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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Aug 03. 2016

바늘로 혼자 놀기

프랑스 자수 책을 사다

프랑스 자수에 꽂혀서 책을 샀다. 정말 뜬금없는 분야에 꽂힐 때가 종종 있다. 프랑스 자수 역시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취미다.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충동구매를 한 셈이다. 보통은 실용적인 목적을 가지고 가방이나 소품 등을 만들어 보는 것 같은데, 애초에 그런 쪽으로 목표를 잡지는 않았다. 작고 예쁘지만 쓸데없는 무언가에 시간을 조금 쏟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시간을 죽이는 방법이야 다양하지만 그게 조금 우아하면 어떨까, 싶은 정도였다. 가볍게 수틀을 들고 린넨에 꽃을 수놓는 우아한 내 모습을 상상했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기본적인 바느질과 스킬, 십자수를 떠올렸다. 그다지 어렵지 않았던 과제들이었다. 프랑스 자수도 그렇게 까다롭지는 않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치니 스티치 종류만 수십 가지다. 바늘과 실로 해왔던 이전의 활동들보다 난이도가 꽤 높다. 적당한 손재주가 필요하고, 은근한 집중력이 필요한 육체노동이며, 상상력도 약간 가미되어야 하는 정신노동의 성질도 있다.


실로 낙서하기, 꽤 재밌다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서 내키는 대로 바늘을 놀렸다. 팔십여 가지의 스티치 종류 중 자주 쓰겠다 싶은 스티치 몇 종류만 손에 익히기로 했다. 일고여덟 가지는 그럭저럭 따라 할 만했는데 스티치 하나가 애를 먹인다. 장미꽃 모양을 수놓는 데 쓰이는 '블리온 스티치' 기법이다. 바늘에 실을 감아서 이렇게 저렇게 하면 감긴 실이 통째로 도톰한 꽃잎 모양 수가 되는 모양인데, 아직은 계속 실패하는 중이다. 잘 안되니까 손을 부들거리며 짜증을 내게 된다. 자수용 실은 가격도 비싼 편인데. 일단 고급 스킬들은 뒤로 미뤄두고 낙서하듯이 자수를 놓기로 했다. 어디까지나 재미를 위한 취미니까.


얼마 전에 대 유행한 컬러링 북도 그렇고 스크래치북, 페이퍼 커팅 같은 취미들이 부상하는 걸 보면 '혼자 놀기'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는 것 같다. 프랑스 자수도 비슷한 성질이 있다. 넓게 보면 요가나 명상, 독서와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취미가 조용히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통로 역할을 해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혹은 생각을 완전히 비워낸 것처럼 무념무상에 도달하게 된다. 생각할 거리들이 폭격처럼 쏟아지는 사회에서 혼자 노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고요한 정신세계를 만드는 데는 확실히 스마트폰보다 바늘이 일조하는 것 같다. 이런 취미를 하나쯤 갖게 되면 재미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일단 블리온 스티치로 장미를 수놓는 데 성공할 때 까지는 자수틀을 가까이에 두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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