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잡부 - 내일은 알 수가 없고, 아침에 한 말도 기억이 안 나네
예전에 얼결에 잡혀가서 몇 억짜리 전략 컨설팅 프로젝트라는데에 투입된 적이 있다. 이런 건 근로계약에도 합의된 적이 없다고!! 진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론만 따지는 박사에게 "너 이 업종 얼마나 해봤어?", "말하는 데이터랑 이론이 이 업종에서 어느 정도 검증이 됐지? 어떤 이론적 근거를 갖고 말하는 거야?"라고 따진 적이 있다. 그리고 적막강산이 흘렀다. 수당도 없이 끌려가서 장황한 말을 듣다 보니 짜증이 나 죽겠는데, 현장 개념 없이 자꾸 뭘 보고 또 보고, 한 말을 또 하고 결국에 뭐 답해보라고 자꾸 보채는 유명한 컨설턴트 회사 이름을 보니 더 짜증이 났던 것 같다. 결론은 우리 보고 전략을 잘 세워서 하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 대학원 시절 국제전략 관련 수업을 하시던 교수님이 대기업 회장단 자문회의에 가서 미주알고주알 떠들었더니 나중에 돌아온 말이.. "우리가 몰라서 교수님 모신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쉽게 눈치가 없냐고 한 소리 같은데? 그렇죠? 그 교수님이 나중엔 어느 대학 총장님으로 은퇴하셨는데.. 수업이 욕이 나올 정도로 힘들긴 했다. 아우..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이..
요즘 하는 일 때문에 비싼 유료 보고서를 받아서 보고 있다. 이걸 보다 현재와 과거, 미래에 대한 여러 생각이 오간다. 과거에 2만 불 정도의 보고서 발행하는 업체와 회사가 몇 억 주고 계약을 하니 시장 보고서의 원본 데이터가 왔다. 금융위기 터지고 얼마 안 된 상황이었다. 자료예측과 지표가 현실과는 좀 동떨어진 것 같다고 했는데, 얼마 안돼서 데이터가 바뀌어 왔다. 예측이 변경된 것이다. 그렇다고 큰 방향을 바꾸면 새로 쓰는 것과 같으니 작은 부분이 계속 바뀌어 온다. 몇 달은 계속 바뀐 것 같다. 자료 내용보다 내 궁금증은 무슨 기준으로 바꾸는 것일까? 지금도 비싼 유료 보고서를 보며 이건 어떤 전제조건으로 생각해 본 것일까? 그것이 맞나? 이런 의문에 의문이 있긴 하다.
보고서 시장 예측에서 보여준 현재의 P(가격)의 동향은 그럭저럭 비슷한 것 같다. Q(수량)도 비슷할 것 같다. 많은 시장 자료들은 공시자료를 기반으로 하고 거시지표는 공신력 있는 기관들의 예측을 수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자료가 현실과 얼마나 비슷할까? 나는 똑같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경제예측이 결과랑 똑같이 맞는 걸 본 적이 있나? 달리 경제예측을 경제중계방송이라고 조롱하겠나? 간단히 구글링 시장 예측을 봐도 여러 자료가 제각각의 CAGR을 예측하는 것을 보면 다들 회피전략을 감안하고 만든다고 생각한다. 즉 다양한 자료를 보고 내가 바라보는 관점과 시야를 잘 그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 이 자료를 왜 굳이 봐야 하는가? 개인적으로 이런 보고서를 통해서 이해하는 것은 하나의 시장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 이 방향성과 내가 처한 준비상태를 비교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이 매일 활 쏘고, 애들 곤장 치고, 배 만들고, 훈련하며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스카웃 구호가 달리 "준비"겠어.
어차피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 데이터를 처리해서 도표와 차트를 만든 시간만큼 또 시장은 변해있기 마련이다. 가끔 이런 자료에만 의존해서 하는 코멘트를 듣다 보면 혼자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세상 어떤 계획도 계획이 말한 시점에 똑같이 구현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사실 이 말보단 "그래서 네놈 생각은 뭐야?"라는 말이 나오면 바로 지퍼로 입을 물샐틈없이 꿰매는 존재들이 있긴 하다. 그렇지 않은가?, 같다, 얼추 비슷하다, 거의 같다는 엄밀하게는 서로 다르다는 말이다.
하지만 방향성을 보면, 우리가 판단하는 우리의 수준, 기술축적, 시장점유에 대한 목표와 전략방향을 다듬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할 뿐이다. 드러커가 미래는 창조하는 것이 변화대응에 대한 적극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이라고 한 말처럼, 계획을 구체적인 실체, 존재하는 숫자로 만드는 과정은 실력이란 기반, 계획을 현실에 만들 실행력과 전략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저렴한 표현으로 이익, 고상한 표현으로 인간 문명에 기여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인간에게 프로젝트관리를 동원하고, 개발에서 사용하던 애자일 프로세스를 경영전반에도 대응한다. 말이 좀 있어 보이지만 쉽게 "될 때까지 다시"를 반복하는 일이라 사실 놀기 좋아하는 인간에겐 아주 비인간 적이기도 하다. ㅎㅎ
요즘 첨단산업에 대해 캐즘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런 부분은 사무실에서 연구, 개발, 분석하는 사람들의 용어다. 현장의 말로 한다면 시장, 즉 사람이 만족할 수준에 부족하다고 하는 것이 맞다. 캐즘이란 말은 가끔 이 좋은 기술을 덜떨어진 인간들이 이해를 못 한다는 느낌을 주는데, 어불성설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사용할 수 있는 앱을 만드는 것처럼 해야 캐즘이 없다. 이건 개발자들의 몫이다. 사람을 기계에 맞추지 말고, 기계를 사람에게 맞춰야 한다. 그게 Human Centered Design이라고 부르는 것 아닌가? 그 불만족을 연구, 개발, 전략을 짜는 사람들이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 일명 사업로드맵, 기술로드맵 아닌가? 모든 인위적인 사물을 인간을 지향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오늘 보니 국회청원에 불이 붙었는데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사람을 지향해야 좋은 일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정치도 사업도 기술개발도 마찬가지다.
보고서를 보면서 내가 제일 안타깝기도 하고, 스스로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분명 내가 존재하는 시장은 커지는 것을 체감하고, 이런 유료 보고서의 시장 예측도 장밋빛이다. 그런데 스스로 세운 목표, 전략, 실행을 통해 현실에 존재하게 한 숫자(숫자는 간단하지만 엄청난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는 방향성에서 엇나갈 때가 있다. 같은 방향성에서 파악되는 차이는 월등하거나 부족하다는 말이 될 수 있다. 다른 방향성에서 파악되는 차이는 개또라이 짓을 하고 있거나 새로운 혁신적 기회를 찾은 것일 수 있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목걸이가 되듯, 차이를 이해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깨달음과 실행력, 실행할 수 있는 기반 지식, 사람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나는 현실과 현장의 데이터를 더 중시한다. 이것은 존재하는 데이터다. 유료 시장 보고서는 예측, 추정이라고 할 수 있고, 쉽게 말해 누군가 또는 여럿이 찍어본 미래다.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서 현재의 경제조건 수준이 10년간 지속하고, 과거의 성장 추세를 보면서 예측하거나 증권사들이 현금할인을 반영해서 예측하는 것도 사실 찍는 거 아닌가?
내일 뭔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르게 표현하면 미래는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재의 데이터는 분식회계나 허위 거래를 기재하지 않는다면 사실의 집합이다.(이 또한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다) 시장이 아무리 좋아도 내 고객이 부도나면 내 시장은 줄어든다. 시장이 아무리 축소되어도, 내 고객이 대박 나면 얼떨결에 성장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현재의 데이터는 내가 어디에 있는가? 어떤 상황과 있는가에 대한 사실적 데이터를 제공한다. 예측은 방향성이니 이 자료를 잘 캘리브레이션하며, 매일 방향을 섬세하게 튜닝하는 것이 사업이고, 인생을 하루하루 축적하는 것이며, 정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데이터에 대한 이해와 여러 시장 보고서를 보면서 거시적 계획, 단기적 전략 방향과 집중할 계획을 정리하는 일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것도 변화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과거가 축적되어 움직이는 현실도, 예측하고 도달하려는 미래도 계속 변화한다. 짜증이 나지만 어떤 일도 이런 변화에 끊임없이 조율하는 것이 우리가 일이라고 하는 것이 갖는 한 단면이다. 당연히 짜증 나고 힘들고 하니까 나한테 시키는 것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 속에서 하나씩 현실에 무엇인가 존재하게 하는 과정을 통해 배움과 즐거움, 만족감도 있다. 그래서 보고 또 보고하는 중인데.. 역시 짜증이 난다. 뭐 하나 뚝 떨어지는 건 하나도 없거든. 그런데 이런 걸 보고 미친 짓을 하면 또 난리가 난다. 청원사이트 불붙은 것처럼. 뭐든 올바르게 하거나 작작해야지.
미국엔 잡스가 있었고, 한국엔 잡부만 있고 또 출장가야하고 날은 덥고 비도오고!! 못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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