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휴 놀래라.. 다행이다
출장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사무실만 벗어나면 누가 도청 감시를 하나 메일이 쉬지 않고 온다. 작작 좀 해야지 너무한다고~! 그래도 상 받으러 갔으니 즐겁긴 하다. 그것도 처음 무대에 올라서 상패를 받긴 했는데, 주고 나거 도로 뺐어간다. 이건 아니지~ 조카 녀석이 "삼촌 한국 갈 때 똑같이 만들어서 들고 갈게요"란다. 수출의 탑 카피본 같은 것인가? 본사에서도 장식을 한다는 말이네. 중국도 날씨가 쌀쌀하다. 한국에 돌아오니 더욱 쌀쌀하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2024년도 얼른 썩 꺼지라~ 이 와중에 견적을 내라고 다구치는 고객사를 보면 떼려 주고 싶다. 뭐든 엔간히 해야지.
일요일 아침부터 사무실에 가서 날아온 NDA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년 마감 자료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직원들 내년 연봉을 올려주기가 난해한데 대신 내년엔 사업을 좀 더 잘해서 인센티브라도 줘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올해 고생한 녀석은 어쨌든 인상피고 일하라고 인센티브를 정리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월요일 아침까지 견적 내라는 소리는 뭐 내일의 내가 어떻게 하겠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오후엔 지난번 당근하고 같이 간 물건을 돌려받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날도 추운데 미안하네.. 자리가 나서 냉큼 앉았다. 2~3 정거장을 가는데 갑자기 "쿵"하고 소리가 난다. 덩치가 큰 사람이 쓰러졌다. 반사적으로 119를 누르고 다가갔다.
어르신인 줄 알았는데,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이다. 나이 드신 아저씨가 얼른 자리에 앉혔다. 뒤돌아보니 내 자리엔 벌써 젊은 처자가 냉큼 앉았다. 눈이 마주쳤는데 미안한가 보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119에서 긴급구조를 위해 귀하의 휴대전화 위치를 조회하셨습니다'라는 문자가 온다. 즉시 날아오는 문자와 군사용 GPS처럼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서 바로 전화를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이것저것 설명하고, 졸지에 같이 지하철에서 내렸다. 손도 주물러주고 이것저것 말도 걸며 관찰을 하게 된다.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하는 젊은이가 미안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금 괜찮아 보여서 플랫폼에서 개찰구가 있는 쪽으로 올라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관찰해 보니 다행히 괜찮아 보이긴 한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고, 내가 의사도 아니니 119 아저씨들을 기다리는 수밖에.
119에서는 계속 안내 문자도 오고, 앰블라스를 타고 오는 아저씨들도 전화를 준다. 음악을 한다고 하는데, 어쩐지 손을 주물러줄 때 보니 아주 보드랍더라니. 20살쯤 됐냐고 물어봤더니 서른이 넘었단다. 그러더니 비니 쓴 아저씨한테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물어보단. ㅎㅎ 대충 보면 삼촌벌이지.. 20살이나 많은데. 서로 동안이라고 이야기를 하며 웃었는데 상태가 괜찮아 보이긴 한다.
119 아저씨들이 이동식 침대(이게 아닌가? 하여튼 발통 달린 침대)를 갖고 오고, 역무원은 무슨 일이냐고 나오고, 혈압재고 괜찮은지 이것저것 진찰을 했다. 다행히 괜찮아 보이지만 병원에 꼭 가보라고 이야기를 하신다. 그리고 이젠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이 나온다. 친구냐? (겉모습만 봐도 그건 아니지!) 가족이냐? 어디서 사건이 생겼냐? 등등 질문을 대답하고 다시 둘이서 오손도손 지하철로 내려갔다.
"그런데 아들 하나예요?"
"누나가 있습니다" (하여튼 남자 녀석들 묻는 말에 대답을 안 한다니까)
"그럼 아들 하나네, 하여튼 큰일 날 뻔했어요, 그런데 무슨 음악 해요?"
"재즈를 합니다"
"오~ 그래요? 다음에 연주회 할 때 불러줘요. Take Five로 연주해 주고 하하"
"Take Five!"
꼭 초대를 하겠단다. 이 와중에 다음에 소주를 한 잔 하자고 해서, 우리 사무실에 놀러 오면 좋은 술 몇 잔 줄게요라고 했다. 연락처를 교환했더니 고맙다고 문자가 왔다. 그보다 지하철 안이라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라 꼬라지 요란하고, 날은 춥지만 환하고 밝게 웃으며 가는 청년을 보니 기분이 좋다.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지 뭐. 내년에도 젊은 청춘들이 더 환하게 웃는 세상을 기대해 보기로 한다.
그보다 우리나라 119 아저씨 아줌마들 감사해요.
#119 #비상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