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그림은 지금도 그려지고 있다.

by 엄마꿈선생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진학.

대학졸업 후 바로 취업.

그리고 취업과 함께 편입.

일과 공부를 병행했던 2년 반.

늘 10시~12시 퇴근. 토요일에는 연수받거나 출근.

토요일밤부터 주일아침까지는 교회주일학교 선생님으로서의 밤샘준비.

주일엔 아침부터 밤까지 교회에서 섬기고 예배했다.


허덕허덕..하면서도 당차게 살았던 그 때,

나는 마음속에 꿈을 품고 살았다.


7년의 유아교육 공부와 3년의 현장경험 후, 나는 또 다시 공부가 필요함을 느꼈고, 병설유치원과 임용고시 공부 병행..그러다 큰 일이 닥쳤고 아쉽게도 공부는 접어야 했다. 그러나 분명히 그 시간을 통해 배우고 무척 많이 성장했다.

다시 사립유치원에서의 근무, 그리고 기독교교육기관에서의 근무까지..

단 한 순간도 쉼이란 것 없이 달려왔던 시간.


이상하게도...아이러니하게도...

경력이 쌓일 수록 나는 내 자신의 능력을 축소시켜 보기 시작하기도 한듯하다.


정말 쟁쟁하고 능력넘치는 선생님들을 보며 내 자신감이 오만임을 깨닫기도 하고, 때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을 굳게 믿으며 한 걸음씩 걸었던 시간...


그러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고, 엄마라는 이름을 얻었다.

유독 잠이 없던 첫째 딸은 늘 깨어 에너지가 넘쳤고, 늘 웃으며 세상을 즐겁게 만났다.

엄마가 된 후 정말 행복해 하면서도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것이 글과 영상으로 보듯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던 시간들이었다.


출산과 함께 육아휴직을 하면서 다른이들은 모두가 걷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데 나는 자꾸만 도태되어 가는 듯한 느낌에 한없이 우울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다 첫째딸이 6,7개월 즈음 생각지 않게 우리 부부에게 둘째가 찻아왔다.

남편은 늘 새벽에 퇴근했고, 주말에도 출근할 정도로 바빴던 때였고 첫째는 잠이없고 기질적으로 예민하여 나는 그야말로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둘째라니...ㅠㅠ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지만, 감사하기로 했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주신 얼마나 귀한 축복인가...


심한 입덧 덕분에 나는 쉴새없이 구토하며 첫째 이유식을 만들고 기어다니며 버티고, 울면서 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인 기억이 난다. 태교란건 생각할 수도 없었다. 내 몸이 내몸이 아닌데... 혼자 다 해내려니 서럽기도 한 시절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주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받을 수 없었던 나는 오롯이 두 아이를 혼자 키워야 했다. 누구의 간섭없이 내 육아관과 교육관대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나, 몸이 아플 때 가장 힘들기도 했다.


힘들다고 하면서도 난 늘 아이와 함께 재미난 놀이를 찾고, 놀고, 크게 웃고, 많이 보았던 것 같다. 언제나 열정에 불타올랐던 엄마꿈선생은 현실에 완벽히 굴복하진(?) 않았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셨고, 남편은 온 마음으로 응원하며 격려해주었다.


준비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이라는 것도, 그 과정들도.. 내 인생 그림의 중요한 조각들이었다.

욕심 많고 열정 넘치는 나,

넘치는 열정에 비해 몸이 따라주지 않아 한숨이 쉬어지기도 하지만 하나씩 천천히 그려나가 보기로 다짐했다.


기독교유아교육 연구,

엄마표 놀이 연구,

아이의 발달과 성장발돨 관찰,

신앙 안에서 자녀양육하기,

내 육아관과 교육과, 삶을 담은 글쓰기와 강의.


언어공부도 하고 싶고, 전공공부도 더 하고 싶고,

무언가 하고싶은 일들이 늘어남이 감사했던 시간들.


당장 실행하지 못할지라도,

무언가 할 수 있을까 겁나하고 움츠러들었던 '작은 나'와 이별하고 '긍정의 나'와 '꿈꾸는 나'를 만난다.


나의 열정과 목표를 향해 걸으며 하나님께 쓰임받고, 다른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도움을 주며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한 한 걸음 한 걸음을 나는 오늘도 내일도.. 느리게 걸어간다.


엄마이자 선생님.

엄마인 나도 꿈을 꾸고

자녀에게도 꿈을 꾸게 하고,

교육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엄마꿈선생'.


내 인생의 그림은 지금도 그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