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이 주는 안정감을 찾아다니다

by KH

유일한 운동은 등산이다. 한때 점핑 운동을 한 적이 있으나 비싼 금액과 주차장 협소로 인하여 그만두었다. 말이 등산이지 힐링이나 다름없다. 속에 담아두기만 해서 썩어 있는 나의 내부는 한 번씩 비우기가 필요하다. 속이 뻥 뚫리는 바다를 즐기면 좋았겠지만, 먼 거리를 운전해서 가야 하는 피곤함과 생각보다 뻥 뚫리지 않는 미적지근한 시원함이 발걸음을 산으로 향하게 했다.


한국 아이들은 뭣 모를 때 부모님을 따라 산에 오른다. 무적의 체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날다람쥐’가 되어 산을 휘젓는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가면서 놀거리, 즐길 거리가 주변에 즐비하게 되면 더는 힘든 산행을 즐기지 않게 된다.


내가 등산을 ‘즐기게’ 된 것은 주관이 약했던 것이 크게 일조했을 것이다. 아빠가 “산이나 갈래?”라고 하면 어차피 만나서 놀 친구도 없고 맛있는 거나 얻어먹자는 마음으로 털레털레 따라갔던 게, 지금은 등산 과정이 자연스레 편해졌을 뿐이다.


평소 의견을 먼저 제시하지 못하는 편인데 8년 넘게 사회생활을 했어도 여전히 어렵다. 내 생각에 자신이 없다고 하는 게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어찌나 확고한 주관이 느껴지는지 내 의견을 말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나를 나타내는 단어에 ‘위축’은 항상 포함될 것이다.


산에 오를 때면 '위축'은 잠깐 사라진다. 코스를 내 확고한 의지로 정할 수 있고, 자연의 소리를 만끽하면서 오르내리는 데 집중해야 하므로 다른 이와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거다. 사람과의 단절이 주는 안정감을 느끼려고 산을 즐겨 찾는 것이다. 나란 인간은 얼마나 모순적인가. 사람들과의 소통 능력이 부족해 외로움과 자괴감을 느끼면서 건드리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예민함까지 갖추었으니 말이다.


『여자들의 등산일기』의 작가 미나토 카나에는 말했다. 「등산은 계속 야외를 걷기에 개방적인 기분일 것 같지만, 실은 집에 있을 때보다 더 자신의 내면을 깊게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다. 평소 말하지 못했던 것도 산에서라면 할 수 있다.」*



*ダ・ヴィンチ、2022年2月号の22ページよ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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