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5세의 초상화를 잘 그려 귀족이 된 화가

티치아노, <뮐베르크 전투에서의 카를 5세>

by 유영하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첫 왕인 카를로스 1세 (Carlos I de España, 1500 - 1558)는 말 그대로 금수저입니다. 아버지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힘이 셋던 신성로마제국의 펠리페 왕자였고, 어머니는 레콩키스타를 완수한 스페인의 여왕 이사벨과 왕 페르난도의 딸이었거든요. 카를로스 1세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힘이 강력했던 두 나라를 등에 업고 태어난거죠.


카를로스 1세는 여섯 살에 네덜란드를 물려받고, 열 여섯 살에는 스페인의 왕이 됩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519년 그는 친할아버지인 막시밀리안 황제의 죽음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등극하죠. 이때문에 그를 부르는 이름이 하나 더 생기는데요, 그게 카를 5세(Charles V)입니다.


유럽 대부분의 지역을 아우르는, 당대 가장 광대한 권력을 손에 쥔 군주인 카를 5세가 특별히 신뢰하고 후원했던 화가가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의 베첼리오 티치아노입니다.



Carlos V en la batalla de Mühlberg (1).jpg 출처: 프라도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 1층을 가로지르는 큰 복도 중앙에 걸린 <뮐베르크 전투에서의 카를 5세>도 티치아노의 작품인데요. 뮐베르크에서 일어난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치룬 전투에서 카를 5세가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겁니다.


근데 이 그림 참 커요. 가로가 2.8m, 세로가 3.3m 예요. 이렇게 큰 그림의 절반을 힘차게 달려가고 있는 듯한 말이 차지하고 있죠. 이때 눈길을 끄는 건 심하게 움직이고 있는 커다란 말을 탄 카를 5세의 표정입니다. 무표정에 깔린 평온함이 느껴지시나요? 승리에 도취되어 기뻐하지도 않고, 거칠게 달려가는 말 위에 있는 사람치고는 힘들어 보이지도 않습니다.


image.png 출처: 프라도 미술관



티치아노는 바로 이 흔들림 없는 표정을 통해 카를 5세가 그 어떤 어려움에도 끄떡없는 신에 가까운 힘을 가진 군주임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황제는 자신의 권위를 드높여주는 이러한 초상화를 잘 그려준 티치아노를 예뻐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죠.


화가는 표정을 제외하고도 카를 5세의 힘을 돋보이게 하고자 여러 장치들을 활용하는데요, 그중 하나가 창입니다. 보통 왕과 황제의 기마상 그림(조각)에서 말을 탄 인물은 칼을 들고 있는데요, 티치아노 그림 속 황제는 ‘창’을 들고 있습니다.


image.png 출처: 프라도 미술관


카를 5세에게 창은 의미가 남다릅니다. 성 게오로기우스와 성 미카엘이 용을 죽일 때 사용한 무기이고, ‘가톨릭을 수호하는 무기’로 많은 이들이 인식하기 때문이죠. 14세기부터 시작된 종교개혁 운동에 반대하여 가톨릭을 수호하고자 했던 국가들 중 선봉장에 섰던 나라가 카를 5세의 스페인이었어요. 그는 티치아노에게 칼이 아닌 창을 그리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가톨릭의 수호신’으로 보이게끔 하려는 목적이 있었으리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창은 로마 제국 시대에 왕관보다 더 권력을 잘 보여주는 장치였다고 합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 스스로를 ‘로마제국의 적통 후손’이라고 여겼던 카를 5세는 이를 과시하기 위해 그림에서 창을 사용하자고 제안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카를 5세와 같은 권력자의 초상화는 백성들에게 존경과 숭배의 대상이 되어 권력을 지속하고자 하는 권력자의 욕망이 담긴 결과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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