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떠올려본다. 엄마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지 두 달 후 돌아가셨다. 응급실에서 일주일 동안 의식이 없으셨고 당시 나는 엄마의 막내로만 존재했다. 열 오른 엄마의
얼굴을 안타까워하며 얼마나 쓰다듬고 귀에다 대고 사랑한다 말했는지 모른다. 환자의 신체 기관 중 마지막까지 가능한 것은 '청각'이라는 말이 있다.
나의 두 딸들도 멀리서나마 엄마의 엄마를 안타까워하며 '할머니 사랑해요'를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고 나는 그럴 때마다 의식 없는 엄마의 귀에다 전화기를 갖다 대곤
했다. 특별히 미국에 사는 큰 아들을 그리워했기에 급작스런 상황 하에 내가 할 일은 오빠에게 우리 가족이 날마다 하던 것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 중인 공항에서 오빠는 전화기 에다 대고 엄마를 부르며 사랑한다고 엄마! 엄마! 엄마~를 불렀다. 환갑을 훨씬 넘긴 남자가 공항 한편에서 목놓아 엄마를 부르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본 사람이면 짐직하리라-
'누군가 이 세상을 떠나고 있구나.'
출처:kasiajacquot.blogspot.fr.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는 말이 있다. 엄마의 삶은 일 하시며 다섯 남매를 키우시느라 고달프셨을 것이다. 막내인 나는 중학생이 될 때까지 온갖 이유를 갖다 대며 부모님 방에서 잤다. 어느 추운 겨울밤이었는데 잠에서 깨어나 보니 방 한편에서 그때야 시간이 나셨는지 엄마가 촛불을 켠 채 검은색 공단 천에 모란꽃을 수놓고 계셨다. 잠결이었지만 너무나 예뻐 그 자리에 앉아 한참을 바라본 게 그날
밤의 전부였다.
그 기억은 내 마음에 씨앗으로 뿌려졌다. 소박한 신혼집의 인테리어부터 아이들의 머플러에 수놓기와 누군가에게 선물을 할 때 포장을 인상적으로 만드는 일, 오랫동안 만들었던 나만의 교안들, 해외 근무 중에는 업무 외 시간이 날 때마다 회사 부지에 정원을 조성했다. 작게 시작한 일이었으나 꾸준히 몇 년을 하다 보니 2만 평 정도의 회사 곳곳을 드넓은 정원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 정원은 단순히 꽃만 피는 곳이 아니었다. 건물 외벽에 스피커를 설치하여 직원들의 출근시간과 휴식시간에 음악을 더하니 정원은 공원으로 변하기도 하고 야외 소풍 장소가 되기도 하며 가끔 직원들의 결혼식 장소가 되기도 했다. 회사의 모토인 '출근이 즐거운 회사'를 만드는데 단단히 한몫했다.
자식은 부모의 좋은 말 혹은 바른말을 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게 자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부모에게서 본 짧지만 인상적인 그 무엇들을 자기식대로 키워가며 살아간다. 나는 지금 엄마가 보시면 예뻐다며 좋아하실 꽃들이
화사하게 그려진 식탁보를 마주하고 앉아 있다. 엄마! 사랑해요.
출처:Su Embroidery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