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끝나고 음악은 남아
한화교향악축제를 보고 난 후
.지난주 '한화와 함께 하는 교향악축제'가 드디어 한 달 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음악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제각각 다르다. 우아하고 고요한 아름다움, 슬프고 애절한 아름다움, 반짝반짝 즐거움이 햇살처럼 눈부신 아름다움, 엄격한 형식미 속에 감춰둔 절제와 고독의 아름다움 등 곡마다, 연주자마다, 작곡가마다, 그리고 지휘자와 일사분란한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지극한 합일의 모든 순간마다 아름다움이 뿜어져 나온다.
.작년 여름에는 코로나 때문에 교향악 축제를 하네마네 여러 얘기가 떠돌다가 7월에야 열렸더랬다. 거의 매 공연을 우산쓰고 가서 봤던 거 같다. 올해는 하늘도 푸르른 3~ 4월, 연록색 나뭇잎들이 나부끼는 가장 신선한 계절에 예술의 전당을 갈 수 있어 좋았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 포근한듯 서늘한 봄밤의 공기가 거대한 음악을 마주한 후의 흥분을 식혀주었다. 코로나 때문에 공연이 중단되지나 않을까, 축제기간 내내 조마조마했다. 관객 모두 마스크를 꼭꼭 쓰고 방역수칙을 지키며 관람했고,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연주할때 숨차고 힘들었을 텐데 마스크를 단정히 썼다. 나도 소독젤을 공연볼 때마다 열 번 넘게 손에 바르며 조심 또 조심했다.축제는 무사히 끝났고 그 뿌듯한 기쁨이 희미해지기 전에 몇 줄 남겨둔다.
.코로나는 공연종사자나 애호가에게 다시는 없어야 할 비극이지만, 올해 교향악축제는 뜻밖의 예외였다.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솔리스트들과 지휘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덕분에 표는 구하기 어려워지고 모든 공연이 거의 만석(좌석은 한 자리 건너 하나씩, 전체 객석의 절반만 판매했다)이었으며 연주의 수준이 올라가서 귀호강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공연을 가지 못하는 날은 퇴근길에 KBS FM실황으로 연주를 들었는데, 생각보다 더 열정적이고 훌륭한 연주에 발길을 돌려 예술의 전당으로 뛰어가고 싶은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몇 년간 한화에 다니는 친구 덕에 꾸준히 공연을 보면서 여러가지 변화를 볼 수 있었다. 첫째, 오케스트라의 관객 수는 어느 오케스트라인지 여부도 중요하지만 곡에 따라, 협연자에 따라 정해지는 것 같다. 한국에서 인기있는 라흐마니노프, 차이코프스키 등 러시아 작곡가의 교향곡과 협주곡이 단연 인기있고, 이번에는 유명 협연자들의 공연티켓이 순식간에 팔려나갔다고 한다. 부동의 1위 서울시향은 곡과 협연자와 상관없이 서울시향이라는 이름만으로 티켓파워를 발휘한다. 둘째, 한국은 훌륭한 음악조기교육으로 해외에서 유학하거나 콩쿨수상한 인재들이 넘쳐난다. 그 말인즉슨 그만큼 실력을 갖춘 음악도의 층이 두터워져서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솔리스트 못지않은 실력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지방의 오케스트라나 수도권의 오케스트라 수준이 점점 좁혀지는 것도 흐믓하다. 세째, 올해는 모짜르트 교향곡이 유독 많았는데, 현악 위주의 고전파 교향곡이 편성인원이 적어 코로나 거리두기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덕분에 요즘 음악회에서는 오히려 듣기 쉽지않았던 아기자기한 고전파 음악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해외 클래식연주자들이 한국에 와서 연주한 후 입을 모아 말하는 얘기는, "젊은 관객이 많아서 좋다"라는 점이다. 올해는 특히 꼬마신사숙녀 관객이 눈에 많이 띄었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온 중학생 소년들이 특히 많았다. 원주시향 공연의 마지막, 앵콜로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이 연주되자, 그 힘차고 유려한 승리의 멜로디에 내 앞에 앉은 중학생 소년은 두 손을 맞잡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모든 감성이 폭발적으로 예민해지는 사춘기 시절,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음악을 온 몸으로 맞는 이런 경험은 평생 기억에 남는 법이다. 나는 소년의 앞날에 늘 음악이 함께 하기를 기도했다. 아울러 우리 아들도 음악을 좀 더 가까이 하기를. 내년에는 같이 가자고 하는 걸 보니 조금은 관심이 생긴 거 같아 기쁘다. 질려 달아날 수도 있으니 천천히 조심스럽게 가르쳐 보련다.
. 협주곡이 시작되면, 자, 이제부터 내가 이 곡과 싸워보겠어, 하고 달려드는 연주자들이 있는가하면, 이미 그 음악을 자기 안에 담고 나와서 힘들이지 않고 풀어 보여주는 이들이 있다. 아주 가끔은, 몸을 조금만 움직여 연주를 시작해도 거대한 음악이 쏟아지는 사람들이 있다. 교향악축제 마지막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일명 라흐쓰리)을 연주한 손민수 피아니스트도 그랬다. 정작
그의 얼굴 표정은 별로 변화가 없는데도, 희노애락 모든 감정이 음악 속에서 일렁였다. 힘이라면 어디가서 빠지지 않을듯한 지휘자의 거대한 오케스트라에 주눅들지 않고 서로 주고받으며 관객들을 이끌고 그 복잡하고도 풍부한 음률을 아무렇지도 않게 뿌려가며 힘차게 클라이맥스를 향해 전진했다. 모든 관객이 숨도 못쉬고 집중했고 라흐쓰리의 피날레는 교향악축제의 대미에 어울러는 웅장함으로 마무리되었다.
.축제는 끝났으나, 음악은 마음 속에 계속 남아 있다. 바라건대, 좀 더 다양한 악기의 협연이 시도되는 모습을 보고싶다. 각 오케스트라 중 바로크 음악에 관심있는 주자들이 유닛으로 바로크 축제를 작게 여는 건 어떨까. 회사일을 할 때는 떠오르지 않던 갖가지 아이디어가 머리 속에 퐁퐁 솟아난다.
나는 왜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에서 위로받을까. 해답을 찾지 못한 질문도 계속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오늘 아침 문득, 나는 '공명'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깨달으며 음악이 내 곁에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공명이란, 외부에서 주기적으로 가하여지는 힘의 진동수가 대상 고유의 진동수에 가까워질 때 잠들어있던 소리를 일깨우는 현상이다. 즉, 음악의 주파수가 마음 속에 묻혀있던 추억과 상처와 희망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일깨우며 어마어마한 울림으로 일깨우는 것이었다. 마음 속에 아무것도 없다고 느꼈던 순간, 내게도 기쁨과 슬픔,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음을 같은 진동수의 음악이 일깨워 주었다. 내 안에도 그런 힘이 있음을, 음악이 내 곁에서 항상 일깨워주고 있음에 감사한다. 잊지못할 이 순간을 함께 한 음악은, 마르첼로의 오보에 협주곡. 잊지않기 위해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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