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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ori Oct 03. 2017

잠시 가을을 세워 돌아보고

한 달이란 시간

9월부터 지금까지 한참을 방랑했다.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저곳을 움직이는 몸뚱아리와 마음과 머리가 모두 제각각이다. 혼을 너무 쏟았더니 혼이 나갔다고 농담을 했었는데 지금이 그렇다. 가야 할 곳과 해야 할 것으로 지치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소중한 가족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질문이라면 감히 일과 가족을 비교하는 일이다.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비교하는 아둔함은 후회에 다다르는 길이다.


  늦더위가 일본에도, 유럽에도 지나갔다.  태풍이 지나간다고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걱정과 달리 일본은 참 더웠다. 그리고 추석 즈음해서 한 달간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사는 일은 누구나 힘들다. 그것을 깨닫기 시작할 때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감당하기 시작할 때엔 삶의 중턱을 넘어가는 시기다. 마흔 고개가 어렵다고 입버릇처럼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요즘은 실감 난다. 누군가를 맞이하는데 익숙하던 시간이 지나가고, 익숙하지 않은 누군가의 뒷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보며 그들의 몫을 어깨에 짊어지는 시기다. 좀 더 나이가 들면 다시 누군가를 맞이하고 스스로가 떠날 때가 될 것이다. 내 스스로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것은 하나는 떠날 때를 멀리하려는 마음의 그림자와 자유로운 내 영혼이 생겨먹은데로 살았으면 하는 바램 때문일 것이다. 


 입버릇처럼 하지 말아야 할 직책이 "부xx", "xx대~~"라는 것이다. 높은 자리 같아 보이지만 이런 직책은 책임을 요구받는 자리다. 자신의 몫을 다하는 것은 중요한 약속이지만 약속외에 구속된다는 것은 특히 번거롭다. 이런 자리를 청하는 사람들이 반갑지 않다. 바라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가을 시원한 바람과 달리 이런 일들은 나의 마음을 어둡게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살아간다. 


 바라보는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을 한다는 것은 명예롭기도 한일이다. 물론 뭔가가 잘 됐을 때의 일이지만... 그런 기대와 걱정을 떨치지 못하며, 마음에 희망을 그리고, 머리로는 여전히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한다. 차라리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집중하는 것만 못하다. 음기가 대지에 충만해지니 양의 존재가 심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시기에 세상을 돌아다니게 되면 항상 조심하게 된다. 그렇게 가을의 문턱에 서서 시절을 감상할 틈이 없다.


 일본에 다녀와서 업체 conference에 다녀왔다. Gala show dinner까지 참석했다.  91년 11월의 어느 콘서트에서 봤던 가수다. 연예인들을 가까이에서 보면 무엇인가 이질감을 느낀다. 무엇인가 다른 것이 내재된 생명체를 보는 듯하다. 결이 다르다. 이 느낌은 이쁘고 잘생기고 하는 것이 아니다.  

 주소를 말하면 택배로 붙여주겠다는 음반이다. 홍보도 열심히 한다는 조건이 붙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말과 마음이 다르다. 바로 다음날 떠나야 하는 일정과 스스로 편하지 못한 시간이 어색하다. 즐거움과 축하의 자리에 어두운 마음을 갖고 앉아야 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해외에서 찾아온 거래처들에겐 웃으며 인사도 하니 나도 인생이란 무대의 광대에 지나지 않음을 새삼 느낀다. 가을이 오면 생각이 많아진다. 세상이 겉으로 풍요로운 시간이기에 마음도 그러하다.

 

 영국 leading이란 도시의 운하를 바라본다. 가을을 느낄 만큼 저녁 바람은 시원하다. 능수버들이 한 밤의 화려한 불꽃놀이처럼 늘어져 있다. 맞은편은 화려한 여름만큼 싱싱한 나무가 사람들을 위해서 멋진 그늘을 만들어 준다.  사진에 보이지 않지만 뒤편은 새로운 현대식 건물과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의 경계를 2차선 도로가 가르고 있다. 내가 살던 도시에 과거와 현대를 동시에 터놓고 볼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담으로 둘러쳐진 궁궐이나 사원이라면 모르를까. 마친 나의 껍데기를 경계로 세상에 보이는 것과 내 속의 나와의 차이처럼.. 낙엽이 얼른 지면 좋겠다. 시간은 세워둘 수 없다. 적절한 시기는 내가 찾을 뿐 시간은 항상 적절하고 정확한 때를 가른다.


 10월부터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큰 녀석이 다 모아보겠다는 마술봉(wand)을 하나 샀다. 삶은 본인이 걸어가는 것이지만 그 삶을 옆에서 보고 응원하고 보살펴주는 것은 책임이다. 그들은 선택권이 없이 세상에 나왔을 뿐이다. 나도 그렇다. "아브다카다브라" 이러면 마술이 이루어지던데... 다 큰 녀석이 이런 걸 좋아하는 것을 보면 이 녀석도 자유로운 기질을 갖고 있다. 나처럼 호기심의 돌풍을 타지 말고 산들바람과 같은 바람을 타고 살아갔으면 한다.


 이태리의 아담한 호텔 정원은 포도가 한창이다. 어려서 큰 고모댁에 가면 포도밭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포도를 한송이 한송이 종이로 싸지 않았다. 오가며 한알씩 따서 옷에 쓱쓱 문질러먹던 기억이 있다. 키가 닫지 않기 때문이다. 한 송이를 얻으면 참 좋아했었는데. 포도가 익어갈 무렵이 가을 즈음었다. 가을은 항상 풍족하니까. 그런 기억도 지금은 아련하다. 매일 접하는 도시의 화려한 조명과 소음에 익숙해져가는 것이 슬프기도 편리하기도 하다.



 밤의 정원은 불빛이 주인이다. 산골의 스산한 바람이 불 때 따뜻한 촛불과 전등을 보는 것만으로 사람은 따뜻해진다.  호텔 안 식당의 노란색 불빛은 더운 따스함을 준다. 문제는 저 테이블이 아니라 다른 귀퉁이 허름한 자리에 앉았다. 음식은 왜 이렇게 많이 주는지, 게다가 고기는 푸줏간 향이 너무 난다. 다시 좀더 익혀주세요~


 길을 다시 떠나려 시내에 나왔다. Duomo성당을 보면 처음에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세밀하게 조각된 외형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성당을 짓기 위해서 사역했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신을 부정하지 않지만 종교를 갖지 않는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그걸 부인하지도 않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삶을 누군가에 기대어 살 수 없듯이 나약한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인간의 육신은 나약할지라도 고매한 정신은 신도 범접할 수 없다. 인간은 스스로 크기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일지 모른다. 단지 우리는 어딘가 기대고 의지하고 싶어 할때 스스로 작아질 뿐이다.


 목사님 친구와 한 달 넘게 수담을 했었다. 나는 나의 의지를, 친구는 한 달안에 포교를 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무조건 믿으라'는 말하지 않기와 내가 주는 책 한 권을 무조건 읽고 수담을 하는 조건이었다. 벌써 시간이 5년이 지났다. 성경책이 올까 걱정했었는데 결국엔 우리 집 신방을 오시겠다는 것을 말리느라 애먹었다. 내 삶 속에서 뜻밖의 목회자인데 요즘 페이스북을 보니 온 가족이 미국에 가있다.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란다. 난 여기서 가을을 즐기며 자유롭게 살아가려고 한다.   


 도시의 벽을 장식한 마스크가 신기하고 새롭다. 사람은 마음속에 이보다 훨씬 많은 얼굴과 표정을 안고 산다. 내 가을의 얼굴은 어떤 녀석과 비슷할까? 오늘 막내와 목욕탕에 다녀와서 싫어하던 셀카를 찍었더니 가족 단톡방에 큰 녀석은 작은 녀석을 놀리고, 마나님은 아들이 더 크다, 남편 얼굴이 아주 까매졌다 이런 소리만 한다. 원래 신제품이 좋은 법이고, 구닥다리가 정이 드는 것이다. 물건을 바라볼 때의 이런 마음은 당연한데 문득 엄마들은 아이와 남편을 보며 이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상상도 해봤다. 좋은 답을 기대하기 어려운 질문은 안 하는 것이 낫다. 어차피 천륜은 세월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것이니까. 

 

 38 광땡은 최고의 패다. 불패의 영역은 신의 범주이지만 공항에서 비행기까지 태워주는 버스가 우연하게도 38번이다. 미신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이로 보이는 공항의 뒷모습도 재미있다. 그렇게 집으로 편하게 올 줄 알았는데, 로마 공항에서 무려 5시간을 넘게 패인처럼 라운지에서 시간을 때우다 왔다. 연착한 비행기는 정말 오래 전 구형 모델이다. 무사히 도착해서 9월을 마무리하고 있으니 38은 정말 영험한지도 모르겠다. 이 좋은 가을에 이런 일은 해석하는 사람의 몫이다. 

 

 집에 돌아와서 정신없이 잠을 잤다. 요즘은 호흡이 짧아진 것 같다. 몸에서 울리는 알람이 "이젠 작작좀 해라"라는 메아리처럼 들린다. 명절이 지나고 주중과 주말 생활이 분리되는 관계로 마음이 심란하다. 나의 마음이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렇다. 운동화를 한 켤레 사겠다고 길을 나서서 20% 할인이라는 말에 어쩌다 생긴 상품권을 투입했다. 이런 걸 사들고 돌아가는 마음은 흐뭇한데, 마나님 반응은 덤덤하다. 요즘은 일 년에 한 번, 한 모델 정도를 산다. 가끔 "댁 없을 때에 내가 처분하겠노라"하는 엄포를 놓지만 그러려니 한다. 나는 할아버지가 되어 때 손녀, 손자들과 함께 할 것을 미리 장만한다고 주장하지만 씨알도 먹힐 리가 없다. 

 

 날음식을 전혀 먹지 않는 큰 녀석과 별개로 막내 녀석은 초밥이라면 만사 OK다. 큰 녀석은 마술봉을 사줬건만 별 물욕이 없는 질풍노도의 중학생에겐 먹는 재미만한 것이 없다. 초밥이라는 말에 목욕탕부터 읍내까지 잘 댕겨왔다.  젊은 연인이 저려함 초밥을 골라먹는다. 막내 녀석은 시작부터 금색 접시를 잡는다. 녀석도 연인처럼 하나는 나에게 하나는 저에게 나눠주기까지 한다. 그 경계에서 양쪽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색하기 그지없다. 아이가 입으로 갖져가는 음식보다 음식을 입에 문 흐뭇한 표정이 사람을 참 즐겁게 한다. 

 


 10 접시에 몇 가지를 더 시켜서 먹었다. 마나님이 '내가 사람을 키우냐 소를 키우냐?'는 소리가 결코 틀리지 않는다.  어린이 입맛인 나에겐 매운 어묵 초밥과 바삭하게 감칠맛 나게 튀긴 오징어 다리 튀김이 맛있다. 싱싱한 초밥이 맛있지만 이런 음식은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막내가 살살 웃는다. 하나씩 더 시켜서 먹었다. 배가 부르다더니 매운 어묵 초밥을 하나 더 시키자 젓가락을 든다. 하여튼 Original과 Mixture사이에는 묘한 교감이 있다. 서로 웃으며 읍내 산책을 나섰다. 막내에게도 좋은 추억이 됐으면 한다. 태권도 승단시험부터 막내와는 항상 초밥 외식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나이가 들고 좀더 한가해지면 손수 음식을 해줘야겠다.


 나도 어려서 아버지가 항상 좋은 음식을 사주며 먹는 모습을 바라보던 기억이 있다.  너무 나이가 많이 들어서 되돌아보게 되고 그 마음을 알게 됐지만... 가족과  한 자리에 음식을 먹는 일은 중요하다. 파란 하늘이 좋은 추석이 가을에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이리라.



 종각을 천천히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교보문고에 들렀다. 늦은 밤에 더 멀리 가기 쉽지가 않다. 책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기억한다면 한참 뒤에 알지 모르겠다.  풍족해지면 부족한 사람을 돕고, 배워서 남들에게 이로움을 줘야 보답을 받는다고 했다. 누군가 내 마음 깊이 이런 말들을 어려서 해줬으면 하는 나의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가위 계단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도 조금은 돈을 넣어주었다. 막내가 어려서 겨울 지하도를 지나며 "추운데 이 아저씨들은 왜 여기서 자?"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벌써 10년이 지난 일이다. 그 말이 지금도 종종 생각난다. 사람들이 그 곳에 있는 것보다 아이들이 갖는 그런 마음이 어른이 되면서 조금씩 작아지기 때문이다. 


 다시 광화문 광장 쪽으로 나와 사람의 다양한 동작을 빛으로 만든 형상을 보았다. 가장 앞자리에는 한 손을 든 "안녕"과 두 손을 든 "만세"가 있다. 어슴푸레한 파란 하늘 아래를 아들과 손잡고 걸으니 좋다. 예전엔 손가락 하나만 줘도 충분했는데, 이젠 내가 녀석 손가락 하나만 잡고 다녀도 되겠다. 가을엔 풍성한 게 많다. 마음을 추스르고 한가위 명절과 겨울을 준비하는 삶을 보내야겠다.


 여전히 저녁 늦게 싱가포르, 한국, 러시아의 연락은 끊이질 않는다. 다들 참 바쁘다. 그렇게 화살 같은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사는 거 쉽지 않지.. 아무렴 그럴 리가 없지. 그래도 이 가을의 초입에 잠시 지난 한 달을 돌아보는 것은 더 자유롭고 또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또 2017을 지나가고 2018은 오고 그럴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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