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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ori Nov 03. 2018

난중일기(亂中日記)

인간 이순신

 한결같은 자세로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은 무섭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도 그렇다. 시대를 탓하는 자들이 모두 같지는 않지만 그 한을 하나로 응집한 사람들은 반드시 결과를 만든다. 길고 긴 건조한 책을 읽으며 성웅이라 불리는 이순신이 아니라 인간 이순신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재미 중심으로 이 순신을 알고 싶다면 나는 "이순신의 두 얼굴"이란 책을 권한다.


 국민학교 시절 학교 도서관 맨 아래칸에 여러 권으로 된 난중일기가 있었다. 일기 숙제가 지겨운 나이에 2단 세로줄(옛날 소설책들이 그랬음)의 빼곡한 책에 기겁한 적이 있다. 위인전에 시험보다 말에서 떨어져 나무껍질로 부목을 대고 시험을 보고, 거북선으로 왜놈들을 무찌르며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라는 말을 남긴 전설로 기억된다. 영화에서 달구지 가마에 끌려가는 백의종군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있다.


 가상의 이순신이 아니라 그가 쓴 기록을 읽으면 좀 더 다가가게 된다. 


 1. 규칙적이고 간결한 삶을 산다.

   책의 초반부에는 날씨, 행사, 근무 여부, 활쏘기 여부, 날씨가 대부분이다. 가끔 규율을 어긴 사람을 곤장 치고, 큰 죄(?)를 지은 사람을 효수한다. 간결하고 원칙론적인 삶을 계속한다는 것이 평범하지 않다. 



 2. 책무가 우선이며, 그 의무에 엄격하다

   일종의 워크홀릭은 아니다. 술도 마시고, 장기, 바둑도 두고 대화도 많이 한다. 하지만 자신해야 할 일을 항상 염두에 두고, 평시에도 매일 해자, 성곽의 유실, 병장기를 확인한다. 항상 준비하고 있다. 매일 같이 활을 쏘고, 원균의 활 실력을 가소롭게 생각하는 것을 봐도 그렇다. 특히 일기에 업무와 관련된 중요한 사항은 기록하지 않는다. 말을 잘 옮기지 않는다.



 3. 자존감은 하늘을 찌르고, 효성은 하늘에 닿았다.

   작가의 번역 탓도 있지만 "우스운 일이다, 가소롭다"라는 표현이 많다. 그 말을 통해서 올바르고 한 분야의 역량을 착실하게 키워가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매일 저 정도로 날씨를 본 다면 기상예보관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다. 그런 실력이 자존감을 갖게 한다.


   인간은 일을 올 곳고 빠짐없이 하라고 가르치지만, 정말 그렇게 하는 하는 사람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상앙이 극도의 법치를 주장하며 그 법에 목숨을 잃고, 법치를 구현한 진시황을 만나러 간 치술세의 한비자는 죽음을 맞이했다. 준법과 법치를 외치던 근자의 대통령은 감옥에 있다. 슬로건은 뒤집어 생각하면 그것이 곧 약점이다. 그가 그런 자존심을 분명 말로 표현했을 것이고, 그런 빈틈없는 행동이 일반인들에게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좋고 싫음의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원균을 바라보는 심정, 시간에 따른 원균의 행동이 그러하다. 이러한 무고가 세상에 대한 통분함, 전시라는 상황에서 가족이란 애절함이 그를 더 자극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지향, 목표, 희망이 없을 때 좌절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간결하고 책무를 다하는 삶을 통해서 큰 업적을 만들었다. 죽지 못해 살아있다는 넋두리가 왜 이렇게 와 닿는가? 가끔 삶이란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닌데, 난중일기를 읽으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효성과 가족에 대한 사랑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매일 누군가 어머니의 안부를 전하고, 그 안부에 하루를 안심한다. 잦은 꿈을 통해서 자식과 조카들의 안위를 매일 같이 걱정한다. 그는 나라 걱정, 적군에 대한 걱정, 가족에 대한 걱정, 사람들에 대한 걱정을 하루 종일 안고 산다. 자주 앓아눕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4. 양신의 길은 막히고, 충신의 길을 걷고

  그가 정치적으로 혼란하지만 않았더라도 나라도 구하고, 본인도 더 나은 길을 걷는 양신이 되었을까? 나는 그의 성격을 바라본다면 매우 옳지만 기분 나쁜 사람으로 비칠 소지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를 부리는 위치의 사람들은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에게 부림을 받아야 하는 위치의 사람들은 어려울 것이고, 모든 사람은 그처럼 헌신적으로 살아가는 길을 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실력을 배우려 하고 존경하는 사람보다 남의 실력을 헐뜯어 낮추면 자기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해관계가 걸리면 그렇다. 그런 상극의 모습이 원균에게서 나타난다. 일기를 통해서 그가 임금에게 충성하는 신하였는지는 임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없다. 광해에게 글을 올리고 창을 올리는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임금보단 조선이란 나라를 구하고, 그 나를 구함으로 가족을 구하고 주변의 사람들의 평안을 이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성웅 이순신의 모습보다 그것을 하고자 시작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 때에 태어나, 그렇게 할 상황에 떨어진 인간의 고민과 투쟁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처량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난중일기란 그 시대를 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마 저 때보다 어려운 나날을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아니니까..


 책 가격이 15,920인 이유가 있다. 이은상 작가가 바라보는 성웅 이순신에 대한 관점이 조금은 과하지만 책의 말미에 잘 기록되어 있다. 익숙지 않은 세로 읽기의 책도 나쁘지 않다. 책을 산지 벌써 3-4년이 지났는데 지금에야 읽으니 나의 비 규칙적이고 게으른 나날을 반성해야겠다.



난중일기


이순신 저/이은상 편
지식공작소 | 2014년 08월


#성웅 #이순신 #난중일기 #독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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