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민 Mar 07. 2024

부부에게 필요한 궁합은


“역량이 부족한가 봐. 생각한 대로 일이 잘 안 되네.”

“그럼 여보는 역량을 언제 키울 건데?”    

 

‘어쭈. 이 사람 보소?’






같은 공간에서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차이’가 발생한다. 특히, 남녀 사이의 언어는 유별나다.

두 사람이 뜨거울 땐 그 간격은 미비하다. 아니, 오히려 상대의 부족함을 끌어안는 마법이 생성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둘 사이가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이윽고 ‘언어의 온도’는 극명해지기 시작한다.     


남자는 에둘러 던진 여자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제시된 단어의 ‘정확성’에 시선을 맞춘다.

      

“나의 객관적 시선으로 너의 문제점을 말해줄게!”     


결국 상대의 언어를 이해 못 한 두 사람은 불통으로 단절된다.   

  

남편과 나의 관계 또한 다르지 않았다.    

 

“뭐 때문에 삐진 거야?”

“정말 몰라서 그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남편은 정말 모른다는 것이다.     

 

마주 앉은 공기는 서늘하고 적막했다. 정답을 요구하는 남편에게 아내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 위로가 필요한 거잖아.”     


마치 한방 맞은듯한 표정의 남편은 미안함에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리고 뒤늦게 아내의 두 손을 따스히 감싸며 답했다.     


“알아차리지 못해서 미안해.”     


그제야 두 사람의 마음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모든 일이 순리대로 진행되던 날은 남편의 ‘그런 정확성’은 문제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서적 허기가 아내를 집어삼키는 날엔, 이야기가 달랐다.


놓인 문제를 스스로 이겨보고자 내면의 ‘셀프텔러’를 부단히 불러내어 간신히 한발 한발 걸음을 시작한 아내에게 남편은 위로라며 ‘논리적 발언’을 앞세워 나타난다. 결국 아내는 그 비수를 맞고 쓰러진다.     




15년 이상을 함께 해보니, 부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궁합은 ‘언어의 궁합’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남편에게 터놓은 아내는, 정령 남편에게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회사로부터 인정받는 노하우를 듣는 것?

앞으로 아내의 방향에 대해 논하는 것?


결코 아니었다.


‘당신의 노력이 곧 빛이 될 거다. 내가 곁에 있을게.’


아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공감이었다.

    

더욱이, 아내에게도 요구되는 것이 있다. 남자는 들리는 대로 듣기에, 자신의 진심을 꽁꽁 숨기고 에둘러 던진 말을 해석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아내도, 남편의 언어에 가깝게 대화를 이끌어 가는 기술이 필요하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한다. 그러기에 얼굴빛이 어두운 아내를 지켜보는 것이 속상하다.


오랜만에 사회생활을 재개한 아내가 겪는 어려움에 직접적 도움을 줄 수 없음이 먹먹한 남편의 머리는 복잡하다.


‘위로를 해줘야 하는데...’


불현듯 무언가 떠오른 듯한 남편은 서둘러 아내 곁으로 간다.

    

“여보. 뭐 먹고 싶어? 다 말해. 내가 사줄게.”

“짠돌이가 웬일?”

“우리 여보 힘든데 뭔들 못 사주겠어.”



살짝 매콤함이 올라오는 짬뽕을 먹는 동안 잊었다.

부드러운 초밥이 채워지고서야

나를 보고 빙그레 웃는 남편이 보였다.     


"잘 먹으니깐 좋네."



전부라고 생각했던 고통이 남편과 함께 한 한 그릇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사진출처(제목) :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냄비를 사는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