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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Mar 01. 2024

기억해 줄래


2학년 형님 준비로 바쁘던 2월의 마지막 날, 1학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1년의 추억이 이별의 아픔으로 색이 바랜 선생님은 그답게 짧은 진심과 동요로 마음을 대신했다.     


[ 기억해 줄래 ]

내가 처음 학교로 들어가던 날
모든 게 처음이라 낯설었던 날
함께 무대에 올라 춤을 추던 날
모두 힘을 모아서 응원하던 날     
내 마음 상자에 가득 담긴 이야기들
모두 다 내일을 비추는 빛이 될 거야
기억해 줄래 우리의 모든 시간을
기억해 줄래 모든 이야기를     
이젠 안녕 모두 안녕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순식간에 차오른 아쉬운 뭉클함을 아이와 공유하고 싶어, 시후를 서둘러 불렀다. 더듬더듬 읽어 내려가는 아이의 미숙함이 끝날 때쯤 ‘기억해 줄래’ 동요가 고요한 거실을 풍성하게 가득 채웠다. 그리곤 우린 식탁에 마주 앉아 짧은 편지를 사각사각 써 내려갔다. 그리고 선생님께 건넸다.



선생님은 마치 시후의 편지를 기다렸던 것처럼,  답장을 전해주셨다.               








2023년 3월 2일, 1학년 1반 교실에서 처음 뵌 시후 담임선생님은 남자였다. 극세사처럼 세세한 시후 감정선을 굵은 선을 지닌 선생님이 알아차릴 수 있을까 걱정했던 그날의 부질없는 고민은 불과 며칠 되지 않아 산산조각 났다.     


시후를 알아가기 위해, “통합교육”연수를 신청했다는 선생님은 시후에게 변함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남다른 시후를 행여 불편하게 여길까 걱정돼, 먼저 주의력약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제가 더 신경 쓸 테니 약 복용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학부모를 달래던 그였다.     


그의 마음이 시후에게 전해졌을까, 어느 날부터 주말 나른한 오후면 시후는 선생님을 찾기 시작했다.


“권영남 어디 있어?”

“권영남 선생님이라고 해야지. 선생님 뵈러 학교 갈까?”

“아니!”     


그리고 종업식날, 헤어짐을 아는지, 시후는 칠교놀이 활동을 검사받다가 자리를 이탈하는 척 선생님 뒤로 가, 맑은 미소와 함께 와락 안았다.  

    

시후는 지난 1년을 시후만의 방법으로 그에게 보답했다.








다소 느리고 일방적인 방법으로 자신 감정을 표현는 시후는,


정돈되지 않은 감정 뭉텅이를 상대에게 툭 건네고 헤죽 하고 웃고 돌아다.

얼떨결에 묵직한 뭉치를 건네받은 선생님은 느린 진심의 타격감에 헤어 나올 수 없다.


“시후는 사랑을 줄 수밖에 없는 아이입니다.”     



아이 주변에는 늘 좋은 분들이 가득하다.

더욱이 감사한 것은,

오래전 닿은 인연이 여전히 시후 곁에서 시후를 생각하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부족한 난 그들에게 건넬 것이 하나뿐이다. 

‘시후를 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 학기를 앞둔 지금,


새로움이 주는 설렘보다,

지난 것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다.


색연필로 하얀 도화지를 채우며 지난 1년의 감사함을 새긴다.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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