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0년생 10살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늦게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하고 사랑스럽다. 이 아이는 여느 아이와 다른 타이틀이 있는데, 바로 자폐스펙트럼 장애 Autism Spectrum Disorder이라고 불리는 발달장애이다. 나도 처음엔 하늘이 무너지는 듯 슬퍼하고 절망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장애도 일상의 한 부분일 뿐, 이로 인해 행복과 불행이 갈라지는 것은 아님을 안다. 부모로서 조금 더 품이 들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남들보다 조금 더 있을 뿐, 나는 아침에 잠에서 덜 깬 아이를 깨워 먹이고 씻겨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하고, 저녁에는 부랴부랴 퇴근해서 숙제 검사하고 알림장 확인하고 씻기고 재우는 평범한 워킹맘일 뿐이다.
진단받고 얼마 안 되었던 시점에, 한겨레신문과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육아 글 공모전을 하기에 출품했더니 덜컥 대상을 탔다. 그리고 한 동안 한겨레신문의 웹진에 같은 제목의 칼럼을 연재했으나, 나의 복직과 함께 칼럼은 중단되었다. 늘 써야지 써야지, 가슴 한 켠에 숨겨놓은 묵은 빚 같던 이 칼럼을 드디어 여기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 다시 시작한다. 몇 줄 쓰다만 파일들을 다시 열어 지울 건 지우고, 추가할 건 추가하고, 새로 쓸 것은 새로 써서 퍼즐을 맞추듯 그림을 완성하려 한다. 당시 웹진 담당자도 나의 이 계획을 격려하고 응원해 주셔서 더더욱 힘이 난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아이 키우는 십 년은 그저 연습 게임일 뿐인 것 같다. 본 게임 들어가기 앞서 지난 십 년을 정리하고 새로 시작될 십 년의 계획을 세워나가야지.
첫 번째 꼭지는, 2014년 공모전에서 당선된 바로 그 편지글이다. 무려 안도현 시인께서 심사위원으로 심사해주신 영광을 내 생애 누리다니.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글 속의 나는 초보 엄마답게 한없이 비장하고, 진단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이라 슬픔과 혼란 속에 어찌할 바 모르는 모습이다. 이런 슬픔과 혼란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찾아와 늦은 밤 베갯잇을 적셨으나 그보다 큰 행복과 아이의 눈부신 성장으로 우리는 다시 밝은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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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창이 되어줄게
아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너에게 쓰는 이 글을 네가 이해하고 엄마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올까?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괜찮아. 너만의 방식으로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는 걸 엄마는 믿어. 햇살 좋던 가을의 주말 오후, 소파에 누워 낮잠을 자던 엄마는 꿈을 꾸었다. 산 위에 걸쳐져 있던 커다랗고 고운 무지개가 엄마 품속으로 달려드는 꿈을. 예쁜 딸일까 싶었는데 건강한 아들이었지. 2년 반쯤 지난 어느 추운 겨울, 진단 결과를 통보받던 날에 엄마 아빠는 잔뜩 긴장한 채 덜컹거리는 전철을 아무 말 없이 타고 갔어. 마음속에서는 이미 각오하고 있었지만, 결과를 듣는 순간 눈물은 멈출 수가 없었단다. “중간 수준의 자폐스펙트럼 장애입니다.”
처음에는 아무에게도 내색 못하고 일상이 계속되었지. 엄마를 부르지도 않고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 너에게 인사한 후 출근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하고 퇴근했지. 집으로 오는 퇴근길의 지하철 환승역에 사람이 없을 때만 잠깐씩 울던 나날이었어. 마치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온몸에 박히는 것처럼 아팠다. 그리고 휴직 후 치료 ‘전쟁’이 시작되었지. 아가, 엄마는 그때 정말 힘들었어. 이상하게 너는 밉지 않은데, 나머지 가족들은 다 밉고 세상도 밉고 신도 미웠어. 가만히 앉아 책장만을 끝없이 넘기는 너를 붙잡고 흔들며 "엄~마~라고 해봐! 말 좀 해 보라고!” 소리치다가 지쳐 엉엉 울 때도 있었지. 그즈음에, 엄마의 선배 언니가 네 얘기를 듣고 이렇게 물었지. “너, 아이가 그렇게 되어 혹시 창피하니?” 엄마는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내 새끼를 창피한 존재로 여기는 이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말이야. 나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했어. “아니오. 언니, 저는 제 아들이 창피하지 않아요. 제가 슬프고 힘든 건 제 아들이 길 잃은 아이처럼 깜깜한 어둠 속에서 살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기 때문이에요. … 그래도 저는 다른 사람이 아닌 제게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고는 정신 바짝 차리고 내가 할 일을 생각했지. 그래, 내 아들은 지금 자기 세계 안에 있어. 그 작은 세계에서 편안하고 안전하지. 내가 그 세계에서 아이를 완전히 꺼낼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창문을 낼 수는 있잖아? 세상을 보는 작은 창, 조금씩 조금씩 커지는 창 말이지. 내가 아들의 창이 되어주면 되는 거야.
그로부터 일 년 반, 여러 선생님들과 길고 지루한 치료를 견디어내는 네가 너무나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힘들어도 뭔가를 새로 깨우치려 애쓰고, 무서워하는 그네도 열까지 세면서 앉아 있으려 애쓰고, 청각이 예민해서 소음을 견디기 어려우면서도 사람 많은 식당에서 점잖게 밥도 잘 먹는 것도 감사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 엄마 아~들~’ 하면서 엄마 품에 안기는 모습도 감사하고…. 무엇보다도 ‘늘 밝고 신나고 행복한 아이’라고 선생님들께서 말씀해 주셔서 감사할 뿐이야.
아들아, 너는 앞으로 좋은 일도 겪겠지만 힘든 일도 많이 겪겠지. 의사소통이나 대인관계가 어려워서 오해도 많이 받을 것이고, 뭔가 표현하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답답하겠지. 하지만 엄마는 네 안에 있는 ‘성장의 힘’을 믿는단다. 너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른 것뿐이고, 그것이 조금 불편한 것뿐이야.자폐성 장애는 너무나 다양해서 햇빛이 여러 색으로 갈라지듯 ‘스펙트럼’이라 표현한다지. 너의 태몽이 무지개였던 것이 어쩌면 엄마에게 이걸 알려주려 했던 건가 봐. 빨주노초파남보 아름다운 색을 가진 나의 아들아, 너의 그 무지개가 점점 자라는 만큼, 엄마는 더욱 큰 창이 되어 줄게. 네가 자리를 박차고 창을 열어 세상 속으로 훨훨 날아 뛰어드는 그날까지.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