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이런 시어머니 없을걸
상상도 못 했던 조력자
일 하는 엄마들의 육아에는 급한 상황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조력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일을 가야 하는데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거나 혹은 출장을 가야하는 경우 등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상황들이 꽤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가장 먼저 1순위로 거론되는 것은 친정엄마다. 아쉬운 부탁을 하기도 쉽고, 엄마에게만큼은 딸로써 어리광을 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차로 1시간 거리의 타지역에 살고 계신데다가 휴무일이 계속 바뀌는 직업적 특성과 이모식당에서의 아르바이트, 그리고 트로트 가수라는 새로운 취미 활동으로 일정을 조율하는 것부터가 어려웠다. 그래도 내게는 다행히 언니와 새언니라는 다른 조력자가 더 있었다. 그런데 육아를 도와주던 친언니가 대학원을 끝내고 다시 교직으로 복귀하고, 새언니도 직장을 다니게 되자 시원이를 맡기고 외출을 하는 일이 다시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되었다. 가장 좋은 해결 방안은 남편이 아이를 돌보는 것이겠지만 그 또한 힘들었다.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던 와중에 뜻밖에 구원투수로 나서주신 분은 시어머니였다. 정말 감사했다. 그런데 사실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다. 시어머니는 산후조리를 하는 기간 내내 시원이와 친밀감을 형성한 친정엄마와는 달리 함께한 시간의 양이 적었기 때문이다. 또 시원이를 데리고 시댁에 갔을 때마다 시어머니께서 아기를 어려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도 한몫했다. 시원이를 처음 보셨을 때, 근 23년 만에 갓난아기를 마주한 시어머니께서는 시원이를 만지는 것을 굉장히 조심스러워하셨다. 만지면 바스러질까, 잘못 안았다가 소중한 손녀가 불편해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시며 눈으로만 손녀의 모습을 담았더랬다. 그래서인지 시원이를 안아주시기보다는 시원이를 돌보는 나를 편하게 해주시려고 하는 느낌이었다. 아침에 실컷 늦잠을 자는 것은 물론, 식사 준비를 도우려하면 ‘앉아서 시원이 봐라’, 설거지를 하려 하면 ‘앉아서 TV 봐라’, 손이 모자른 농번기에 농사일을 도울라치면 ‘시원이랑 같이 낮잠이나 자라’ 하시며 집안일에는 일체 손을 대지 못하게 하셨다. 시원이가 두 돌이 지나면서 이런 문제들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엄마 껌딱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원이를 맡기기엔 걱정되는 것이 많았다.
시댁은 친정과 마찬가지로 대구에서 1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다. 때문에 시원이를 맡겼다가 심하게 울고 보채는 경우가 생기기라도 하면 내가 바로 달려갈 수가 없다. 어머님께서는 ‘이제 시원이가 컸으니 괜찮다’시며, ‘울어도 알아서 하겠다’고 내게 편히 일을 보고 오라고 말씀하셨지만, 내겐 여전히 내가 외출한 사이 시원이가 2시간 넘게 울고 보챘던 지난 날의 일이 트라우마로 남아있어 선뜻 아이를 맡기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일이 몰려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시어머님의 단호함에 못 이기는 척.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시원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이를 맡기게 됐다.
“어머님, 시원이 괜찮아요? 안 울어요?”
“괜찮아. 안 울어.”
“엄마 안 찾아요?”
“안 찾아.”
처음 시어머니께 아이를 맡긴 날은 시도때도 없이 전화를 했다. 아이를 놓고 대구로 운전을 해 오면서도 전화를 하고, 일을 하면서도 몇 번을 시원이가 괜찮은지 확인했다. 그때마다 시어머니는 ‘괜찮다’는 한 마디 뿐이셨다. 그러면 나는 이것저것 더 묻고 싶어도 내가 그러면 꼬치꼬치 캐묻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불편하실까 봐, 그냥 다행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고 시원이를 다시 마주했을 때, 시원이는 나를 반갑게 맞아줬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있었던 시간이 재밌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다섯 살이 된 지금, 이제는 시원이가 말을 너무 잘하게 되는 바람에 ‘한 번도 울지 않았다’는 건 어머님의 거짓말이었다는 걸로 밝혀졌지만, 시원이가 할머니 할아버지댁에 가서 동물들을 보고, 오토바이를 타고, 물놀이를 하고, 할아버지와의 바나나차차 댄스를 추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할머니 집에 가서 아홉 밤이나 자고 온다고 당당하게 말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맵단의 반전 매력
우리 어머님은 츤데레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경상도 여자 특유의 무뚝뚝함과 화난 듯 들리는 대구억양으로 쉽게 다가가기 어렵지만, 어머님의 행동과 짧은 대화로 미루어보면 굉장히 섬세하고 감성적인 분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런 어머님의 이해와 배려 덕에 남편은 자신도 모르게 위기를 넘긴 적이 있다. 시원이가 200일 즈음 이었을 때의 일이다. 시원이가 태어난 후로는 밤 수유 때문에 제대로 자 본 적이 없어 우리 부부는 초예민 상태였다. 아마도 내가 좀 더 예민했을거다. 몸도 회복이 덜 됐지, 요실금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도 떨어지지, 엄마라는 부캐 때문에 자아도 혼란스럽기까지 해서 모든 게 다 싫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상태에서 나의 유일한 버팀목은 ‘남편이 오면 그래도 둘이니까 좀 여유가 있겠지’ 기대하는 거였다. 그런데 실상은 남편이 오면 남편도 챙겨야 했다. 기대가 물거품이 되니 참아왔던 짜증까지 더해져서 저녁에는 더 쉽게 감정이 폭발했다.
남편은 종일 힘들게 일을 하고 왔으니 집에서는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하지만 나 또한 육아로 지친 몸과 마음을 남편에게 기대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차려준 밥을 먹고 나면, 게임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취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다음 날을 위해 잠도 혼자 잤다. 나는 그런 남편이 정말 미웠다. 당시 남편은 100kg이 훌쩍 넘는 시스템 에어컨을 천장에 설치하는 일을 했다. 손목과 팔꿈치 통증 때문에 심할 때는 핸들을 돌릴 때도 아파했고, 계속 천장을 올려다 봐야하니 뒷목의 통증도 상당했다. 남편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아파하는 남편이 안쓰러우면서도 그래도 미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도 힘들었으니까. 나도 돌봄을 받고 싶었으니까.
“최근에 온전히 나를 위해 한 일이 있어?”
‘나를 돌볼 시간도 없는데 남편까지 돌봐야 해? 아이도 아닌데?’라는 물음표가 계속 떠다녔다. 둘 다 지치고 힘든 우리 둘 부부 사이에서 돌봄의 역할은 항상 나라는 것이 싫었다. 밥을 차리고, 피부 관리를 해주고, 부드러운 위로의 말을 해주는 것은 항상 나였다. 정작 나는 샴푸는커녕 물 세수도 못하고, 제때 밥도 못 먹고, 오줌도 몇 번 누지 못한 채로 하루를 보내는 일이 셀 수 없이 많은데 말이다. 내가 보기에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아이는 그저 반짝였고, 나는 점점 초라해지고 있었다.
육아를 하는데 있어 남편의 퇴근이란 정말로 한 줄기 빛이자 신의 구원이다. 남편 또한 힘든 하루를 보냈으니 나의 완전한 육퇴를 책임져주기를 바라는 것은 이기적인 마음이라는 것을 나도 안다. 그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그저 남편이 샤워를 하고 저녁밥을 먹으며 한숨을 돌리고 나면, 나 또한 인간다운 시간을 누릴 수 있게끔 도와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서로를 토닥이는 시간을 갖길 바랐다. 그런데 내게는 남편의 퇴근 전과 후가 별다를 바 없었으며, 심지어 남편이 퇴근하면 남편 또한 돌봐야 한다는 생각에 남편의 퇴근히 오히려 버겁게 느껴졌다.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당시에는 ‘매일 기대하고 매일 실망하며 누군가를 미워하기보다 혼자 사는 게 더 낫지 않나’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혼자 살면 이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실망할 일도 없을 거라면서 말이다.
우울함이 점점 더 커지고 시도때도 눈물이 나던 그때, 어머님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난 솔로가 됐을지도 모른다. 어머님이 내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응원해주시지 않았더라면 실망만 남긴 채로 관계의 끝을 맺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번씩 힘든 마음이 파도처럼 나를 덮쳐 올 때마다 남편에게 서운한 말을 지르긴 했어도, 어머님께 고마워서 못된 말은 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가장 매웠던 시절을 지금 달달하게 기억할 수 있는 건 다 어머님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