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초를 만들다
아무 생각 없이 방산시장에 갔다. 친구 따라 갔다. 평소에도 이것저것 관심이 많던 친구는 연말 선물로 향초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었다. 지하철에서부터 어떤 왁스와 어떤 오일이 좋은지 내게 열심히 설명해줬고, 어느 정도 크기로 만드는 게 좋을지 의견을 묻기도 했다. 방산시장에 같이 가면 근처 광장시장에서 육회를 사준다길래 따라간 것뿐이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함께 고민해줬다.
방산시장의 풍경은 생경했다. 시장이란 이름이 붙어있긴 하지만 익숙하게 보던 시장의 모습은 아니었다. 좌판이나 아케이드 대신 좁은 건물 안에 작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들어차 있는 공간이 방산시장의 핵심이었다. 동대문 시장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가게마다 파는 물품은 비슷해 보였다. 그러나 친구 말에 따르면 그중에서도 상점마다 특화된 제품이 있단다. 어느 집은 좋은 오일을 구비해두고, 그 옆집은 향초 심지와 용기를 싸게 판다. 온도계와 비커 같은 기구들은 또 다른 가게에서 사야 한다. 결국 꽤 오래 시장 구경을 했다. 향도 머리 아플 때까지 맡아보고.
한 달쯤 지나,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 방산시장에서 샀던 재료들은 향초로 완성되어 있었다. 한 달 전에 골랐던 향인데도, 초의 향기를 맡자마자 한 달 전의 그 날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 날 나는 친구가 정성껏 만든 향초 세 개와 향수 세 병을 받아왔다. 집에 가는 내내 쇼핑백에서는 좋은 향이 솔솔 올라왔다. 파는 제품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또 한 달이 지나 그 친구를 만날 때는 비커와 온도계 등 자질구레한 도구들을 건네받았다. 나도 한 번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향초를 태우는 건 좋아했지만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초가 타는 아늑한 분위기를 즐기고 싶을 뿐이지, 초를 만드는 수고로움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재료값이 아주 저렴한 것도 아니어서, 만드는 수고를 따져보면 그냥 사서 쓰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오래 고민하지 않고 장미향 오일과 왁스와 말린 꽃잎을 샀다. 만드는 과정도 어렵진 않았다. 중간중간 예상치 못한 애로 사항이 있긴 했지만 적당히 때워가며 반나절 만에 그럭저럭 끝냈다. 일곱 개의 초를 만들었고, 다행히 그 중 두 개는 멀리서 보면 적당히 예쁜 수준으로 완성됐다. 한 번 더 만들어보면 좀 더 매끈하게 만들 수 있겠지. 직접 만든 향초를 선물하고 싶어 했던 친구의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마음도 향처럼 퍼져나가나 보다. 누군가에게 고운 향을 선물하고 싶다면, 가끔은 예쁜 초라도 만드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