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노을을 그리워하는 어느 여자아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 후배와 카톡을 나누었다.
- 거기 너무 좋더라.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잘 쉬고 와~
- 언니 여기 노을이 너무 이뻐요.
- 노을이 예쁜 이유는 우리가 워킹맘이라 노을 지는 시간에 일하거나 저녁밥하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지 ㅎㅎㅎ
워킹맘은 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퇴근한다. 운 좋으면 한강다리를 건널 때 잠깐 노을을 볼 수 있다. 붉게 물든 한강의 윤슬과 강변 고급아파트 유리창을 약 2분 보는 것이 내가 볼 수 있는 노을의 전부다.
결혼 전 혼자 일하며 살던 시절에 - 결혼은 영영 안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 일산에 집을 구해 이사하려고 심각하게 알아본 적이 있다. 일산으로 가려는 이유는 첫째, 헤이리와 파주 출판도시가 가깝다. 휴일에 가서 시간 보내기에는 최고의 동네이니 심심할 틈이 없다 (당시 헤이리 카메라타 음악감상실을 사랑하여 자주 들락거렸다). 둘째, 차로 퇴근하면 강북 강변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노을을 보며 갈 수 있다.
노을을 가득 눈에 담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차가 막혀도 행복할 거야. 노을은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마지막으로 누릴 수 있는 자연 풍경이 아닌가. 20여 년을 직장 생활하면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과 출퇴근 지하철에서 보내서인지, 늘 노을이 그립다. 이것만은 놓칠 수 없어. 사뭇 비장한 마음으로 저녁 무렵이면 노을이 지는지 창가를 기웃거린다.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중이거나, 전철 한강다리를 지나거나, 집에서 저녁밥을 하는 시간이거나.
그렇다. 거울 속의 나는 흰머리와 주름을 걱정하는 중년이지만, 마음속의 나는 노을을 그리워하는 이십 대 후반 언저리 여자사람의 모습이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어중간하고 어리둥절한. 십 년쯤 전에 마음속에 떠오르는 나의 inner child는 넓은 운동장에서 어느 교실로 들어가야 할지 모르고 당황한 1학년 꼬마아이였는데, 그에 비하면 많이 크긴 했다.
환갑이 될 때까지 내 안의 inner child를 착실히 키워 겉과 속이 같은 나이가 되는 것이 요즘의 내 꿈이다. 열심히 시간을 잘 보내면, 멋진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 여유 있게 노을의 시작과 해넘이까지 볼 수 있을까.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