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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린 대로 거둔다. 꽝이 없으면 재미가 없지.

오늘 많은 메일은 내일의 내가 하는 것으로

by khori

오늘은 아침부터 강남 한복판을 걸었다. 미팅보다 일찍 도착해서 지인과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사람을 기다리며 오랜만에 테헤란로 2층에서 따뜻한 햇볕과 커피를 한 잔 마시면 읍내 구경을 했다. 아침부터 떡락하는 주식을 보며 웃음이 난다. 수익보고 다 팔았더니 그 후로 일취월장을 해서 다시 조금씩 배당 주식을 샀다. 팔은 녀석은 2배 이상씩 올랐다. 어이가 없지만 다 내가 한 일이다. 목표가격보다 내려올 수도 있다고 했던 지점보다 훨씬 더 내려가서 배당주 물타기도 좀 해놓고.


업체는 발주를 낼 예정이라며 주초부터 바람을 잡더니 자꾸 연락을 한다. 요구사항이 있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발주 주면 당장 공급을 해줄 수 있냐고 묻는다. 가끔 사람이 없어도 물건 자기가 알아서 조립되고 생산되어 알아서 배달 가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나? 그런 심각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말을 말아야지. 누가 forecasting도 없는데 언제 올지 모른 고객님들을 위해서 알아서 착착 만들어 놓냐고! 내일 정리를 해봐야 하겠도다. 오후 미팅을 위해 준비한 장표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기다리던 사람도 오랜만에 강남 읍내에 나와서 한참을 둘러둘러 도착했다. 11시에 점심이나 먹고 미팅 가자고 초밥집에 갔는데 괜찮았나 보다. 체인점이라고 했더니 이것저것 물어본다. 사는 동네에도 있다고 하니 가족들하고 한 번 가보겠단다. 벌써 마지막에 가본 시간이 10년이 넘은 듯하다. 나랑 있으면 뭔가 재미있나 보다. 나를 신기방기인지 또라인지 하여튼 독특하게 보는 것 같다. 밥도 사줬거늘. 또라이거나 독특한 사람은 자신이 그런지 잘 모른다. 알고리즘이 원래 그래. 당연히 난 그러려니 아니면 왜 저런 거지?라고 타인과 비슷하게 생각할 뿐이다. 어쩌겠어. 그렇게 걸어오며 남긴 발자국이 지워지지도 않고 돌아보면 내가 봐도 이상한 일도 있고, 그럭저럭 괜찮은데 하는 일도 있긴 하다. 가끔 내가 뭘 뿌리며 살고 있는지 돌아볼 부분이다.


상장사 본사 건물에 들어서며 그냥 제지가 없어서 순탄하게 미팅장소에 올라갔다. 리셉션 직원이 1층에서 등록을 해야 한다고 한다. 오~ 구래? 우린 어떻게 올라 온 거냐?? 그렇지 않아도 같이 동행한 양반과 커피 마시며 옛날 비슷한 일화를 이야기했는데 서로 같은 기억이 떠올라 한참 웃었다. 그래도 내 기억이 훨씬 재미있다. 파리 공항에서 그냥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공항 밖이라 담배 피우고 다시 공항 안에 아무 일 없이 들어갔던 적이 있다. 당연히 여권심사 이런 거 없이. 오래전 파리 공항 공사할 때 일이긴 하다. 외형적인 보안은 참 요란한데 실제로 보면 웃긴 일이 한 둘이 아니다. 계획한 대로 행동하면 목표한 결과가 비슷하고, 계획이랑 액션이 제각각이면 결과가 천차만별일 뿐이지만 의도치 않은 요상한 일도 존재한다.


자료도 선행해서 미리 보내주고, 한 시간 미팅을 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업무 관련 부분은 큰 무리 없이 진행되고, 방문계획까지 확정되니 좋은 일이다. 본사도 거기가 되겠냐?라고 했는데 가끔 이런 일이 너무 쉽게 벌어지니 나도 가끔 재미있다. 유럽 고객들 개척할 때처럼 처음 연락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이것저것 기회를 열어준 기억이 있다. 이런 고객은 감사함에 더 열의를 갖게 된다. 전에 뿌려놓은 것은 없지만 작은 액션.. '그냥 해봐!'라는 작은 액션이 의외의 결과를 만드는 것인지 내 팔자오 복인지 하여튼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불나고 비상벨 누르면 칭찬을 받고, 불 지르고 벨을 누르면 벌을 받는다. 행동의 순서를 보면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다. 비록 그 함수가 몇 배가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는 할 때는 알 수 없으나, 옳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 추가로 담당자가 나보고 전에 뭐 하던 사람이냐고 묻는다. 아~ 오늘 왜 이래 다들. 뭣이 문제인가? 난 알 수가 없지. 저 양반들의 호기심이 왜 그런지.


본사에 출장 방문 일정을 전달했더니 전담부서 임원 녀석들 일정이 안 된단다. 이 녀석들 유럽시장 개척해 줬더니 이 달에 유럽 간다고 날짜도 일찍도 잡아놨다. 이거 또 북 치고 장구치고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다. 오늘 만난 업체의 협력사 방문 때에도 나 혼자 북 치고 장구치구였는데. 협력사 부사장님은 미팅 내용을 전달했더니 축하한다며 메시지가 왔다. 내가 볼 땐 이분이 독특하시던데. 그분은 당연히 모를 것이고. 내일은 비행기 표를 당장 끊어야겠네.


이 와중에 우리 훼장님은 '이거 되는 거냐? 가오가 좀 살게 해야지'라는 기대인지 챌린지(닦달)인지 감탄사인지 잔소리인지 알쏭달쏭 해진다. 그렇다고 젊은 내가 '아이고 내가 죽일 놈이지.. 내가 죽어야지'라면 할아버지 멘트를 날리면 뚜껑 열린 폭군을 감당해야 하니, 이걸 잘 이해한 내가 참기로. ㅎㅎ 잘못 뿌리면 호환마마가 나온다니까. 대신 좋은 점, 기대되는 점, 나쁜 점보다는 꼼꼼하게 개선해야 하는 점(나 아니고! ㅎㅎ), 아쉬운 점을 사실에 근거에도 전달인지 돌려 깎기인지 된듯하다. 담주에 보자고 했는데.. 뭐가 나올지 난 알 수가 없지. 하필 출장이 그 뒤라는 사실이 살짝 아쉽네. 엉아가 나이가 드나 자꾸 말로는 걱정이 없다고 하고 매일 걱정이시다. 나도 별반 차이가 없다. 이런 질문과 상대방을 생각하면 사람들이 왜 점을 보는지 이해는 된다.


그냥 보이는 대로 보고, 정신줄 꽉 잡고 잘 관찰하고, 자신의 앎의 수준에서 올바르게 판단하고(모르면 Chatgpt라도 물어보고), 우선 하고 싶은 것보단 할 수 있는 것을 쌓아서 하고 싶은 방향으로 걸어가 보는 거지. 그럼에도 꽝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후회는 적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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