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 속에서 살고 있는 나
7살 아이가 기침을 해서 아동병원에 데리고 갔다. 약을 처방받고 호흡기 치료를 받고 가라는 의사의 말에 고개를 꾸벅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어려서는 호흡기 치료하는 걸 질색해서 울고불고 난리 치느라 진땀 뺐는데, 6살부터는 컸다고 가만히 앉아서 호흡기 치료를 한다.
호흡기 치료가 어려운 건 아니다. 일회용 종이컵에 입을 대고 증기가 나올 때마다 가만히 숨을 쉬고 있으면 끝이다.
아이는 어렸을 때 이 증기 소리가 무서웠던 것 같다. 청각이 예민한 아이라 큰 소리를 질색했다. 아파서 병원에 오면 정체 모를 큰 소리가 들리며 입에 뭔가를 대고 있으라 하니 아이의 입장에서는 1도 이해가 안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설명을 하면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거부 없이 얌전하다.
큰 아이가 호흡기 치료를 하는 동안 짧은 머리에 안경을 쓴 중학생 정도 되는 사람이 들어와서 옆에 앉아 호흡기 치료를 시작했다.
아이가 얌전히 기구를 잡고 있는 게 대견해서
“울 밤톨이, 정말 의젓하다.” ^^
하고 칭찬을 해줬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손가락으로 옆에 앉은 중학생을 가리키며 내게 말한다.
“엄마, 이 사람도 나처럼 가만히 앉아서 해.”
헉! 우리 꼬맹이는 어른을 보고 어른이라 말하지 못한다. (너는 홍길동이냐 ㅠㅠ) 아직 높임말 쓰는 버릇이 안되어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형/누나 안 하고 그냥 너라고 그러지 않나, 어른들에게는 이 사람/저 사람 그런다.
“밤톨아, 이 사람이 아니라 형이라고 해야지. 너보다 나이가 많은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야.”
아이에게 호칭을 정정해줬다.
“네, 엄마, 형은 나처럼 잘해요.”
“그래, 밤톨이 형처럼 참 잘하네. 7살 최고 형님 멋지다.”
이렇게 아이랑 얘기를 하면서 옆에 앉은 중학생을 슬쩍 봤는데 뭔가 난감하게 웃는 느낌이다. 기분이 싸했다. 뭐지, 이 기분은, 이상한데..
아차 싶었다. 머리가 짧다고 다 남자는 아닌데, 아이 옆에 앉은 사람의 성별을 내 맘대로 정해버렸다. 여자는 단발 아니면 긴 머리를 하고, 남자들은 짧은 머리를 한다는 정해진 규칙이 없는데도 난 무조건 그 학생을 남학생으로 규정한 것이다.
설마 설마 하면서도 모른척하기 그래서 조심스레 물어봤다.
“저기 혹시.. 누나예요?”
내 질문에 중학생은 고개를 끄덕인다.
어떡해 ㅠㅠ
“정말 미안해요. 짧은 머리만 보고 그만 형이라고 말했네요. 머리가 짧다고 남자로 보는 건 편견인데.. 정말 미안해요. 미안해요..”
부끄러워서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 아이 호흡기 치료가 끝나서 아이를 데리고 얼른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시간이 지나면 나는 이 에피소드를 잊을 수도 있다. 지금은 내 짧은 생각이 부끄러워서 이렇게 글로 남겨두지만, 나중에는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학생은 어떨까? 나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성별을 바꿔버리는 씁쓸한 경험을 얼마나 많이 당했을까? 그 학생은 평생을 두고 이런 일을 친구에게 한 번씩 꺼낼지도 모른다.
“나 말이야, 병원에서 어떤 애엄마가 날 보고 형이라고 부르더라니깐.” 어이없다는 쓴웃음을 지으며 친구에게 털어내며 아무렇지 않게 여기려 할 수도 있다. 이런 상처들이 얼마나 차곡차곡 쌓이며 그 애의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게 될까..
우리 아이에게 선입견을 갖게 하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림책도 열심히 찾아 읽어주고, 나도 사회적 성별을 차별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이가 “분홍색은 여자가 입는 색이야.” 하고 말하면, “아니야. 엘사 공주님도 파란색 드레스 입잖아. 스코틀랜드에서는 남자도 치마를 입어. 색은 남자 여자 구분이 없단다. 모두 자신이 원하는 취향으로 색을 고르고 옷을 입을 수 있어.”
이렇게 말해주던 내 모습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저 지적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던 걸까. 난 애들을 잘 키우고 있는 엄마야 라는.
나는 생각 속에선 편견을 뛰어넘고 아이들에게 차별을 심어주지 않으려고 하지만, 내 행동은 무의식 속에서 여전히 선입견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