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기

Bravo my life!

by 이경희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겨울같이 단순해지기로 했다.

창밖의 나무는 잠들고

형상의 눈은

헤매는 자의 뼈 속에 쌓인다.


항아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빈 들판같이 살기로 했다.

남아 있던 것은 모두 썩어서

목마른 자의 술이 되게 하고

자라지 않는 사랑의 풀을 위해

어둡고 긴 내면의 길을

핥기 시작했다.


마종기 님의 시 '그림 그리기'



그림 그리기는 나의 오랜 바람 중 하나였다. 2012년 12월 31일에 일을 그만뒀다. 이삿짐은 컨테이너로 보내고, 비행기를 타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만 오십 세의 퇴직은 나의 선택이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동시에 주어졌다. 나는 당황하나 서두르지 않으며 천천히 나 자신에게 물었고,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꽃과 풍경, 수채화는 아름다움과 매혹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주었다.



새 터의 집 짓기는 올봄에 시작해서 9월 초입에야 마무리 지었다. 충분히 생각하고 상상한 결과가 현실로 재현된 것이라 감동했다.'집 짓기를 하며 10년 늙어버리는 일'보다는 축제로 만들리라 다짐했던 만큼, 생면부지의 건축업자를 만나서도 좋은 시간을 함께 했다. 집 내부는 밝은 회색톤 벽지로 정했고 타일은 크고 작은 흰색과 회

의 육각, 직사각, 정사각형 등을 조화롭게 배치했다. 천정이 높고 창이 시원한 공간에서 인생 3 모작을 경작 중이다.



집 짓기의 마무리는 그동안 작업했던 것들과 갖고 있던 그림들을 적재적소에 거는 거였다. 다음번 계획은 서서 일할 수 있는 키친가든을 만드는 것이다. 쉬는 시간에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눈을 감고서 마음에 떠오르는 정원을 그리고 있다. 적잖은 위기를 겪으며 쉼 없이 달려와 얻은 '대자유'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