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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자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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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Sep 14. 2015

아빠의 작은 벗

자식보다 개가 낫다

아버지들의 외로움은 대체 누구 탓일까. 일과 가정을 동시에 돌보지 못한 아버지의 책임인가, 직장의 노예가 되지 않고서는 처자식 먹여 살리기도 어려운 열악한 경제 구조 때문인가, 가장의 어려움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버지를 보듬지 못하는 나머지 가족들의 탓인가. 그것도 아니면 집집마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기 때문인가. 

    

우리 아버지도 참 외로운 사람이었다. 충분한 생활비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가장의 역할을 다했다고 굳게 믿는 그런 아버지였다. 어린 자식들 보다는 시골에 계신 당신 부모님을 더 살뜰히 챙기는 효자이기도 했다. 엄마와 나, 그리고 내 동생들은 아버지의 역할은 으레 그런 것이겠거니 생각하며 각자의 마음속에도 딱 그만큼의 자리만 아버지의 몫으로 할당했다. 서로 필요한 말만 했고, 같은 공간에 오래 있는 일도 별로 없었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았다고는 못하겠다.      


지금은 좀 다르다. 틀어진 관계를 개선시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아마 지금이 어느 때보다 아빠와의 관계가 제일 좋은 시기일 것이다. 백 퍼센트 유자 덕분이다. 아빠와의 거의 모든 대화는 유자 이야기로 시작된다. 밥은 잘 먹었는지, 목욕은 시켰는지, 산책은 했는지 서로 묻고 답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요새 읽는 책 얘기도 하고, 아빠가 좋아하는 프로 야구 이야기도 하게 된다. 비단 아빠와 나 뿐만이 아니라 가족들 간의 대화 자체가 늘었다. 유자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우리 가족은 유자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유자는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 아빠를 잘 따랐다. 밥을 챙겨주는 것도 아니고 매일 산책을 시켜주는 것도 아닌데, 먼저 애교도 부리고 아빠 앞에서는 얌전해졌다. 우두머리를 알아보는 개의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아빠도 그런 유자가 귀여웠는지 커다란 손으로 조금 거칠게 유자를 쓰다듬어 주시곤 했다. 주말에 한 번씩 유자와 단둘이 오랜 산행을 즐기기도 했다. 지금은 일요일 아침만 되면 유자가 먼저 아빠한테 달라붙는다.       


아빠의 유자 사랑도 날로 깊어지고 있다. 처음엔 유자가 식탁 근처에만 가도 쫓아내더니 지금은 저녁마다 고기를 삶아 손수 먹인다. 물론 식탁에서. 사료와 간식으로 충분하니 주지 말라고 해도 그만두지 않는다. “이렇게 예쁜 애를 어떻게 안 줘?”라며 도리어 나를 타박한다. 내가 아빠였더라도 유자를 예뻐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매일 저녁 집에 돌아오면 장성한 아들 딸은 건성으로 “오셨어요?” 정도의 인사를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하지만 유자는 꼬리를 흔들고 점프를 하면서 앙앙 짖는다. 매일매일 그렇게 환영인사를 한다. 아빠는 소파에 앉아 유자를 무릎에 올리고 한참이나 쓰다듬다가 샤워나 식사를 하신다. 내 얼굴이 아빠의 휴대폰 배경화면에 있던 적은 없지만, 유자는 몇 년째 그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다. 하긴, 자식인 내가 생각해도 자식보다 유자가 낫다.        


아빠는 벌써부터 유자의 묏자리까지 생각한다. 시골에 있는 선산에, 볕이 잘 드는 작은 땅뙈기에 유자를 묻어주고 비석을 세워주자고 가끔 말씀하신다. 그리고 당신도 그 옆에 뉘어달라고 하신다. 유자도 앞으로 십 년은 더 살고, 아빠는 삼십 년도 더 살 수 있으니 나중에 생각하라고 해도 꼭 꼭 그렇게 하잔다. 우리 모두가 세상에서 사라진 후에도 아빠는 유자와 함께 있고 싶은가보다. 정말로 그렇게 되길 바란다. 사실은 둘 다 외로움을 많이 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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