠.
1559년 소포니스바는 펠리페 2세의 세번째 부인인 이사벨 왕비의 시녀로 살기 위해 스페인으로 건너갑니다.
물론 스페인 왕실은 소포니스바에게 ‘화가'로서의 공식 직함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스페인에서 화가로서의 삶을 이어나갔던 걸로 보여요. 왕비인 이사벨에게 그림 수업을 하기도 하고 왕실 가족의 초상화들을 많이 그렸답니다.
그녀가 스페인 왕실에서 정식으로 처음 그린 그림이 이사벨의 초상화인데요, 같은 방인 55번 방에 있답니다. 사실, 왕실의 공식 화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소포니스바에게는 왕비를 앞에 세워두고 오랜 시간 관찰할 조그마한 작업실도 없다고해요.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녀는 왕비가 가지고 있는 생기와 우아함을 그림에 고스란히 담아낸거예요. 대단하죠?
스페인의 한 미술사가는 소포니스바가 이탈리아에 있을 때, 자신의 여자 형제들을 자주 그리고 자세히 관찰하면서 여러 차례 그림으로 그려낸 경험의 결실이 힘든 상황에서도 훌륭한 왕비의 초상화를 가능케 한 원동력이라고 평가해요.
안타깝게도 이 그림은 오랜 기간 동안 소포니스바의 그림이 아니라 펠리페 2세의 궁정화가 였던 산체스 코에요의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답니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당시에 공식적으로는 여성이 화가로서 왕과 왕실 가족을 그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계속해서 그려갔던 게, 오늘의 주인공 소포니스바. 대단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